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 스릴러를 닮은 2007 대선

별별 이야기 2007.11.30 09:41 Posted by cinemAgora

사용자 삽입 이미지

<유주얼 서스펙트> 브라이언 싱어, 1995

스릴러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은근히 반전을 기대하기 마련이다. 브라이언 싱어의 걸작 <유주얼 서스펙트>처럼 뒷통수를 세게 때리는 의외의 반전이 영화 말미에 멋지게 기다리고 있다면, 설령 앞서 살짝 지루함과 짜증을 느꼈던 관객이라도 흔쾌히  면죄부를 발행한다.

사람들이 반전을 좋아하는 이유는 예상대로 흐르는 이야기가 지루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우리 삶의 은유이기 때문이다. 삶은, 기습적으로 치고 들어오는 돌발 상황의 연속이라는 것을 직관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반전이 지금의 상황을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바꿔 놓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혹은 거꾸로 반전에 의해 상황이 부정적인 방향으로 급회전하게 되더라도, 그 또한 삶의 단면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개인의 영역에서 불행의 반전은 행복이고, 가난의 반전은 부의 획득이며, 사랑의 반전은 이별이 될 것이다. 불합리한 세상에 구역질이 난다면, 우리는 좀더 거시적인 반전을 기대할 수 있다. 이를테면, 부정 부패의 반전은 정의와 양심이며, 독재의 반전은 민주주의이고, 분단의 반전은 통일이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마이클 클레이튼> 토니 길로이, 2007

로버트 맥기의 <시나리오 어떻게 쓸 것인가>(원제 STORY, 황금가지)에 따르면, 반전의 쾌감은 기대와 결과 사이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증대한다. 때문에 가장 큰 반전은 영화의 절정부에 자리잡기 마련이다. 지금까지의 이야기 흐름을 일순간에 전복시킴으로써 관객을 얼얼하게 만들기 위해선 결말 직전에 반전을 배치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까닭이다. 최근 개봉한 <세븐 데이즈>나 할리우드 영화 <마이클 클레이튼>은 이같은 반전의 미학을 비교적 훌륭하게 구사한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운이 좋은건지 나쁜건지 몰라도, 대한민국 국민들은 이런 드라마틱한 반전의 미학을 굳이 영화에서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세상이 온통 반전 스릴러이기 때문이다. 2007년 대통령 선거가 그 대표적인 사례다.

대선이 결말 직전, 즉 절정에 이르면서 'BBK 주가 조작 사건 수사 발표'라는 의미심장한 반전이 예고되고 있다. 한쪽에선 싱거운 반전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는 한편, 또 한쪽에선 그것이 지금까지의 흐름을 단숨에 뒤집을 수 있는 초강력 반전이 되기를 노골적으로 고대하고 있다. 기대와 결과의 간극이 크면 클수록 반전의 효과는 증대될 게 분명하다. 감독을 맡은 검찰이 어떤 반전을 준비했을까, 숨이 꼴깍 넘어간다. 계약서와 도장이라는 '복선'이 이 반전에 어떻게 활용될 것인가, 조마조마해진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닉슨> 올리버스톤, 1996

대선이 반전 스릴러를 닮았다는 것은 씁쓸한 노릇이지만, 동시에 흥미롭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한 나라의 권부를 결정하는 일을 불과 몇 십일 앞두고 거대한 반전이 도사리고 있다. 그래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올리버 스톤의 <JFK>나 <닉슨>을 능가하는, 손에 땀을 쥐게하는 정치 스릴러가 지금 우리의 눈앞에서 매일 뉴스를 통해 중계되고 있다.

아무래도 지난 2002년부터 대한민국 대선은 반전의 재미에 푹 빠져 있는 것 같다. 국민들에게 흥미진진한 볼거리와 역전의 드라마를 함께 선사하겠다는, 위정자들의 엔터테이너적 발상이 이토록 가상한데, 누가 이번 대선을 재미 없다 나불대는가.

이 흥미로운 반전 스릴러의 최종 결말은 12월 19일 알 수 있다. 다만, 유권자들이 그 순간의 반전을 연출할 '감독'이 될지, 결말을 관조할 '관객'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다. 사실 그것이야말로 우리 스스로가 만들어낼 수 있는 유일한, 그러나 최고의 반전이 아니겠는가.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mailing  수정/삭제  댓글쓰기

    십년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가게 통쾌합니다..
    반전 스릴러,,저도 기대해 보려구요,,암만~!!!

    2007.11.30 11:25
  2. BlogIcon 여자,신화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우~~맥기형님얘기...특히 차이나타운를 씬별로 조근조근 써준거보면서 너무 공감갔었는데...하지만! 그 형님의 대표작은 없다는거~ㅋㅋ

    올해 대선 반전스릴러의 주인공은 누가 될지 간절히 궁금해집니다.
    뭐...그 물에 그 물고기겠지만요^^

    2007.11.30 12:23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선거란 원래 최선을 뽑는 일이라기보다 차악을 뽑는 일이라는 말이 맞는 거 같습니다. 최악이 아닌 차악!

      2007.12.01 13:08 신고
  3. ckarusgkrl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나 없이 모두 뒷통수 쳐대는 으스스한 세상이죠.
    반전의 묘미를 너무 즐기는 듯 합니다만,,,

    2007.11.30 13:19
  4. 기인숙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람을 똥통에 넣어놓고 탈출하나 안하나 보는 것은 인간이 할 짓이 못된다...아마도 동물 중에 가장 잔인한 것이 인간이 아닐까 싶다...

    2007.11.30 17:13
  5. 은빛소망  수정/삭제  댓글쓰기

    부디 반전 스릴러에서 그쳤으면 좋겠네요~
    느와르가 아니라 ^^;

    2007.11.30 19:42
  6. 새벽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럴때 가끔씩 나오는 말이 있죠.

    "자고로...영화란 전체적인 내용,구성이나,흐름,미장센등~! 다양한 요소를 꼼꼼히 살펴보는것이 필요한 법인데 오로지 막판 한방!의 반전만 눈에 불을켜고, 목이 빠져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금 현실상황도 좀...;

    그건그렇고 이거, 2007년에 봤을때는 분명 흥미진진한 '스릴러'인줄 알았는데 몇년 지난후에는 알고보니 '재난영화'의 시작이었더라 라는 생각이 드는건 아닐런지...-_-;

    2007.11.30 21:51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한방의 반전이 상황을 바꿀 수 있을만큼 우리나라의 정치 지형이 취약하다는 얘기겠지요. 다만, 전 지금 반전이라도 일어나지 않으면 재난영화가 시작될 것이라는 데 베팅합니다.

      2007.12.01 13:12 신고
  7. BlogIcon Luric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는 반전이 싫어요...ㅠ ㅠ;;;
    지금껏 좋은 쪽으로 반전된 일이 한번도 없거든요.

    2007.12.01 01:23
  8. 날라리아  수정/삭제  댓글쓰기

    하던대로 해야지 갑자기 너무 좋게 가면 다들 탈납니다-.-;;; 그래도 역시나 인물 좋고 목소리 좋고 개인적으로 돈도 너무 많아서 그쪽으로는 별 관심도 없는, 그러나 아주 똑똑하고 카리스마있는....
    그런 사람이 왜 대통령을 할까요?(죄, 송합니다..ㅠ.ㅠ)

    2007.12.01 01:45
    • BlogIcon cinemAgora  수정/삭제

      다른 거는 몰라도 그 구리구리한 인생만큼 구리구리하게 생기신 딱 한 분만은 대통령이 안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2007.12.01 13:10 신고
  9. 후주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의 발표로 싱거운 반전이 되었군요. 끝까지 갈 수 있을 지 아님 반전의 반전이 될 지 지켜봐야 겠군요. 마이클 클레이튼이나 요번 주말 볼까 합니다. 극장문 내리기 전에...

    2007.12.06 17:15
  10. irony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화를 (비)합법적으로 많이 우리 국민에게 반전은 더이상 신선한 것이 못되었나 봅니다. 이것도 한계효용체감의 법칙이랄까요. 그동안 너무 익숙해져서 무뎌진 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2007.12.21 17:50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19/11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