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스 영화 속 사랑이 익는 풍경

영화 이야기 2007. 11. 17. 00:44 Posted by cinemAgora

사랑은 김치와 같다. 익어야 제 맛이다. 물론 겉절이 좋아하는 분들 계시겠지만, 삭힌 홍어의 맛을 아는 자만이 삼합을 논할 수 있는 것처럼, 익은 사랑의 맛을 아는 자만이 삐리리의 순간이 사랑의 전부가 아님을 선언할 수 있다.

그런데 사랑이 익기 위해선 얄궂게도 고통의 시간을 감내해야 한다. 삐리리의 전류가 흐른 뒤, 초보 연인들에겐 시련이 닥친다. 그 시련은 여러가지 양태로 사랑의 숙성 과정을 끊임 없이 괴롭힘과 동시에 발효시킨다. 아이러니지만 그렇다. 고통은 사랑을 방해하고 한편으로 돕는다.

우리가 여러 매체를 통해 가장 많이 보는 고통의 사례는 바로 양가 부모의 반대다. 흔히 TV 드라마에서 상투적으로 써 먹는 설정이다. 요거 좀 낡았다. 요즘 세대 부모가 반대한다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거대한 유산에 신경 쓰는 마마보이, 마마걸들이라면 모를까. 게다가 부모들도 개화돼 애들 연애사에 감놔라 배놔라 하는 시기는 지났다. 오히려 서른이 넘도록 시집 장가 못가고 있는 자식들 등 떠민다. "길거리에 치이는 게 여자고 남자인데, 넌 그 흔한 연애도 못하고 뭐하니, 이 화상아!" 혹은 "아무하고나 빨리 좀 가라!" 심지어 이미 혼인한 자식에게 간혹 새 삶을 종용하는 급진적인 부모들도 적지 않다. "김서방 못쓰겠더라. 이혼해라." 그러니 이런 설정, 영화에선 안 쓰는 게 지당하다. 영화는 드라마틱한 사건과 첨예한 갈등의 사례를 통해 삶을 은유하는 매체다. 부모님 반대는 요즘 사건도 아닌 것이다.

또 한가지 흔한 것. 실 생활에서도 아마 가장 흔한 고통일 것이다. 성격 차이다. 요거 별 것 아니겠지만 쥐약이다. 양식 먹고 싶은데 일식 타령하고, 지하철 타자 하면 버스 타자면 처음엔 그래 그래 하다가도 은근히 짜증이 돋는다. 잠 잘 때 사랑해, 아침에 일어나서 사랑해,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해 들어야 되는 여자에게 무뚝뚝한 남자는 천벌이다.

흔하고 흔한 게 성격 차이니 이건 로맨스 영화의 고통 소재로 삼기엔 함량 미달이라 생각하시면 오산이다. 말 된다. 왜? 알콩달콩의 드라마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요즘 로맨스 영화들은 현실적인 관계들을 선호한다. 부모님 반대, 그딴 낡은 거 아니라면 성격 차이로 인한 티격태격은 재미 있다. 무엇보다 웃음을 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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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오스틴 원작의 <오만과 편견>의 리지와 미스터 다아시. 서로들 잘난 선남 선녀다. 리지는 코가 하늘을 찌르는 자존심의 대명사다. 사랑이 없는 결혼 따위는 생각할 수도 없는 자유 연애의 신봉자다. 그러던 그녀가 혼인 시장의 '대 놓고 삐리리 조장 행사'인 댄스 파티에서 다아시를 만난다. 멋있는 녀석이다. 끌린다. 어김 없이 스파크가 터진다. 그런데 오해가 생긴다. 리지는 그가  자신의 외모를 평가하는 말을 엿듣는다. "봐줄 만하지만 날 매료시킬 정도는 아냐." 이거, 직격탄이다. 게다가 다아시가 그녀의 가문을 업신여겼다는 혐의를 사실 확인도 안하고 믿게 된 엘리자베스는 그를 '오만과 편견'으로 가득찬 속물로 단정한다. 그리고 예의 티격태격. 지금 같으면 핸드폰으로 몇 번 통화하면 풀릴 오해지만, 둘의 만만치 않은 성격은 첨예한 대립을 조장한다. 싸우다 정든다 하던가. 둘의 오해는 어느 억수같이 비오는 날, 키스 신공 한 방으로 눈 녹듯 사라진다. 오해가 풀린 탓도 있지만 다툼 속에서 서로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한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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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달콤 살벌한 연인>도 두 남녀의 성격 차이를 코믹하면서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똑똑하고 젠틀하지만 체질적으로 연애를 못하는 대학 강사 황대우(박용우)앞에 매력적인 여자가 나타난다. 그녀의 이름은 미나(최강희). 데이트를 시작했지만 이 미나라는 여자 알다가도 모를 인물이다. 정확하게 얘기하면 성격 차이가 아니라 '성적 차이'다. 뻑하면 혈액형으로 사람 성격을 단정하고,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도 모른다. 시쳇말로 개념 상실한 여자다. 그런데도 이상하게 귀여운 구석이 있다. 뭔가 비밀을 숨겨 놓은 것 같은데, 황대우는 수컷적 본능적으로 코를 킁킁댄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그녀의 키스에 뻑이 간다. 개념이고 나발이고 무소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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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차이는 그러나, 비교적 쉽게 극복될 수 있다. 더 큰 고통은 상대방이 안고 있는 내면의 상처다. 그리고 그 상처는 상대방에게 또 다른 생채기를 내기 일쑤다. 니콜라스 케이지 아저씨가 지금보다 머리가 덜 벗겨졌을 때 찍은 걸작 <라스베가스를 떠나며>를 보시라. 주인공 벤, 실직에 알콜 중독, 가족은 풍비백산. 덧 없는 인생이다. 라스베가스로 흘러든 그는 죽을 때까지 마시기로 작정한다. 그런 그에게 거리의 여자 세라가 나타난다. 둘은 동거를 시작한다. 조건이 있다. 서로에게 잔소리 안하기. 상처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방어막이다. 그러나 그게 쉬운 일인가. 사랑이 깊어질 수록 잔소리도 늘어난다. 그러다 보니 일부러 상처를 주게 된다. 그러나 결국 둘은 각자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 서로를 깊이 사랑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여기서 교훈! 상대방의 상처를 결코 방임하지 말라. 상처는 핥아 주어야 낫는다. 그리고, 그게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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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키 류이치가 감독한 일본 영화 <바이브레이터>도 마찬가지다. 환청이 들리는 병에 시달리는 프리랜서 작가가 여주인공이다. 어느날 편의점에 갔다가 준수하게 생긴 트럭 운전사에게 삐리리됐다. 다짜고짜 생면부지의 운전사가 모는 트럭에 올라탔다. 그리곤 함께 여행을 한다. 여자는 상처를 드러내지 않는다. 아니 말하지 않을 뿐, 남자는 그녀가 품은 내면의 상처를 직감한다. 그는 캐 묻는 대신 보듬는다. 그녀에게 필요한 게 기대어 쉴 어깨라면 그는 흔쾌히 어깨를 내준다. 그 과정을 겪으며 여자는 서서히 잃었던 자아를 찾아낸다.

가장 많은 로맨스 영화에서 등장하는 고통의 설정은 무엇일까.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불치병이다. 그만큼 사랑의 숭고함과 영원성을 확인하기 위한 장치로 쓰이기에 불치병만한 것이 없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만 해도 <선물> <국화꽃 향기> <내 머리속의 지우개><사랑하니까 괜찮아> 등 신파 멜로물의 단골 소재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게 또 이 불치병이다. 그런데 왜 불치병은 하필 여자가 걸릴까?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 그렇다. 항구가 병이 들면 배는 옴짝달싹 못한다. 그게 순리다. 말 안된다고? 좀더 실질적인 이유를 대볼까? 멜로 영화의 주 관객층이 여성이기 때문이다. 여성들의 감정이입을 유발하기 위해선 병든 남자보다 병든 여자가 더 설득력 있다. 생각해보라.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야 할 이의 입장이 슬픈지, 사랑하는 이를 남기고 떠나야 할 이의 입장이 슬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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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설하고, 최근작 가운데 <너는 내 운명>을 사례로 꼽았다. 이 영화는 지독한 신파 멜로다. 그런데 흥행에 빅 히트를 기록한 것은 순전히 이 없을 법한 이야기가 실화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세상에! 이런 지고지순한 사랑이 아직도 존재하다니, 관객들은 그 사실에 흔쾌히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아시다시피 전도연이 연기한 은하는 직업 여성이라는 이유로 에이즈에 걸렸다. 석중(황정민)은 그래도 개의치 않는다. 그의 위대한 사랑은, 이들을 갈라 놓으려는 세상의 편견과 거대한 벽을 훌쩍 뛰어 넘는다. 우리들은 간혹 애인이나 배우자에게 묻지 않던가. "나 병 걸려서 죽을 때 너 나랑 같이 있어 줄거지"? 죽음의 두려움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같이 한 삶의 기쁨 때문에 사별조차 흔쾌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 그것이 사랑이 필요한 진짜 이유라는 걸, <너는 내 운명>은 설파한다. 신파지만 울지 않을 수 없는 신파다. 우리가 이 영화를 보며 우는 이유는, 우리 스스로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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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민은 복도 많지. <너는 내 운명>에서 전도연을 안더니, 최근작 <행복>에선 임수정을 차 버렸다(새로 찍는 영화에선 전지현이란다! 이런 된장!). 두 영화, 설정 면에서 비슷하다. 이번에도 여자가 불치병이다. 악성 폐질환을 앓고 있는 은희는 방탕한 생활 덕에 간경변에 걸린 영수한테 끌려 살림을 차린다. 한동안 깨 소금이 쏟아진다. 죽고 못 산다. 그런데 영수에게 딴 마음이 생긴다.  살신성인의 헌신으로 그의 병을 낫게 해준 은희가 정작 그 자신의 병 때문에 식사도 깨작깨작 하는 게 못마땅해진다. 이쯤 되면 인간 말종이다(남자 입장에선 살짝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헴). 불치병은 서로를 더욱 강한 연대의 끈으로 묶어주는 구실을 하지만, <행복>은 그 반대의 현실을 비추고 있어 잔인한 영화다. 잔인하지만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영화가 끝끝내 신파인 이유는 따로 있다. 은희는 끝까지 영수를 잊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 죽음의 순간에 함께 있기로 한 약속을 지켜낸다. 그러나 그건 영수가 저지른 죄에 대한 처벌과도 같은 의식처럼 보인다. 은희는 영수에게 자신의 죽음을 목도하게 함으로써, 남은 생애에 결코 치유되지 않을 거대한 회한을 남겨준 셈이다. 회한으로 점철된 외로운 죽음, 그게 영수에게 남겨진 쳔형이다. 영수에게 천형을 남김으로써 은희의 사랑은 통속이 된다. 그러니 신파다.

정리해 보자. 고통스럽지 않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고통은 사랑의 이음동의어다. 고통에 굴복하면 사랑은 신기루가 된다. 극복한다면? 글쎄...조용히 곁에 찾아온 그 무엇이 일상의 매 순간을 기쁨으로 가득 채워 놓고 있음을 깨닫게 되겠지.

sbs 라디오 '이승연의 시네타운' 출연 초고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글입니다. 앞으로 몇 번 더 연재할 생각이었으나 아쉽게도 속 좁은 필자가 궁합이 안맞는다고 판단한 시네타운 출연을 중단해 로맨스 영화 시리즈는 여기서 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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