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 연휴를 맞아 가족들과의 분주하고 살가운 한때를 준비하고 계실 분들 많겠죠. 하지만 그냥저냥 방구석에 콕 들어 박혀 두문불출하실 이른바 '방콕족'도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런 분들, 그냥 시간 죽이지 마시고 괜찮은 영화로 색다른 추억을 만들어 보시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해서 추천 DVD를 소개해드립니다. 전제컨대, 일반적인 오락영화들은 아닙니다. 그래서 극장 흥행에서도 큰 재미 못본 영화들입니다. 그런데 챙겨볼만한 포인트가 있는 작품들입니다. 스펙터클과 오락이라는 강박을 내려 놓으시면 '다른 미덕'이 보일지도 모르는, 명절 송편만큼의 정서적 영양가 가득 찬 작품들이라고 믿습니다.

인간은 먼지로부터 와서 먼지로 사라집니다. 그것이 신의 뜻이며 인간의 운명이죠. 그러나 인간은 바로 그 운명에 거역할 줄 아는 존재. 시간이 흐르는 한, 그리고 살아 있는 한, 운명을 거스르려는 인간의 노력은 멈추지 않습니다.


조금 거창하고 철학적인 얘기로 시작해 봤습니다. 사실 우리가 걸작으로 기억하고 있는 많은 SF 영화들은, 인간의 본질과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인 화두를 던져 왔죠. 조금 멀리는 <2001 스페이스 오딧세이>나 <블레이드 러너>가 그랬구요. 가장 최근에는 <매트릭스>라는 영화도 떠오릅니다. 바로 오늘 소개해드릴 이 영화 역시 그런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트래인스포팅>과 <28일 후> 등의 영화로 전세계 젊은이들을 열광시켰던 영국 감독 대니 보일의 SF 영화, <선샤인>입니다. 빛을 잃어가는 태양을 살리려는 한 우주선의 여행을 통해 영화가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가 제법 묵직합니다. 지금부터 귀기울여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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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카루스 2호, 7년 전 행방불명된 1호의 뒤를 이어 죽어가는 태양을 살리기 위해 급파된 우주선. 이카루스호가 지구를 떠난 지 벌써 16개월, 점차 태양에 가까워지고 있지만 오랜 우주 생활로 8명의 대원들은 이제 지칠대로 지쳐 있습니다.


“24시간 후에는 지구와의 통신이 끊길지도 몰라.” 이제 이들은 누구의 통제도 받지 않는 고립된 상황에서 임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게다가 대원들은 극도로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 별거 아닌 일로 치고 박기 일쑵니다.


거대한 크기의 우주선 이카루스 2호, 맨해튼 섬 크기만한 핵탄두를 탑재한 채 광대한 우주를 건너 태양으로 접근합니다. 이제 그들은 태양에서 가장 가까운 별, 수성을 지나가게 되죠. 태양을 배경으로 오른쪽에서 서서히 나타나는 수성, 우주의 신비 앞에 지구 최고의 전문가들도 넋을 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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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주는 이처럼 아름답고 신비한 존재일 뿐일까요? 광대한 우주에서 인간은 나약하고 초라한 미물일 뿐입니다. 식어가는 태양 빛을 살리겠다고 나섰지만, 그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대원들은 직감적으로 눈치 채고 있죠. 그것은 어쩌면 신의 뜻을 거역하는 일. 그러나 지금으로선 달리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 인류의 생명이 이들에게 달렸으니까요.


비상 사태 발생! 한 대원의 실수로 우주선 외부에 기체 손상이 일어났습니다. 방법은 직접 우주선 바깥으로 나가 수리하는 것. 선장이 직접 나서기로 합니다. 선장과, 동행한 젊은 물리학자 캐파(실리언 머피)는 위험을 무릅쓰고 손상된 기체 수리에 나섭니다. 네 개의 고장난 패널을 고쳐야 하는 게 이들의 임무.


일은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싶었습니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일이 또 다시 일어납니다. 우주선 밖에 나가 있는 선장과 캐파의 안전을 위해 수리 받는 부위를 태양의 반대편 쪽으로 돌려 놓은 사이 태양열을 견디지 못한 산소 정원 쪽에서 불이 난 것입니다. 잘못하면 핵탄두까지 위험해지는 상황.


결국 우주선을 다시 원래 위치로 되돌려 놓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두 명의 대원은 어떻게 되는걸까요? 임무 완수를 고집하며 귀환을 거부하는 선장, 캐파의 안타까운 부르짖음도 소용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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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태양열의 공세! 그 순간, 이미 그는 죽음을 선택한 것처럼 보입니다. 가공할 우주의 위력에 굴복하지 않는 인간의 욕망. 목숨이 끊기는 직전까지도 그는, 인류 가운데 누구도 직접 눈으로 보지 못한 그 빛의 극단을 확인하고 싶었던 거겠죠. 어쩌면 그는 감히 신의 영역을 넘보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새의 깃털로 날개를 만들어 무모한 꿈을 이루려 했지만 태양에 지고 말았던 신화 속의 이카루스처럼 말이죠.


선장을 잃은데다 소중한 산소 정원까지 불에 타 버리자 남은 대원들은 망연자실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충분한 산소가 없어 임무 완수가 불가능해진 상황. 이제 대원들은 서로의 목숨을 대가로 하면서까지 임무를 끝내야 할 절체절명의 상황으로 내몰리게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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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터 영화는, SF 장르 안에 밀실 공포적인 스릴러를 담아내는, 흥미로운 전환을 보여줍니다. 광대한 우주를 항해하는 이카루스 2호의 내부 공간은 폐쇄 공포증을 연상시킵니다. 대니 보일 감독은, 공간과 공간이 촘촘히 엮여 있는 우주선 세트를 통해 우주라는 감옥에 갇혀 버린 대원들의 아이러니한 상황을 드러냅니다.


이것은 태양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과 일맥상통하겠죠. 적당한 거리를 벗어나 가까이 가면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처럼. 우주는, 광대하게 열려 있는 공간이자 또한 닫힌 공간이기도 한 것이죠. 철학적 메시지를 장착한 이 영화의 서스펜스는 거기에서 출발합니다. 태양과의 불가능한 싸움, 우주와의 덧없는 격투 속에서 인간의 나약함, 또는 인간의 위대함이 드라마틱하게 드러납니다.


아무도 살아 돌아올 수 없는 여행을 계속하는 7명의 대원들, 그들은 과연 태양에 핵탄두를 발사해 신에 대한 인간의 승리를 선포할 수 있을까요?

*목포MBC '시네스쿨' 출연 코너의 방송원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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