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영화들의 매혹

영화 이야기 2011. 1. 13. 09:29 Posted by cinemAgora

볼거리가 풍성하고 규모가 큰 영화들이 관객들에게 인기가 높습니다만, 때론 작고 알찬 영화들로부터 감동과 성찰을 얻을 때가 있습니다. 새해 들어 독특하고 나름의 재미도 있는 작은 영화들의 행렬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작은 영화, 이렇게 말하면 어떤 게 작은 거냐 하실 분도 계실텐데요. 한국영화의 경우 평균 제작비가 40억 원 안팎이 되거든요. 그런데 그런 제작비는 꿈도 못꾸고 10억 원 미만의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영화를 통상 작은 영화라고 부릅니다. 어떤 경우에는 1억 원 미만, 또 심지어 몇 천 만원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도 있습니다.

이런 영화들은 제작비가 적기 때문에 대작 영화들이 보여주는 스펙터클한 장면은 만들어낼 수가 없겠죠. 대신 독특한 아이디어와 독창적인 이야기로 관객들을 끌어들이는 전략을 구사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이런 영화들이 자극적인 상업영화들이 담지 못하는, 훨씬 더 깊이 있는 성찰이나 사회에 대한 의미 심장한 시선을 담아낼 때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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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소개할 영화는 다큐멘터리입니다. 이번주 개봉하는데요, 정호현 감독이 열살 연하 쿠바 남자와의 연애담을 일종의 자전적 다큐멘터리의 형식으로 만들었습니다. <쿠바의 연인>이라는 제목의 영화입니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요, 전반부는 감독의 시선으로 본 쿠바 사회의 일상적인 단면들이 나오고요. 그리고 후반부는 감독의 남자 친구인 오리엘비스 씨가 한국에 와서 겪게 되는 상황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전반부에선 두 사람의 연애 상황은 단편적인 이미지로 보여주고요, 초점은 사회주의 국가 쿠바가 갖는 경직성이라든과 관료주의, 또 주민들이 실제로 겪는 빈곤, 이런 것에 맞춰져 있습니다. 감독은 처음에 쿠바 사회주의의 긍정적인 측면을 취재하러 갔다가 거기서 살면서 실망한 부분이 많았다고 하는데요. 이를테면 "노동자들은 일하는 척 하고, 정부는 월급을 주는 척 한다"는 자막에서, 쿠바 사회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인 시선을 읽을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도 쿠바인들이 갖는 낙천성과 여유, 이런 것에 대한 애정 어린 시선 역시 놓치지 않고 있죠.

후반부로 오면 이제 결혼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오리엘비스와 정호현 감독이 다큐멘터리의 중심 인물 역할을 하게 되는데요. 이 대목에선 오리엘비스를 대하는 한국사회의 차별적 시선을 포착하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오리엘비스의 레게머리를 보면서 한 어르신이 "말세의 징조다", 하는 얘기를 하는 대목이 있는데요. 그만큼 다름을 잘 인정하려 하지 않는 배타적 문화가 여전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죠.

<쿠바의 연인>은 이렇게 두 사람의 연애사를 매개로 해서 쿠바와 한국 사회가 가진 미덕과 한계를 동시에 비교하며 우리가 어떤 것을 가졌고, 또 어떤 것을 못가졌는지에 대한 관객들의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연애사를 통한 일종의 문화 비교 체험과 같은 다큐멘터리인 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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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한 겨울에 만나는 공포 영화도 있습니다. 역시 이번주 개봉하는 <귀신 소리 찾기>라는 작품인데요. 귀신 소리를 채집하는 한 다큐멘터리 팀이 벌이는 상황을 다룬 러닝 타임 40분짜리 중편 영화입니다. 신예 유준석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습니다.

귀신 소리를 채집한다, 그 설정만으로도 왠지 섬뜩할 것 같지 않나요? 한 외딴 펜션에 홀로 사는 여인이 자신의 집에서 밤마다 귀신 소리가 난다는 제보를 하죠, 그래서 심령 다큐를 만드는 팀이, 소리 채집 전문가와 함께 이 집을 방문하는데요. 이들은 이 집에서 들리는 소리가 여주인의 죽은 동생의 것이고, 언니에게 할 말이 있는 것 같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소리 채집에 나섭니다. 그리고 죽은 동생과 언니 사이에 모종의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죠.
 
영화 <귀신 소리 찾기>는 처음엔 동생에 대한 죄책감과 복수심을 가진 여주인공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다큐멘터리 팀 내의 불화 등 작은 공간에서 벌어지는 인물들간의 긴장감을 세밀하게 포착하는데요, 그렇게 심리 스릴러적인 호흡으로 흐르다가 채집된 귀신 소리가 마치 퍼즐처럼 맞춰지는 극 말미에 굉장히 섬뜩한, 머리털이 곧추설 만큼의 공포를 안겨줍니다. 아이디어와 영특한 서사 전략이 돋보이는 작품입니다.

아이스크림이나 동치미도 겨울에 먹어야 제 맛이라고 하니까요. 한 겨울에 만나는 공포 체험도 색다른 재미일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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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소개할 영화는 다음주 개봉하는 박수영 감독의 <죽이러 갑니다>라는 작품입니다. 제목부터 좀 섬뜩하죠? 사지절단이나 선혈이 낭자한 영화를 일컬어 슬래셔 무비라고 하는데요. 이 영화는 그런 슬래셔 무비임과 동시에 블랙코미디이기도 합니다.

중견배우 이경영이 해고 노동자로 나오는데요, 그를 해고한 사업주의 별장에 침입해 그 가족들을 하나 하나 잡아서 신체를 훼손합니다. 이런 가운데 공포에 휩싸인 이 집 식구들이 우왕좌왕하는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통해 가족 구성원 조차 돈의 논리에 휩쌓여 있는 행태를 풍자적으로 은유하고 있습니다.

보는 분에 따라선 다소 잔인한 (고어 마니아라면 귀엽게 보일) 장면이 자주 나오니 참고 바라구요. 어쨌든 슬래셔 소동극을 통해 우리 사회의 부조리를 꼬집는 작품으로 이해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적은 제작비의 한계를 치기와 독창성으로 돌파하는 미덕을 갖춘 영화입니다.

작은 영화들만이 주는 또 다른 미덕, 올 겨울에 느껴보시기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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