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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위대하다. 많이 듣는 소리다. 그만큼 모성에 대한 칭송은 고금을 막론한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비록 최근에는 가부장의 위기 상황에 대해 다분히 반대급부적인 부성애 찬양 영화들이 잇따라 등장하고 있지만, 한국영화만 해도 <인어공주> <사랑해 말순씨> <말아톤> <엄마> <맨발의 기봉이> <허브>, 최근에는 하명중 감독의 직설적인 모성 찬양극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와 코미디 <권순분 여사 납치사건>까지, 어머니의 위대함을 설파하는 영화의 전통은 트렌드의 향방과 상관 없이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어머니의 조건 없는 사랑만큼 시대와 환경을 막론한 보편적 감동의 원천을 찾기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모성을 소재로 채택한 많은 영화들이 모성애의 강조를 위해 드라마틱한 사건을 만들어내는 경우를 자주 봐 왔다. 가족 휴먼 드라마라는 장르적 범주가 기승전결의 드라마를 강요하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현실에서 모성의 풍경은, 적어도 제 3자가 보기엔 그다지 드라마틱하지 않은 경우가 더 많다. 가정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거나, 때론 아버지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지지부진한 생계 전선에 나가거나, 대개 어머니의 처지는 어머니이기에 특수해 보이지 않는다. 요즘엔 자식들을 위해 입시 전문가를 자처하거나 대학 수강신청까지 대신 해주는 열성 어머니들이 있다고는 해도, 그것조차 모성의 소산이므로 유난스러워 보일지언정 보편적이지 않은 건 아니다. 어머니라는 존재의 일생에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는 순간이나 불의의 사고로 자식과 사별하는 순간 말고 어떤 극적인 드라마가 있을 수 있을까.

왜 없겠는가. 어머니의 눈에 자식이란 태어남부터 자라나는 모든 과정이 드라마다. 그 자식이 첫 걸음을 떼고, 처음으로 말 다운 말을 하는 순간, 더 커서 학교에 들어가고, 대학 졸업장을 받아오고, 취업을 하게 되고...순간 순간이 새록새록 드라마다. 차원이야 다르겠지만 자식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경우, 군대 훈련소에 면회 온 어머니를 뒤로 한채 다시 병영으로 행진해 돌아갈 때, 꾸역 꾸역 '멋진 사나이'를 부르며 삼켰던 눈물의 순간을 잊지 못한다. 나는 아직까지 그 어떤 영화에서도 그 순간을 능가하는 드라마틱한 감동을 느껴본 적이 없다.

릴리 프랭키의 소설 <도쿄타워: 엄마와 나, 때때로 아버지>를 영화화한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전형적인, 그래서 드라마적이지 않은 듯 보이는 한 어머니의 인생에서 드라마를 뽑아낸다. 언뜻 가장 드라마틱해 보이는 아버지와의 불화와 이별을 그냥 저냥 툭 묘사하면서 시작하는 이 영화는, 커나가는 아들을 홀로 뒷바라지 하는 어머니의 고단하면서도 낙천적인 생을, 그리고 그 마지막을 아주 긴 러닝타임 내내 담담하게 묘사하는 데 그친다(오히려 아들의 방탕한 대학 시절과 지지리 궁상의 가난한 시절이 더 많이 나오는데, 그런 아들을 묵묵히 바라보는 어머니는 마치 후경처럼 단단한 존재감으로 버티고 있을 뿐이다).

어머니와 자식은 필연적으로 이별과 재회를 반복하다가 끝내 이별할 수밖에 없도록 맺어진 관계다. 그러므로 둘은 서로에게 드라마다. 이 영화 속의 어머니와 아들도 그렇다. 진학을 위해 탄광촌의 집을 떠나는 아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특별하지 않은 풍경에서  꽤 큰 감동이 밀려 오는 데 대해 나는 놀랐다. 정성스레 싸주신 도시락을 먹으며, '힘내고 공부 열심히 하라'고 쓰인, 이 세상의 모든 어머니의 마음과 다르지 않은 편지 글을 읽으며 주인공이 울먹일 때, 장식이 달리지 않은 이 정직하게 보편적인 풍경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을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이상 어머니와 아들간의 교감을 어떻게 더 드라마틱하게 표현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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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오다기리 죠의 도쿄타워>는 모든 관객들이 모성에 대해 가지고 있는 잠재된 아련함과 경외감을 신뢰한다. 신뢰하므로, 이렇다할 영화적 설정이나 장치 없이, 이를테면 주인공 아들이 생이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함께 건널목을 건너는 순간의 슬로 모션만으로도 기꺼이 눈물을 훔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

원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릴리 프랭키 소설 속의 어머니는 말년에 아들과 함께 살게 되면서 이웃 주민들에게 애써 밥을 해 먹이는, 넉넉하고 호탕한 분으로 묘사된다고 한다. 어머니는, 메마르고 황폐한 듯 보이는 도쿄라는 도시적 공간을 인정이 흐르고 살갑게 챙겨주는 '고향'으로 만든다. 그게 이 작품이 설파하는 진정한 어머니의 위대함이 아닐까. 자기 아들에 대한 헌신에만 그치지 않고, 모두에게 어머니일 수 있는 어머니성의 진면 말이다. 후반부의 암투병과 모자의 사별에 많은 비중을 할애한 나머지 영화가 이 부분에 집중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일본의 고두심, 또는 김혜자라고 불러야 하나? 영화 속 노년의 어머니를 연기한 키키 키린의 연기는 대단하다. 젊은 시절의 어머니를 연기한 우치다 야야코는 그녀의 친딸이라는데, 실제로 참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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