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싸움이야 칼로 물배기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이혼 커플은 칼로 물만 배지 않는다. 진짜 서로를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다. 더 이상 부부가 아니라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다.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의 피트와 졸리처럼, 그들 역시 영화 속의 주인공들이기 때문이다.
대학교수 상민(설경구)과 공예 미술가 진아(김태희)는 방금 이혼했다. 요즘 젊디 젊은 돌싱(돌아온 싱글)들이 넘쳐 나는 세상이니 나름 현실성 있는 설정이다. 이혼 사유는 성격 차이. 상민은 결벽증이 심하고, 진아는 자존심이 무한수열이다. 배울만큼 배운 사람들이 그 정도 성격 차이 하나 극복 못하고 틈만 나면 티격태격이다. 헤어지고서도 싸울 건더기를 찾아내고 싸우고 또 싸운다. 급기야 목숨을 담보로 한 자동차 추격전까지.
일본 원작을 리메이크한 TV 드라마 <연애 시대>로 주가를 올린 바 있는 한지승 감독은 이혼 커플의 티격태격 로맨스를 영화라는 매체적 특성에 걸맞게 조금 더 극단적인 버전으로 업그레이드한 것처럼 보인다. 설정 자체의 독창성엔, 그러므로 높은 점수를 줄 수 없겠다. 게다가 아무리 영화라지만, 이별과 다툼, 그리고 화해로 이어지는 과정의 비약이 일반적인 허용치 이상이다(물론 등장인물들이 아직 어른이 안된 애들이라면 어쩔 수 없지만). 그럴거면 차라리 액션 누아르를 넘어 SF로 가버리는 게 어떨까 싶기도 하지만, 두 사람의 관계 설정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에 비해 지나치게 현실적이라는 것이 끝내 발목을 잡는다. 그러니 영화는 관객의 넓은 아량을 당당하게 요구하고 있는 것 같다. "여보시게들, 이건 영화야. 게다가 김태희의 저 사랑스러운 악쓰기가 키포인트라고! 김태희의 저런 표정, CF에서도 못본 거 아냐?"
2007/12/05 - [씨네파파라치] 신작 찔러보기 - 낚일까? 말까?
예컨대 이 장면에서부터 영화는 미국 로맨틱 코미디에서 흔히 써먹는(그것도 예전에 쓰고 요즘엔 거의 폐기처분한) 전형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감독은 두 사람의 캐릭터 묘사를 위해 배경을 대충 처리해 버리는데, 오히려 이 지점에서 배경의 반전을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것은 두 사람을 어떻게 바라 볼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재치 어린 관점을 관객에게 슬쩍 제시하는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감독이라면 나이대가 다른 두 쌍의 행인이 쓰윽 지나가면서 이런 말을 던지게 했을 것이다. 중년 커플, "꼴값떨고 있네, 요즘 것들은 연애도 참 지랄나게 해." 젊은 여성 두명, "어머, 쟤들 지대로 재수다~" 그리고 오프닝 타이틀이 뜬다. 이제부터 우리는 앞선 두 행인의 냉소적 관점을 슬쩍 차용한 상태에서 '꼴값 떠는 지대로 재수 커플의 지랄 액션 어드벤처'를 '쟤들 왜 저럴까?'라는 부담감 없이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래, 연애란 원래 저렇게 부끄러운 줄 모르고 찧고 까부는 일이지." 하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