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적 스토리텔링과 '택시운전사'

영화 이야기 2017. 8. 8. 15:39 Posted by cinemAgora

 

비교신화학자 조셉 캡벨에 따르면, 어느 문화권이든 신화는 기본적으로 영웅의 여정이라는 유사성과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이 영웅의 여정은 보통세상에서 특별한 세상으로 여행을 떠났다가 다시 보통 세상으로 귀환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영웅은 특별한 세상에서 협력자를 만나고 적과 대립하며 사활을 건 심연 속으로 들어갔다가 극적으로 귀환한다. 이때 영웅은 유무형의 보상을 얻고 돌아온다. 오늘날의 많은 영화들이 신화적 스토리텔링을 한다. 신화는 시대와 공간을 뛰어넘는 인류의 보편적 이야기 방식이기 때문이다. 스포츠에서도 야구는 신화적이다. 홈베이스를 밟아야 득점이 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윷놀이는 말이 시작점으로 되돌아 와야 한다.

 

영화 <택시운전사> 역시 신화적 구조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송강호는 서울의 택시운전사다. 그는 독재에 항거하는 광주 민주화 운동의 현장으로 독일인 기자를 태우고 떠난다. 모든 길이 막혀 있는 상황. 10만 원을 벌기 위해서는 그곳을 통과해야 한다. 우회로를 택해, 택시운전사는 19805월 광주라는 특별한 세상으로 진입한다. 그 다음 이야기 역시 앞서 말한 신화적 구조에 대입된다. 광주의 참상을 목격하고, 그를 살갑게 대해줬던 이들의 희생을 목격하며 그 자신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보안사의 추격에 얼떨결에 휘말린다. 그리고...그가 속했던 보통세상으로 귀환한다. 이 과정에서 그가 얻은 보상은 무엇일까. 영화는 그것을 관객들의 해석에 맡긴다.

 

'신화적 이야기틀'의 요체를 앞서 나는 조셉 캠벨의 분석을 빌어 '영웅의 여정'이라고 소개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제시되는 영웅은, 엄밀히 말해 독일인 기자가 아니라 택시 운전사 송강호다. 광주의 참상을 알리려는 기자의 책무는 목숨을 걸고 그를 실어 나른 송강호에 의해 완성된다. 중요한 건, 그 영웅이 대단한 소명 의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홀로 남겨진 딸 아이를 걱정하는 소시민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이게 이 영화의 주제 의식이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이끈 이들은 송강호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저 보통 사람들이었다. 영화 속에서도 송강호를 돕는 이들은 보통 사람들이다. 시위에 나선 이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는 아낙들이었다. 외국인이 탄 서울 택시를 잡으라는 상부 지시에도 눈 질끈 감고 통과시켜준 이름 모를 군인이었다. 대학가요제에 나가서 싶어 대학을 갔다는 날라리 대학생이었다. 목숨을 걸고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후송한 택시 운전사들이었다.

 

<택시운전사>의 감동은 바로 그 지점에서 파열된다. 역사를 전진시키는 이는 특별한 이가 아니다. 바로 우리, 양심과 시비지심과 용기를 가지고 불의에 맞선 보통 사람들, 지난 겨울의 수백만 촛불처럼, 바로 그런 사람들이 이 시대의 영웅인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영화에서 재연되는, 우리와 다르지 않았던 소시민들의 영웅적 희생에 한없이, 한없이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영화의 한 지점, 독일인 기자를 홀로 남겨두고 학살의 현장을 떠나 몰래 서울로 향하던 송강호는 가수 혜은이의 "3한강교"를 꾸역꾸역 부른다. 그러다 흐느낀다. 어떤 감정이었을까. 결국 그는 불현듯 택시를 돌려 다시 광주로 향한다. 영웅은, 친구를 남겨 놓고는 절대 특별한 세상을 벗어나지 못한다. 아마 그가 핸들을 돌리는 순간이 신화적 구성의 하이라이트, 심연으로의 돌진이자 영웅이 얻게 될 보상이었을 것이다. 그는 그냥 개인이었다가 역사에 개입하기로 작정한 것이다. 이 장면에서 송강호의 연기는 한국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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