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셔널 맨

영화 이야기 2016. 7. 16. 09:26 Posted by cinemAgora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두 종류가 있다. 우디 앨런이 나오는 영화와 그가 나오지 않는 영화.


그에겐 조금 미안하지만, 나는 우디 앨런이 나오지 않는 우디 앨런 영화를 더 선호하는 편이다. <매치 포인트>를 비롯해 <비키 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 <미드나잇 인 파리> <블루 재스민> 등이 그 범주에 속한다.


이번 영화 <이레셔널 맨>에도 반갑게도(!?) 우디 앨런이 나오지 않는다. 호아킨 피닉스가 알콜에 절어 사는 철학과 교수 에이브로 나오고, 그를 흠모하는 여제자 질(엠마 스톤) 간의 로맨틱한 밀당이 오고 가는데, 사실 이건 영화적 포장지일 뿐이다. 우리 앨런이 말하고자 하는 건, 매우 우디 앨런적이어서, 그러니까 칸트를 비롯한 근대 철학을 현실과 괴리된 개똥 철학으로 냉소해 버린다.


에이브 자신이 그렇다. 그는 철학을 가르치지만 철학이란 말장난에 불과하다고 가르친다. 칸트의 정언 명령, 인간이 추구하는 도덕이란 게 얼마나 모순되고 헛된 것인가에 대해 역설한다.


예컨대 이런 것이다. "너의 집에 한나가 숨어 있다. 독일군이 들이닥쳐 그녀가 어디에 숨었는지 묻는다. 철학적 가르침대로라면 너는 거짓말을 해서는 안된다. 네가 도덕을 행하는 순간, 그녀는 죽는다.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그런데 이렇게 가르치는 에이브조차 반(反)철학적 도그마의 모순 속으로 빠져 든다.


'비 이성적 인간'이라는 뜻의 제목 <이레셔널 맨>은 우디 앨런의 인간관을 직관적으로 대변한다. 한마디로 인간은 아무리 이성적인 판단을 하려고 노력해도 그렇게 될 수 없다는 선언이다. 그러나 이 선언을 풀어가는 방식은, 역시나 우디 앨런의 화법대로, 매우 고약하게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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