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개봉영화 4편 단평

영화 이야기 2007. 12. 22. 17:34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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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리엄의 장난감 백화점>

장난감 나라의 사람 이야기다. 당신이 이미 네버랜드를 떠나온 어른이라면, 영화 속에 등장하는 의심 많은 회계사처럼 생각하면 무엇이든 이루어지는 아이들의 환상 나라에 거부감 없이 진입하기란 쉽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마고리엄 할아버지의 안내에 따라 의심을 걷어내면, 어느덧 초현실과 현실의 경계를 오가며 들려주는 좌절과 희망, 그리고 이별에 대한 꽤 성숙한 삶의 성찰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동화 나라에도 철학은 있는 것이다.

내게 자녀가 있다면, 올해 크리스마스엔 무조건 이 영화를 보여줄 것이다. 유치하거나 억지스럽지 않으면서도 동화 속에 푹 빠지게 만드는 자크 헬름 감독의 진정성 넘치는 연출만큼이나 더스틴 호프먼과 나탈리 포트만의 신구 연기 앙상블도 눈부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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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다 미쳐>

<기다리다 미쳐>가 '사랑은 위대한 것'이라는 뻔할 뻔자 이데올로기를 설파하는 멜로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현실감이다. 한창 연애감정에 달뜰만한 20대 초중반 남녀들이 '군대'라는 현실적 장벽에 부딛히거나 힘겹게 넘어서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포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일편단심 민들레는 참으로 일찍 지고, 누군가의 짝사랑은 강제로 보지 못하는 시간이 있기에 꽃을 피운다. 대한민국 청춘 남녀들에게 드리운 이 무겁디 무거운, 짧지 않은 생이별의 시간을 멜로 장르 안에 무리 없이 녹여 놓고 있되, 감독의 시선은 쓸데 없이 무겁지도 않고 하염 없이 가볍지도 않다. 요즘 유행하는 떼거리 멜로의 연장선에 놓여 있다는 이유만으로 간과하고 넘어가기엔 아까운 작품이다.

'올밴' 우승민의 영화 데뷔도 일단 성공적으로 보인다. 그의 비중이 좀더 컸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을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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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젤과 그레텔>

<남극일기>의 실패를 딛고 돌아왔건만 감독 임필성의 선택은 여전히 <남극일기>의 동화판과도 같은 느낌을 준다. 열려 있되 갇혀 있는 상황에서 잠재된 잔혹성을 드러내는 <남극일기>의 탐험대처럼, <헨젤과 그레텔>의 주인공 역시 언제든 떠날 수 있으되 결국 돌아올 수밖에 없는, 보이지 않는 감옥에 갇히고 만다. <남극일기>의 탐험대가 그곳에서 인간의 참혹한 본성을 스스로 확인했다면, <헨젤과 그레텔>의 숲에선 폭력적인 세계에 의해 폭력마저 동화가 된 풍경이 펼쳐진다.

'공포물이 아니라 잔혹 동화'라고 설명하는 임필성 감독의 의도대로, 아이들이 숲속에 유배된 동화 속의 설정을 뒤집어 놓고 권력 관계를 역치시키는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래서인지 많이 무섭지는 않고 차라리 처연한 정서를 남긴다. 다만, 후반의 절정부까지 가는 여정이 슴슴하다는 게 흠이다. 임 감독의 영화 두 편을 종합해 보면 그가 어떤 얘기를 하려는지 알겠으나, 왠지 살짝 지루하다는 것이다. 강력한 흡인력으로 관객들을 꼼짝 못하게 할 정도의 영화적 테크닉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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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라스 포에버>

마리아 칼라스 서거 30주년이라는 시의성과 최근의 음악 영화 붐에 편승해 5년이나 지각 개봉하는 영화다. 불멸의 오페라 여신 칼라스의 단순한 전기 영화라기보다 전성기를 지난 뒤의 말년의 칼라스가 겪는 좌절과 도전, 그리고 관조의 순간들을 담고 있다.

예전과 같은 청아한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된 칼라스가 영화 내내 립싱크로 영화를 찍는 상황을 보여주기 때문에, 오페라 장면을 통해 귀는 즐겁겠지, 하는 기대감을 살짝 배반한다. 그런데 영화 자체가 어차피 배우에 의한 립싱크일 수밖에 없는 한계를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어서 오히려 신선해 보인다.

음악 영화 특유의 시청각적 쾌감보다는, 한 위대한 예술가가 영광과 쇠락의 과정으로서의 삶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꽤 묵직한 울림을 준다. 칼라스 역을 맡은 프랑스 중견배우 화니 아르당의 연기력에 많은 빚을 지고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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