손예진의 변신, 2% 부족하다

영화 이야기 2008. 1. 13. 14:54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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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배우의 변신'

이 말만큼 괜히 핫해 보이는 엔터테인먼트계의 키워드도 없을 것이다. 유명 여배우가 변신하면 '그냥' '알아서' '자연스레' 화제가 된다. 일찌기 전도연이 <해피 엔드>의 불륜녀로 변신했을 때는 언론의 호들갑이 뒤따랐고, 문근영이 <사랑 따윈 필요 없어>로 처음 성인 연기에 도전했을 때도 호사가들의 입방아로 장안이 시끄러웠으며, 김혜수가 <타짜>에서 전라 뒤태를 과감히 노출하며 농염한 팜므 파탈 연기를 선보였을 때는 술자리의 뭇 남성들이 거품 물고 머리털을 쥐어 뜯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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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변신이 낳는 화제가 곧 흥행으로 직결되거나 여배우의 앞날에 장미꽃을 뿌려 주는 결과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었다. 아다시피 전도연은 <해피 엔드> 출연 이후 CF 출연이 뚝 끊겼으며 문근영은 그녀를 영원한 롤리타로 간직하고픈 '아자씨'들의 배신감과 소녀들의 냉소를 동시에 거머쥐었다. 그러니 김혜수의 변신이 거둔 대성공은 차라리 기적에 가까웠던 것이다. 모름지기 여배우란 이미지의 감옥에 굳건하게 갇혀 살아야 하는 한국의 쇼비즈니스 환경에서 그들의 변신이란, 현실적으로 그만큼 쉽지 않은 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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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영화 <무방비 도시>에서 손예진이 소매치기 '백장미'로 변신한 것 역시 같은 코드로 열심히 활용되고 있다. 매니지먼트와 제작진의 기대대로, 일단 화제다. 예고편에 슬쩍 비쳐진 아름다운 등짝의 천수관음 문신만으로도 그녀의 팬을 자처하는 많은 수컷 관객들의 '아흥'하는 신음 소리가 들릴 정도다. 대사는 또 어떤가. 차갑고도 매정한 눈초리로 슬쩍 내뱉는 한마디, "겁대가리 하고는, 쥐새끼들 같아." 이전의 손예진에게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가리봉 네거리 장미파 언니들 면도날 씹어 뱉 듯' 그야말로 '섬뜩무쌍'한 포스가 전해지는 대목이다. 그녀의 변신을 목격하며 왜 숱한 영화 속의 팜므 파탈은 남성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숭배의 대상이기도 했는지 짐작할만 하다. 압도적으로 강한 것은 섹시하다. 하물며 숨막힐 듯한 몸매와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고혹적인 자태의 미녀가 그렇다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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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행히도 영화 잡지 커버스토리도 아닌 이상 이 글은 기계적인 손예진 예찬론이 아니다. 나는 그녀의 변신이 2% 부족하다고 느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공이 약하다. 아직 살아온 세월이 적어서 그런건지는 몰라도, 팜므 파탈이라는 캐릭터의 전형성을 체득하고 자신만의 색깔로 재창조 해내기에 손예진의 아우라는 턱 없이 부족하다. 오금이 저리고 머리칼이 쭈뼛 설 정도의 에너지를 객석에 마구 뿜어낼 정도의 수준은 아니라는 얘기다. 게다가 그녀와 맞붙은 '강만옥' 역의 김해숙의 내공은 그녀를 수십 갑자 이상 앞지르고 있으니 상대적으로 손예진의 자리는 쪼그라들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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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안타까웠을까? 사력을 다해 손예진을 강하고 아름다운 여성으로 이미지화하기 위해 장면마다 짝 달라 붙는 옷 갈아 입히며 '시장 판의 슈퍼모델급 소매치기'라는 아방가르드적인 리얼리티를 창출하는 것도 모자라, 러브 신에선 김명민의 리액션 샷도 서둘러 건너 뛰고 성급히 그녀의 바디 라인을 훑는 감독의 2류적 연출은 이 매혹적일 뻔한 팜므 파탈의 위력을 반감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말았다. <타짜>의 김혜수가 등장 신이 많아서 관객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게 아니라는 걸 감독만 몰랐나 보다.

한마디로 이번에 손예진은 충분히 스포트라이트를 받되 결코 위험한 수준을 넘어서지 않았다. 어쩌면 선배 여배우들이 걸어온 길을 반쯤만 닮고 나머지 반은 타산지석으로 삼은 결과로 보인다. 퇴로를 보장 받은 채 비교적 안전한 영역까지만 변신했다는 것, 과연 영리한 선택이었을까?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다. 관객 입장에서는 감질만 난다.

어쨌든 손예진의 시도 그 자체에는 박수를 쳐줄만 하다. 그러나 나는 주문하고 싶다. 다음엔 좀 더 과감하게 망가져 달라고. 더 과감하게 본인의 욕망 뿐 아니라 영화 매체에 대한 관객들의 욕망에도 부응해 달라고. 그래야 당신을 겹겹이 싸고 있는 이미지의 감옥에서 탈출해 진정한 배우의 반열에 오를 수 있다고 말이다. 그러려면 조금 더 이 세계에서 버티고 살아 남아야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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