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폭력의 기록 '서산개척단'

영화 이야기 2018. 5. 24. 08:41 Posted by cinemAgora

"이게 나라냐?"

많이들 들은 소리일 겁니다. 그쵸. 세월호 사건 직후, 최순실 국정 농단 직후 이 나라 곳곳에서 울분 섞여 터져 나왔던 소리들이죠. 그때 우리는 생각했을 겁니다. 나라란 과연 무엇일까? 국가란 과연 무엇일까. 나를 위하지 않는 국가가 국가인가? 내 아이들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나라가 나라일까?

그 의문에 담긴 울분과 분노를 그저 삼키고 만 데 그치지 않아, 우리는 촛불 혁명을 성공시켰고, 박근혜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있나요? 그건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나는, 우리가 여전히 해야 할 일이 아주 많다고 믿습니다. 그 중에 하나는....

나라가 나라답지 않았던 시절을 끊임 없이 기억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조금 더 나라다운 나라, 나를 위한 나라, 내 아이를 위한 나라에 가깝게 다가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똑바로 응시해야 하는 이유가 그것입니다. 바보 같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말라고 역사가 존재하는 것입니다.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근혜의 아버지) 박정희도 아마 "이게 나라냐?"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4.19 혁명 이후 사회 각계에서 각자의 목소리가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는 상황을 그는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가 일본 사관 학교와 만주군 장교로 복무할 때 배운 사무라이 정신으로는, 그 자유로운 무질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겁니다.

해서 그는 총으로 권력을 찬탈하고, 지금부터 내가 짱이다! 라고 외쳤습니다. 그리고 한손에는 '반공' 한손에는 '번영'의 슬로건을 들고 온 국민을 향해 군인 답게 "약진 앞으로!"를 외쳤습니다.

이번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서산개척단>은 바로 그 "약진 앞으로!"의 명령에 희생된 이 나라 국민의 일부를 이야기합니다.

충청남도 서산에 가면 거대한 간척 사업에 의해 농지로 개간된 땅이 있습니다. 박정희 정권 때 만들어진 곳입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바다를 땅으로 메꾼 이들은, 대부분 영문도 모른 채 납치된 이들이었습니다. 먹고 살기가 힘들었던 시절, 거리를 떠도는 이들을 무조건 잡아 이곳에 풀어 놓고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굶거나 맞아서 죽었습니다.

이 개간 사업을 조건으로 박정희 정권은 미국으로부터 천억 원에 달하는 경제 지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은 한푼도 개간 사업을 위한 인건비에 쓰이지 않았고, 박정희의 장기 독재를 유지하는데 쓰였습니다.

웃기죠? 북한에는 아오지 탄광이 있고, 일본에는 강제 징용이 있었다고 욕을 해대면서, 정작 우리 안의 '군함도'는 우리가 모르고 있으니까요. 그렇게 국가의 폭력에 짓밟히고 기만에 속은 이들이 여기 이땅에 존재하는데도 말이죠. 교화와 갱생을 빌미로 거기 끌려왔던 이들은 말합니다. "박정희 때문에 이만큼 먹고 살게 되었다고들 떠드는데, 박정희는 그만큼 많이 죽였다."

거기 서산에는 여전히 그때 끌려 왔던 사람들이 살고 있습니다. 그들은 개간 사업을 마무리 하면 땅을 무상 분배해줄 거라는 거짓 선전에 속아 죽을 힘을 다해 일했습니다. 국가는 어느새 표정을 바꿔 그들에게 임대료를 내라고 윽박지르고 있습니다.

스무살 안팎의 나이에 서산 개척단에 납치 또는 동원되었던 그 청년과 처녀들은 모두 노년이 되었고, 아주 뒤늦게 묻습니다. 그게 나라였냐고. 그리고 또 묻습니다. 지금의 나라는 그들에게 나라다운 나라가 될 수 있냐고.

이런 질문은 계속되어야 합니다. <서산개척단>은 이 시대의 정신 못차리는 저널리즘이 하지 못하는 질문을 집요하고도 세밀하게 찾아 던집니다. 나는 이런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이들에게 최고의 경의를 보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고작 그것뿐이라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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