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살렸다 죽였다 하는 기획

영화 이야기 2011. 2. 25. 13:20 Posted by cinemAgora

극장에 내걸리는 모든 영화는 기본적으로 흥행을 목표로 하지요. 더 많은 관객을 들게 만들기 위해 여러 가지 흥행 전략들을 구사하는데요. 의외의 흥행작이 나오는가 하면, 당연히 흥행할 거라 예상됐던 작품이 부진을 면치 못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벌어지는 걸까요? 거기에는 영화의 완성도와 별도의 기획과 배급이라는 변수가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최근의 흥행작 하면 뭐니 뭐니 해도 <조선명탐정: 각시투구꽃의 비밀> 아니겠습니까? 지난 주말까지 4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설에 격돌한 세 편의 한국영화 가운데 최종 승자로 낙점이 됐습니다. 이 영화의 어떤 매력이 이렇게 많은 관객들을 들게 만드는 걸까요? 반응은 좀 엇갈리는 것 같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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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저는 '차별화'를 꼽고 싶습니다. 함께 경쟁한 영화들 가운데, 일단 소재적으로 가장 새로워 보인다는 것이죠. 퓨전 사극이라는 틀 안에 탐정 추리물을 장르적으로 혼합한 케이스인데요. 뭐니 뭐니 해도 약간은 '허당'이라고 볼 수 있는 주인공 캐릭터가 관객들에게 흥미롭게 다가갔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보여줬던 김명민 씨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 변신이 관객들에게 어필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은 이렇게 영화 자체의 완성도도 중요하지만, 이렇게 어떤 컨셉트로 관객들을 공략하느냐, 이게 더 중요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렇게 컨셉트를 가지고 만들어지는 영화를 우리가 기획영화라고 부르지요. 이러이러한 장르로, 이런 톤을 가지고 이런 타깃을 공략하겠다, 말하자면, 그런 작전을 먼저 세우고 시나리오 작업에 들어가게 되는 게 대부분의 기획영화들이 만들어지는 수순입니다.

그런데 그런 기획영화의 맹점 가운데 하나가, 기존에 검증된 흥행 코드들을 재활용하려는 시도를 할 수밖에 없게 된다는 것이죠. 관객들이 좋아했던 코드, 흥행적으로 유효했던 설정들, 그런 것들을 활용하는 건데, 그러다 보니까 종종 조금은 식상하고 크게 새롭지 않은, 그런 영화들이 나오게 되는 것이죠.

최근 영화 가운데 그렇게 기획이 조금 식상했던 영화라면 뭐가 있을까요? 개인적으로, <조선명탐정>과 함께 격돌했던 이준익 감독의 코믹 사극 <평양성>을 사례로 꼽고 싶습니다. 이 작품은, 지난 2003년에 빅히트를 기록했던 <황산벌>의 흥행 전략을, 시대 배경와 인물들만 살짝 바꿨지, 거의 그대로 가져왔는데요. 그러다 보니까 크게 새로운 웃음을 선사하는 데 이르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들었습니다. 말하자면 잔재미는 있는데, 배꼽이 빠질 정도로 포복절도할 코미디로 탄생이 안됐다는 얘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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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성>은 검증된 흥행 코드를 그대로 재활용해보려다 흥행에서도 쓴맛을 본, 대표적인 사례라고 하겠습니다. 조금은 안일한 기획이 아니었나 싶습니다.안일하기는 강우석 감독의 <글러브>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만, 아무튼 이준익 감독, 이 영화가 손익분기점인 250만 명을 못넘기면 상업 영화 감독 은퇴하겠다, 이렇게 얘기를 했던 걸로 아는데요, 아직 상영중인 극장이 있지만 최종 관객수는 170만 명 선에서 정리가 되는 분위기입니다. 이준익 감독, 은퇴하게 생겼습니다.

지난 주에 개봉했죠. <아이들>이라는 영화 개봉 첫주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는데 이 경우엔 어떨까요? 첫 주말 누계 관객수 77만 명을 기록하면서 비수기 극장가치고는 꽤 강력한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는데요. 실제로 벌어졌던 대구 어린이 실종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관객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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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의 경우엔 기획이 오히려 영화의 완성도를 훼손한 경우에 속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단 실제 사건이 배경으로 흐르되 영화의 주인공은 방송국 다큐멘터리 피디(박용우)와 범죄 심리학자(류승룡)로 돼 있죠. 이 두 사람이 사건을 조금 선정적으로 접근하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극화하고 있는데요.

이 대목만큼은 영화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플롯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문제는 뒷부분에 실제로 용의자가 있고, 이것을 주인공이 뒤쫓는다는 가설을 무리하게 밀어 붙이다 보니까, 말하자면 배가 산으로 가는, 그런 상황이 되고 말았습니다. 실종 어린이들의 유골이 발굴되는 시점까지만, 딱 거기까지만 갔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지만, 그래서 롱런 흥행까지 이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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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 영화의 완성도를 훼손했다는 얘기는 거꾸로 말하면 기획이 잘 되면 완성도가 다소 낮더라도 흥행이 될 수 있다, 이런 말이기도 합니다. 최근 기획 영화의 조류나 흥행 트렌드를 유심히 들여다 보면, 관객들이 원하는 어떤 감정을 적절하게 자극해줄 때 스토리의 흐름이라든가 연출의 호흡, 이런 완성도와는 상관 없이 흥행하는 현상이 종종 벌어지고 있죠.

앞서 말씀드린 <조선 명탐정>도 그런 경우고요. 지난해 말 개봉한 차태현 씨 주연의 <헬로우 고스트>도 마찬가지 경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뒷부분의 반전에서 가족 영화로서의 강력한 눈물 코드를 배치해 놓았는데요. 그 때까지의 스토리 전개가 비교적 지루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그 감정을 아주 세게 건드려줬기 때문에 흥행 성공을 거두지 않았나 분석해볼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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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반대로, 기획이 당연히 들어가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흥행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지난해 말에 개봉한 나홍진 감독의 <황해>가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습니다. 제작비가 100억 원 이상 들어간 대작입니다. 그렇다면 더욱 치밀한 흥행 전략이 뒤를 받쳐야 하는데, 감독의 연출 색깔을 지나치게 밀어 붙이다 보니까, 배급의 타이밍이나 흥행적인 요소나, 여러 면에서 에러가 났던 작품입니다. 제작이 많이 지연됐구요. 그래서 이런 영화에는 걸맞지 않은 연말 시즌에 개봉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물론 이것은 영화의 완성도와는 별개의, 흥행적 측면에서의 얘깁니다.

결론적으로 적절한 기획과 배급의 타이밍, 그리고 컨셉트가 확실한 마케팅 포인트, 이런 것들이 영화의 완성도와 또 다른 흥행의 요소들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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