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청한 영화계에 보내는 통분

영화 이야기 2007. 12. 23. 23:28 Posted by cinemAgora
박정희 대통령이 집권했던 유신 시절엔 반공 영화 쿼터란 게 있었다. 반공 영화를 한 편 만들면 그에 상응해 외화 수입을 허용해주는, 일종의 '기브 앤 테이크' 정책이었다. 당시엔 방화(한국영화를 일컬어 당시엔 나라 '방(邦)'자를 써 방화라고 불렀다.)를 제작하는 것보다는 외화(주로 미국이나 프랑스 영화)를 수입해 배급하는 게 훨씬 남는 장사였던 시절이었으니, 이런 사정을 간파한 정권이 지배 이데올로기를 강화하는 '반공'을 영화 자본가들에게 미끼로 던진 셈이었다. 대종상에도 반공 영화상이라는 부문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이 글에서 영화인이라는 통칭 대신 영화자본가라는 표현을 쓰는 것은, 그 때나 지금이나 선전 도구가 아닌 예술로서의 영화를 지키기 위해 피와 땀을 바친 스탭들, 영화 노동자들이 도매금으로 치부되는 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는 저항했지만 적지 않은 체제 순응적 영화 자본가들이 이 미끼를 넙죽 받아 먹었다. 그들은 그 대가로, 민주화 열풍이 불어 닥친 90년대 이후 운동권 출신 '먹물'들이 대거 충무로로 진출한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구악의 범주에 휩쓸려 밀려났다. 신구 갈등을 통과한 뒤 찬밥 신세가 된 그들은 기회 있을 때마다 후배들이 선배들을 업수이 여긴다며 "싸가지 없는 씨벌넘들"과 같은 육두문자를 쏟아내며 마지막 저항을 했으나 시나브로 잊혀졌다. 한국영화계의 원로가 존경받지 못하는 현상은, 많은 부분 이런 역사에 기인한다.

그렇다면 박정희 때의 순응적 영화 자본가들과 지금의 영화 자본가들은 무엇이 얼마나 다른가를 따져볼 차례다. 노무현 정권을 심정적으로 지지했다가 스크린쿼터 축소라는 뒷통수를 맞은 뒤, 알량한 산업마저 벼랑 끝에 몰리자 어쩔줄 몰라 하며 아우성을 치고 있다. 농민들의 반 FTA 투쟁 때만 해도 팔짱 끼고 있다가 쿼터 축소의 위기 상황에 다다르니 개런티 수억 원 짜리 배우를 내세워 뒤늦게 농민들의 어깨를 다잡으며 우리는 형제라고 김 빠진 맥주 보다 싱거운 노래를 부르게 했다.

한국영화를 지켜야 한다고 목놓아 울었던 그 영화 투사들의 퍼포먼스는, 스크린쿼터의 본질인 다양성 확보의 대의는 새카맣게 까먹고 감정적인 애국애족에만 호소하다 보니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고 말았다. 시장을 지키자는 말은 더 큰 시장을 확보하자는 울림에 압도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 하는지조차 모르는 장나라가 영화 한 편 찍었다고 영화인입네, 그 대열에 끼어 있었다. 코미디였다. 그 코미디를 연출한 게 지금 충무로를 장악한, 이른바 진보적 영화자본가들의 행태다.

쇼비지니스의 세계에 있으면 생각이 늘 그렇게 표피적으로만 흐르는건가? 유추컨대, 세대를 불문하고 한국의 영화 자본가들은 압도적인 힘에 경향적으로 순응적이며, 시류의 변화에 적응력이 떨어지고, 가장 치명적으로 누구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를 모른다는 것도 짐작할 수 있다.

스크린 독과점 문제는 어쩔 도리 없다며 팔짱을 끼고 있었던 것처럼, 견고한 개런티 상한선 하나 합의해 내지 못하면서 스타들의 거품 몸값만 성토하고 있는 것처럼, 극장 부율(수익배분율)이나 이통사 할인 문제 역시 극장측에 질질 끌려가며 해결하지 못했던 것처럼, 이제, 극장을 향해 서슬퍼렇고도 치명적으로 날려야 할 '영화 관람료 인상'의 카드를 애꿎은 관객들 앞에 던져 놓았다가 비난을 자초하는 것처럼, 그들은 언제나 눈앞의 이익에 매달려 혹은 눈앞의 손실에 두려움을 느낀 나머지 전략과 전술에 있어서만큼은 가공할만한 멍청함을 과시해 왔다.

박정희 때의 영화 자본가들이 권력에 투항했다면, 지금의 영화 자본가는 시장 권력에 순순히 투항하고 있는 모습을 연출하고 있다. 그래서 뒤로는 정권에 세게 뒷통수 맞고 앞으로는 민감하게 그들의 진정성을 의심하게 된 관객들에게 돌 맞고, 옆으로는 영악한 대자본에게도 외면 받는 사면초가의 상황을 만든 셈이다. 가여워라, 충무로여!

시나리오 작가 조합의 파업에 배우들이 동참하고, 그 여파로 아카데미 시상식이 열리네 마네 하는 할리우드를 보라. 아무리 허섭스레기같은 영화로 세계인들을 혹세무민한다 할지라도, 적어도 자기들끼리는 <마이클 클레이튼>과 <아메리칸 갱스터>로 최고 작품을 겨룬다.

할리우드에 대항해 한국영화의 자존을 사수해 왔다고 자부해온 그들은, 이제사 누굴 향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지도 헛갈려 하는 그들은, 저기선 문화 논리 여기선 시장 논리를 입맛대로 들이대온 영화자본가들은 도대체 어떤 작품으로 한국영화의 우수성을 겨루며 어떤 힘있고도 영리한 전술로 한국영화의 건강한 미래를 사수하고 있냔 말이다.
 산업을 키운들 한국영화의 존립이 그다지도 중요한 거냐고 묻는 관객들에게 대관절 어떻게 대답할거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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