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칸 갱스터> 온고지신의 누아르

영화 이야기 2007. 12. 18. 01:29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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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할리우드 영화들을 보고 있노라면, 1960~70년대의 이른바 '뉴 아메리칸 시네마'의 기운을 보는 느낌이다. 베트남전 패전의 충격과 상흔이 할리우드에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던 그 시절, 아서 펜의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부터 마틴 스콜세지의 <택시 드라이버>, 그리고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의 <대부>와 <지옥의 묵시록>까지, 확실히 당대의 미국영화에는 그 이후로 쉽게 감지되지 않은 특별한 에너지로 가득찼다. 베트남전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으로 보였던 미국적 가치에 대한 회의를 종용했으며, 딴따라와 지성이 동거하는 할리우드는 이를 '불쉿'의 냉소와 성찰을 뒤섞은 영화적 발언으로 소화했던 것이다.(당대 할리우드의 문화적 상황은 피터 비스킨드가 쓴 <헐리웃 문화 혁명>(시각과 언어)이라는 책에 자세하게 기술돼 있다.)  

9.11 테러와 이라크전을 통과한데다 대선 레이스가 본격화하고 있는 지금, 할리우드는 다시금 '정신 차린' 영화들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지난해 개봉한 <시리아나>와 <굿 나잇 앤 굿 럭> <바벨> 등의 사회성 짙은 영화에서 그 뚜렷한 징후를 드러내기 시작하더니 스파이크 리의 <인사이드 맨>과 최근 개봉한 <마이클 클레이튼> <헤어 스프레이>와 같은 장르 영화적 틀 안에서도 최근의 정치 사회적 상황과 관련해, 과연 '무엇이 올바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이어가고 있다. 그리고 그 흐름에 거장 리들리 스콧이 방점을 찍었다. 앞서 말한 이유로 <아메리칸 갱스터>에 대한 의미 부여에 인색할 이유는 없다. 게다가 영화적으로도 환영받을만한 구석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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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들리 스콧 특유의 장중하면서도 긴박한 호흡으로 완성된 이 짧지 않은 영화를 단순히 재미 있냐 없냐로 나누는 것은 무식한 짓이 될 터이다. 두 주인공이 베트남 전 당시의 미국 사회의 두 얼굴을 상징하는 실존 인물들이라는 점 보다 중요한 것은, 이 고전적인 누아르를 통해 지금의 미국까지 성찰하겠다는 리들리 스콧의 야심이다. 한마디로 온고지신의 미덕이 이 영화엔 있다.

마약으로 할렘을 지배한 흑인 갱스터 프랭크 루카스(덴젤 워싱턴)는 군 수송기를 통해 동남아시아의 값싼 마약을 대량으로 들여올 수 있을만큼 대범한 인물이다. 동시에 그는 세상의 '공모된 부조리'를 자신의 이익을 위해 활용할 수 있을만큼 영악하다. 말할 것도 없이 베트남 전은 그에게 활용 가치가 높은 기회였고, 영화 바깥에서 군수 산업체들이 배를 불리는 사이, 영화 속의 그는 순도 100%의 마약을 팔아 부자가 된다.

한편으로는, 청렴한 바람둥이 형사 리치 로버츠(러셀 크로)가 있다. 그는 청렴조차 왕따의 구실이 되는 부패한 경찰 조직에 시달리다 마약 특별 수사의 임무를 맡고, 프랭크의 실체를 추적해 간다. 영화가 종반에 이를 때까지 두 사람은 한번도 만나지 않는데, 그래서 주인공의 관계는 전형적인 범죄 누아르의 관계 설정에서 살짝 엇나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같은 시대적 상황에서 서로 다른 길을 걸었던 두 사람이 마침내 외나무 다리에서 조우할 때까지, 막 나가지 않는 갱스터와 부패하지 않은 형사의 삶은 병렬되며 동시에 교차한다. 이 과정에서 이들의 구체적 삶에 파고든, 다르되 다르지 않은 세상의 '공모된 부조리'의 실체가 서서히 떠오른다. 그리고 그것은 두 사람을 순차적으로 가로 막는 거대한 벽이 된다. 앞서 벽을 넘어선 리치는 프랭크의 앞에 서 있는 벽을 감지한다. 그래서 둘은 동지가 된다.

리들리 스콧이 두 실존 인물의 증언을 빌어 재현하는 시대상은, 구호에 가려진 미국의 맨 얼굴이며, 당대는 물론 지금도 유효한 통찰적 시선의 도착 지점이다. 미국 사회를 향한 리들리 스콧의 이 탁월한 문제 제기는, 그답게 가장 영화적인 방식으로, 포스트 9.11 시대 할리우드의 흐름에 한 획을 그어 보이고 있다.

(약간의 스포일러) <아메리칸 갱스터>에는 지금의 미국에게 보내는 질문과도 같은 대사가 자주 나온다. 이를테면  아내가 피습당하자, 다른 조직의 보스에게 따지러 온 프랭크에게 백인 갱스터는 말한다. "승자가 되면 적이 많아지기 마련이지." 자신을 검거한 리치를 매수하려는 프랭크에게 리치는 말한다. "당신은 흑인이고, 흑인은 마피아들에겐 진보야, 진보는 기득권을 빼앗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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