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분한 영화가 필요한 이유

별별 이야기 2007. 5. 23. 21:59 Posted by cinemAgora
아는 사람에게 최근 벌어진 일이다. 심각한 우울증에 시달리던 아내가 중학생 아들과 딸을 차례로 찌르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아들은 온 몸을 칼에 찔려 숨졌고, 딸은 불행중 다행으로 목숨을 건졌으나 중상이다. 남편이 집에 돌아왔을 때 집안은 온통 피바다였다고 한다.

아내에게 법원 출두 명령을 알리는 전화가 왔다. 2차 출두 어쩌구 하면서 9번을 누르란다. 눌렀더니 낯선 억양의 목소리가 들린다. "확인해드릴테니 성함과 주민 번호를 알려주십시오." 속셈을 다 알고 괜히 눙쳐 본다. "법원이라면서 신상도 모르고 전화하셨나요?" 침묵, "...뭔가 잘못 된 거 같습니다. 뚝." 얼마전까지만 해도 세금 환급 어쩌구 하면서 사기 치던 치들이 종목을 바꿨다. 이번에는 법원을 사칭한다. 가지가지다. 한달에도 두 세번씩 이런 전화를 받는 아내는 이제 즐긴다. 저쪽이 어떻게 당황하며 전화를 끊을 것인지를 상상하며.

세상 살이가 영화 같다. 하도 영화 같아서 따분할 새가 없다. 따분하고 지루한 영화를 보고 싶다. 시간이 멈춘 듯 느리게 흐르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영화가 보고 싶다. 사람이 죽거나 죽이지도 않고, 속거나 속이지도 않는, 평화와 안전의 일상, 그거야말로 진짜 판타지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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