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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아한 거짓말>을 보았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연출한 이한 감독이 영화를 아주 잘 만들지는 않지만, 기본은 하는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을 한다면, 좋은 원작을 만났을 때 빛을 발할 수 있죠. 실제로 데뷔작 <연애소설>이나 <청춘 만화> <내 사랑> 등의 실망스러운 작품을 내놓았던 이한 감독은 <완득이> 때 김려령 작가의 소설이라는 금맥을 만났습니다. 이번에도 김려령 작가의 소설이 원작입니다.
여기에다 김희애가 21년만의 스크린 컴백으로 주연을 맡고, <완득이>에 나왔던 유아인이 사실상 의리 출연으로 보이는 조연을 마다 않았으니, 한술 더 떠 김희애와 유아인이 최근 종편 드라마로 화제 몰이를 시작한 시점과 영화 개봉이 맞물렸으니 이한 감독으로선 금맥을 잡아도 제대로 잡은 셈입니다.
청소년 자살을 소재로, 학교 현장의 이른바 '은따(은근한 왕따)'와 가정의 무관심을 퍼즐을 맞춰가듯, 가해자로 들춰내는 이야기입니다. 가해자가 있지만, 실은 그 가해자들 역시 어떤 지점에선 피해자의 영역 안에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슬쩍 얹고 있는 톤이 좋았습니다.
구성적으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빨간 실타래처럼 이야기가 다소 복잡하게 얽히고 설켜 있는데, 14살 소녀의 죽음 이면에는 그토록 복잡한 요소들이 얽히고 설켜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는 구성입니다. 요즘 한국영화들의 관성과 달리 무작정 신파로 달려가지 않는 연출 톤도 좋았고, 청소년 자살 장면을 보여주지 않는 윤리적 선택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여러모로 생각할 여지를 넉넉하게 주는 작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