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하지만 알찬 감동의 영화들

영화 이야기 2011. 2. 17. 11:28 Posted by cinemAgora

극장가는 요즘 비수기입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작품성 높은 작품들이 많이 개봉하는데요. 대단한 볼거리는 없지만, 잔잔하면서도 알찬 감동을 선사하는 작품들이 잇따르고 있습니다.

최근 개봉하는 한국영화 중에서는 아무래도 김태용 감독의 <만추>가 화제입니다. 베를린 영화제에도 초청이 돼 있는데, 전형적인 상업영화는 아닙니다. 일단 장르로 치면 멜로 영화이긴 합니다만 관객들의 눈물샘을 세게 자극하는, 그런 일반적인 멜로 영화의 전형성과는 좀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06년에 <가족의 탄생>이라는 작품으로 남다른 연출력을 인정 받았던 김태용 감독의 영화라 그런지 굉장히 잔잔하고 애잔한 스토리 라인이 돋보이구요. 하지만 사실 스토리보다는, 남녀 주인공의 정서적 교감이 이루어지는 디테일에 좀더 집중하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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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요즘 인기 상종가인 현빈 씨, 그리고 <색,계>로 잘 알려진 중국 여배우 탕웨이가 주연을 맡아서 관심도 큰 것 같습니다. 워낙 김태용 감독이 연출을 잘 해서 그런지 두 사람의 연기 호흡도 괜찮습니다. 이 영화에서 현빈 씨는 미국에서 한국인 이민 여성들을 상대로 몸을 팔며 살아가는, 말하자면 남창이죠, 어쩌면 루저와도 같은 역할을 맡았고요. 탕웨이는 남편 살해 혐의로 복역을 하다가 어머니 장례식을 위해 잠깐 출소한 사연 많은 중국계 여인을 연기했습니다. 우연히 같은 버스에 타게 된 두 사람이 서로 교감을 나누게 되고, 애틋한 감정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미국의 시애틀이라는 도시를 배경으로 해서 아주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만추>는 리메이크작입니다. 이만희 감독의 66년작이 원작이고요. 당시에 신성일 씨와 문정숙 씨가 각각 남녀 주인공을 연기했죠. 이후에 김수용 감독이 80년대 초반에 김혜자 씨를 주연으로 캐스팅해서 리메이크 하기도 했습니다. 이번 김태용 감독의 버전은 원작의 얼개는 그대로 가져오되, 사건의 흐름을 조금 열려 있는 방식으로 전개시키고 있는데요. 남녀 주인공의 배경적인 사연은 조금 애매하게 처리를 하고 있죠. 아무래도 두 사람의 관계와 심리 변화에 좀더 초점을 맞추기 위한 김태용 감독의 연출적인 선택인 것 같습니다.

요즘 심심찮게 우리 독립영화들도 적지 않게 개봉하는데요. 이번주 개봉작 가운데 <혜화, 동>이라는 작품에 눈에 띕니다. 신예 민용근 감독이 연출하고, 그동안 주로 조연이나 단역을 맡았던 여배우 유다인 씨가 주연을 맡은 작품인데요, 영화 <혜화, 동>은 서울 종로구에 있는 혜화동하고는 관련성이 없구요. 혜화는 주인공의 이름이고, 동은, 영화의 계절적인 배경으로 봐서 아마도 겨울 동자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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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십대 시절에 아이를 낳았다가 그 아이를 잃게 된 스물 셋 여성의 내면을 따라가는데요. 유기견을 보면 다 데려다가 집에서 키우고, 심지어 손톱까지도 잘라서 모을 정도의 집착적인 행동을 하는 여주인공의 심리를 차분하게 보여줍니다. 그러던 와중에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아이가 어느 집에 입양돼 있다는 얘기를 전 남자친구에게 듣게 되죠. 그리고 나서 여주인공 혜화는 모종의 모험 상황으로 치닫게 됩니다. 영화는 이 과정을 통해 상실의 아픔과 그로 인한 상처, 또는 죄책감 같은, 살아가면서 얻게 되는 인간의 보편적인 정서를 포착하고 있습니다.

지난해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의 오늘 부문 감독상을 수상했구요. 서울 독립영화제에서 주연 배우 유다인 씨가 독립 스타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감독의 섬세한 연출과 유다인 씨의 탁월한 연기가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극장에 가면 할리우드 영화 아니면 한국영화 일색인데, 그밖의 나라의 영화에서도 뭔가 다른 감동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2월 24일 개봉하는 이라크 영화 한편이 있습니다. 평소 중동 영화 만나보기가 힘든데요. 할리우드나 한국 영화에서 쉽게 느낄 수 없는 그런 정서적 울림을 가진 영화들이 많습니다. <바빌론의 아들>이라는 작품도 바로 그런 중동 영화의 또 다른 힘을 느끼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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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크 영화라니, 왠지 이라크전과 좀 관련이 있지 않을까 싶으시죠? 맞습니다. 영화는 이라크 전이 발발한 뒤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200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요. 할머니와 아흐메드라는 12살 소년이 전쟁에 끌려 나갔다가 실종된 아버지를 찾으러 가는 여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영화는 두 사람의 여정을 통해서 전쟁이 이라크에 남긴 상흔과 아픔을 절절하게 묘사하고 있는데요. 할머니의 아들, 그리고 아흐메드의 아빠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전쟁 포로 감옥에 어렵게 도착해 보지만 아들의 흔적은 없고, 죽었다면 사체라도 찾자 하는 절망적인 마음으로 할머니와 손자가 대량 학살의 흔적으로 발견된 거대한 뼈무덤을 헤메게 됩니다. 영화는 이런 피폐하고 황량한 상황을 보여주는 가운데서도, 인간의 선량함에 대한 신뢰를 담아내는 것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전쟁 때문에 폐허가 된 땅이지만, 서로에 대한 용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얹고 있습니다.

드라마의 굴곡이 크지 않고 굉장히 잔잔하게 흐르지만 그 어떤 휴먼 드라마보다 더 절절하고도 애틋한 감동을 얻으실 수 있는 작품입니다. 소문만 많은 큰 영화들에서 재미 거리를 찾는 것도 좋지만, 때론 이런 영화들로부터 뭔가 다른 감동과 여운을 만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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