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읽은 몇 권의 소설

별별 이야기 2007.12.09 10:55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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폼페이

로버트 해리스
랜덤 하우스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만큼 서사와 묘사 모두 영화적이다. 그대로 영화로 옮겨도 괜찮겠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2008년 개봉을 목표로 블록버스터 영화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처음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쓰여진 듯한 인상이다. 고대 로마 시대 번영의 상징이었던 도시 폼페이를 무대로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이틀 전의 시점에서 시작된다. 시시각각 다가오는 파멸의 순간을 눈치 채지 못한 채 로마의 건강성을 대표하는 건실하고 정의로운 수도 기사 아틸리우스와, 번영과 탐욕의 상징인 노예출신의 거부 암플리아투스의 행보가 충돌하고 엇갈린다. 로만 폴란스키가 메가폰을 잡는다는 영화에선 올랜도 블룸이 아틸리우스를 연기한다는데, 나는 오히려 암플리아투스를 누가 맡을까, 훨씬 더 궁금하다. 히스토리 팩션계의 대가로 소개된 지은이 로버트 해리스는 저널리스트 출신의 영국인이다. 이 책 <폼페이>가 한국에서 베스트셀러에 오르기 전 국내에 소개된 그의 또 다른 대표작 <이니그마>는 판매량이 신통치 않았다니, 내 보기엔 제목 탓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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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말로 좋은 날

성석제
문학동네
사투리의 말맛을 가장 잘 살려내는 성석제의 문체에선 해학이 돋보인다, 고 믿고 있었으나 이 책에선 오히려 비인간적인 삶의 조건 속에 던져진 사람들이 상처 받고 상처를 내고 있는 상황에 대한 고통 어린 연민이 읽힌다. 그러니 '참말로 좋은 날'은 참말로 역설적인 제목인 셈이다. 가슴 한켠이 주저 앉은 듯한 씁쓸함을 달래며 읽은 소설집이다. 특히 마지막 단편, '저만치 떨어져 피어 있네'는 더욱 그러했다. 삶의 벼랑 끝으로 몰린 한 사내의 처절한 파멸기는 21세기판 '운수 좋은 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실에서는 무기력하지만 인터넷에서 그가 신이다'라는 문장에서는 악플 심리학의 단초를 읽을 수 있었다. 이 무기력이 분노로, 그리고 누군가에 대한 증오와 저주로 악순환되는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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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 니시키 씨의 행방

이케이도 준
미디어2.0

"이 책은 은행원들이 꼭 읽어 봐야 한다"고 은행원 선배에게 권했더니 그가 그런다. "너 모르는구나, 우리나라에서 책 가장 안 읽는 직업군이 은행원이란 걸." 흠...그런데 생각해보니 은행원들이 대거 이 책을 읽으면 사표가 줄을 잇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니시키 씨처럼 행방불명되는 은행원이 속출하려나. 실적이 개인의 개성을 대체해 버린 은행원들의 세계를 미스터리 소설의 틀로 묶어낸 이 책은, 장르적 쾌감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통찰을 동시에 선사해 주는 수작이다. 원제는 '샤일록의 아이들.' 작가 스스로가 은행원 출신이라는 점은, 인물과 사건에 설득력을 부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이렇게 자신의 직업적 경험을 고스란히 작품에 녹여내는 일본의 장르 소설을 보고 있으면, 거꾸로 너무 일찍 전업의 길로 들어선 한국의 젊은 작가들에게 느껴지는 어떤 '막연함'의 정체를 확인하게 된다. 삶 속으로 걸어 들어가지 않고, 삶의 주변에서 머뭇거리며 손가락을 빨고 있는, '키덜트'들의 두려운 막연함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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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늘의 계절

요코야마 히데오
랜덤하우스

사회부 기자 시절, 매일 경찰서를 들락거렸어도 나는 사건이나 사고에 온통 신경을 썼지, 그것을 다루는 경찰 조직의 생리나 경찰관들의 애환에 대해선 별반 관심이 없었다. 역시 한때 사회부 사건 기자를 했던 이 책의 지은이 요코야마 히데오는 아마도 기자 시절부터 사람에 대한 애정과 관찰력이 남달랐던 인물이었음에 틀림 없다. 게다가 수사반장 이상으로 굉장히 호기심이 많았던 기자였을 것 같다. 경찰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사건 수사가 아닌 경찰 조직 내의 정치적 알력과 욕망의 충돌을 미시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게다가 그것을 아주 흥미진진한 미스터리 추리극의 그릇에 맛깔나게 담아냈다. 욕망의 충돌을 그려내는 데 미스터리 스릴러만큼 딱 들어맞는 장르도 없다는 판단이었겠지만, 그가 쓴 다른 미스터리 소설, <종신 검시관>이나 <동기> <클라이머즈 하이> 등을 보면 역시 장르의 달인이라는 감탄을 연발하게 된다. 모두 사회부 기자 시설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쓴 책들이다. 난 사회부 있을 때 뭐했나 싶기도 하지만, 이렇게 민감한 촉수와 창의력을 동시에 가진 이들은 아마도 타고 난 것이리라 위안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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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수정/삭제  댓글쓰기

    비밀댓글입니다

    2007.12.09 22:48
  2. BlogIcon catchy cat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요즘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는 소설집을 아주 재미있게 읽었답니다. 데뷔작이었던 <달려라 아비>에 이어, 이번 역시 저를 실망시키지 않더군요. 현재는 천명관의 <고래>를 읽기 시작했는데... 자꾸 이런 훌륭한 '문학'을 읽다보니, 잡문 쓰기가 자꾸 꺼려지는 악영향이.... ㅡ.ㅡ;;

    2007.12.09 23:17 신고
    • cinemAgora  수정/삭제

      잡문도 문학입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2007.12.09 23:29
    • BlogIcon 여자,신화  수정/삭제

      저도 달려라 아비 아주 잘 읽었어요. 특히 그렇게 문이 닳도록 드나드는 편의점을 건조하고도 냉소적이게 그린게 참 좋았어요.
      '고래'는 다 읽고 나면 스토리텔링의 진수를 느낄 수 있으실거예요. 제가 그랬거든요^^
      징글징글한 삶의 인연과 시대가 공감되실걸요~ ㅋㅋㅋ 아마 코끼리도 하나 갖고 싶은 마음이 들지도...ㅎ.ㅎ

      2007.12.12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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