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택시를 잡으려고 서 있는데, 뒤늦게 온 분이 앞에서 먼저 택시를 잡아 타고 가는 경험을 합니다. 억울한 게 당연합니다. 택시를 기다린 건 내가 먼저인데, 슬쩍 앞에서 택시를 잡으니 부아가 치미는 것도 무리는 아닙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 재개봉을 둘러싸고 영화계에 말들이 많습니다. 이 영화의 배급사가 재개봉을 추진하면서 예술영화전용관을 차지하는 바람에 다른 독립/예술영화들이 피해를 입게 되었다는 문제 제기입니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엄밀히 말해 상업영화이므로 일리가 있는 문제 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런 생각도 듭니다. 한정된 상영 공간을 누가 먼저 차지하느냐를 놓고 영화 창작자들이 쌍심지를 켜는 게 과연 타당한가, 하는 생각입니다. 사실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자사 영화만을 밀어주는 대기업 계열의 멀티플렉스의 갑질이 근원적인 이유입니다. 이런 마당에 자식같은 영화를 어떻게든 더 많은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제작자들의 절박함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일 겁니다. 또한 그 지푸라기를 잡는 바람에 떠밀려 가는 다른 영화들의 억울한 심정도 충분히 이해 영역 안에 있습니다.
그런데 따져 봅시다. 이건 누구의 잘못인가요? 결국 자사 영화만을 밀어주는 수직계열화된 대기업 배급사와 멀티플렉스의 횡포가 낳은 결과가 아닌가요? 정작 그들은 쏙 빠진 채, 영화인들의 밥그릇 싸움처럼 비쳐지는 게 참으로 딱합니다.
택시를 기다리면서 얌체족을 욕하는 건 일면 자연스럽지만, 그건 택시 타는 곳이 정해 있지 않은 시스템 때문이기도 합니다. 나는 영화인들이 서로 싸우기 보다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적 모순, 즉 수직계열화된 대기업에 정면으로 승부를 걸기를 바랍니다. 하다 못해 왜 한국영화계의 그 많은 단체들은 멀티플렉스에 예술영화전용관을 의무화하자는 입법 청원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슈퍼갑에 대항한 연대를 만들어내지 못하면, 한국영화는 희망이 없습니다.
좀 싸우십시오. 각개전투하지 말고, 서로 싸우지 말고 어깨 걸고 공동의 적에 맞서 싸우십시오. 만약 그런다면 무한한 신뢰와 응원을 보내겠습니다. 지금의 영화인들 모습은 정말 딱하고 비겁해 보입니다. 적어도 내가 영화 매체에 처음 발을 딛을 때만 해도 영화인들은 투사이자 지성인들이었습니다. 그 결기가 나를 영화로 이끈 중요한 원동력이었습니다. 이젠 더이상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