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사랑'주의의 허실

영화 이야기 2007. 9. 13. 17:54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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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해 달라고? 뭘, 어떻게?
한판 승부 패러다임에 갇힌 한국영화 주류 담론

“한국영화 요즘 많이 어렵습니다. 관객 여러분의 사랑이 필요합니다. 한국영화 많이 사랑해주십시오.” 지난 여름까지 한국영화 시사회에서 가장 많이 들은 인사말이다. 제작자든, 감독이든, 배우든 한국영화의 위기를 성토하며 관객들의 관심과 사랑을 읍소했다. 지난 3월 근육질 블록버스터 <300>이 불을 지핀 할리우드의 맹공세가 7월의 <트랜스포머>까지 쉬지 않고 이어졌으니, 사실 올 상반기의 한국영화는 죽을 맛이었다. 관객이 안 들고 투자가 얼어 붙는 악순환 속에서 한국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사랑을 애걸하는 심정이야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긴 하다.

그런데 나는 가끔, 이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의구심이 생긴다. 할리우드 영화를 사랑하지 말라는 얘긴지, 할리우드 영화만큼 한국영화도 사랑해 달라는 얘긴지, 아니면 할리우드 영화 빼고는 다른 나라 영화를 다 사랑하는데, 그 중에 한국영화도 포함시켜 달라는 얘긴지 헷갈리다. 구체성이 결여된 채 뭉뚱그려 사랑해 달라는 말에는, 관객들의 관람 선택에 있어서도 애국심의 작용을 바라는 은근한 바람이 섞여 있다. 그렇다면 관객들은 검증된 흥행 코드를 적당히 뒤섞어 놓고 대충 안정적인 흥행을 바라는, 목불인견의 기획영화들에게조차, 단지 그것이 한국영화라는 이유만으로 지지와 관심을 보내야 하는 것일까? 지난 여름 <트랜스포머>로, <해리포터>로, <다이하드 4.0>으로 달려간 수 백만 명의 관객들은, 한국영화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인가?

한국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지지를 정당화하는 분위기는, 특히 언론에 의해 자주 부추겨져 왔다. 매달 발표되는 한국영화 점유율은 그 편리한 근거로 자주 활용되곤 한다. 언론들에 의하면 한국영화는 점유율 50%를 넘기면 다행이고 그 이하로 떨어지면 위기다. 또 할리우드 영화가 2주 연속 박스오피스 1위를 기록하면 한국영화는 큰일 난 거다. 그러다가 한국영화가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면 한국영화 부활의 신호탄이란다. 그리곤 예의 화려한 부활이다. 언론에 의해 한국영화는 일년에도 몇 차례씩 죽었다가 살아난 메시아가 된다. TV 영화 정보 프로그램의 상투적 멘트도 이 패러다임에선 예외가 아니다. “관객들의 사랑에 힘입어 불쑥불쑥 커가는 한국영화를 보니 흐믓한 마음이 듭니다.” 이런 말, 이젠 아주 지겹다.

얼마 전에 한 방송국 시사 프로그램으로부터 출연 섭외를 받았다. <화려한 휴가>와 <디워>라는 영화의 쌍끌이 흥행이 한국영화 부활의 신호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견해를 말해 달라는 거였다. 출연할 코너의 틀이 벌써 그렇게 짜여 있으니 방송에 나가 할 말이라곤 앵커의 예정된 질문에 고개를 주억거리며 “예, 그럴 것 같습니다. 적어도 한국영화의 침울한 분위기에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않을까 싶네요.” 따위의 하나마나한 용비어천가를 지껄이는 것 뿐이었다. 방송에 나가 소개하고 싶은 숱한 걸작들, 극장에서 외면 받고, 불법 다운로드의 저주로 인해 부가판권 시장에서조차 설 땅이 없는, 그 많은 주옥 같은 영화들을 소개할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스크린 독과점과 다양성 확보에 대해 말할라 치면 골치 아프다고 손사래부터 친다. “시청자들 그런 거 관심 없어!” 내가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불려 나갈 일은 프로그램 말미에 양념처럼 끼어든 ‘한국영화 선전’ 소식을 전할 때가 거의 대부분이다.

나는 관객들이 이를 테면 <본 얼티메이텀>과 같은 걸작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극을 얻는 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쿠엔틴 타란티노의 <데스 프루프>와 같은 영화는 또 어떤가. 앞서 개봉했던 <굿 셰퍼드>나 <뜨거운 녀석들> 등 올해 개봉한 할리우드 영화들 가운데서도 만나는 사람들마다 맹렬하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들이 부지기수다. 그렇다면 나는, 영화 저널리스트로서의 소임을 잊고 반 한국영화적 언행을 일삼는 게 되는 걸까? 지금의 분위기에선 그렇다고 답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안 그러면 모순이 되니까.

요컨대, 한국의 영화문화를 둘러싼 주류적 담론은 여전히 할리우드와 한국영화의 한판 승부라는 대결적 패러다임에 갇혀 있다. 현실이 그러할진대, 그것을 외면하란 말이냐고 따질 분도 계실 것이다. 현실이 그렇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현실을 인식하는 방법론이 문화적으로 열려있지 않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싶은 것이다.

내가 염려하는 것은 한국영화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을 호소하는 문화적 애국주의가 영화 문화의 획일화라는, 다양성 결여의 살풍경을 슬쩍 가리는데 악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톡 까놓고 말해보자. 관객은 <디 워>를 사랑했을지언정, <좋지 아니한가>와 같은 수작을 사랑하지는 않았다. 둘 다 한국영화인데도 말이다. <화려한 휴가>를 사랑했을지언정, 비슷한 시점에 한국 공포영화의 새로운 발견이라는 극찬을 들은 <기담>은 철저하게 외면했다. 둘 다 사랑스러운 한국영화인데도 말이다. 흥행 양극화라는 잔인한 현실, 흥행 양극화를 부추기는 더욱 잔인한 배급 시장의 반문화적 약육강식 논리가 버젓이 활개치고 있는데도, 한국영화는 8월 이후 욱일승천의 기세로 화려하게 부활했으니 아무 문제 없는 것이다. 언론은 다시 ‘한국영화 만세’ 모드에 돌입했다. 통탄할 노릇이다.


비단 흥행 시장뿐이랴. 하물며 영화인들의 스크린쿼터 사수 싸움에서도 ‘한국영화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그 실효를 상실한 지 오래다. 적지 않은 관객들이 일부 영화인들이 보여준 이중적인 행태를 볼모로, 스크린쿼터 사수의 정당성에 ‘이유 없음’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토록 한국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외치더니 당신들은 진정으로 나라를 걱정하고 국민들의 살림살이를 걱정했느냐는 반격이다. 한국영화 전성기에 편승해 얻어진 유명세에 힘입어 호의호식하거나 앞뒤 안 맞는 모순적인 언행을 일삼는 무리들로 순식간에 전락해 버린 것이다. 실상이 이와 다를지언정 한번 급속 냉각 모드에 들어간 여론은 쉽게 바꾸기 힘들다. 냉정한 현실이다.

어쩌면 맹목적인 한국영화 사랑 캠페인이 처음부터 내포하고 있었던 부작용이 이제야 나타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캠페인에는 우리는 왜 한국영화를 사랑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며, 그에 앞서 우리가 영화를, 그리고 문화를 제대로 사랑하는 방법은 무엇인지에 대한 총론을 건너 뛰었기 때문이다.

나는, 문화적 체험 행위란 결국 다름과 차이를 체득하고 존중하는 일이라고 믿는다.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아름다움의 세계를 바라볼 때 얻는 쾌감을 기억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한국영화를 사랑하는 것은, 세계의 논리에 대응한 우리의 정체성을 우리의 언어를 통해 제대로 인식하고, 우리 스스로 우리의 다름을 존중하는 일과 다르지 않다. 그와 동시에 외부의 문화가 갖는 다름을 체험할 권리도 우리에겐 있다. 그 생경한 아름다움 속에서 우리의 한정된 인식이 확장되는 짜릿한 경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앞서 말한 이유로 한국영화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한국영화만을 사랑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러므로 한국영화에 대한 사랑은 다양성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읍소하는 영화인들은, 미국에서 온 저 영화와 일본에서 온 이 영화, 태국에서 온 그 영화도 한꺼번에 사랑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좋은 영화를 사랑해달라고 말해야 한다. 한국영화가 침체에 빠진 것만큼이나 좋은 영화들이 제대로 대접 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개탄해야 한다. 개선을 위해 지금보다 훨씬 더 치열하게 투쟁해야 한다.

지금, 이런 말이 공염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나는 모르지 않는다. 지난 몇 해 동안 적지 않은 논객들이 문화 애국주의의 함정을 경계하며 다양성의 본질을 상기하려 애썼지만 정책 책임자나 산업의 이해 당사자들에겐 순진한 말장난으로 들렸을 뿐이다. 위정자는 한국 영화가 국가주의 이데올로기를 공고히 하는데 지금처럼 친절하게 복무하기를 바랄 뿐이다. 한국영화라는 대표 선수는, 할리우드라는 골리앗을 상대로 홈그라운드에서만 드라마틱한 승부전을 펼치며 국민들의 역사적 문화적 콤플렉스를 대리 해소해줘야 한다. 그것을 중계하고 있는 언론이나 다양성 담론이 숨쉬지 못하는 틈을 타 독점을 공고히 하며 이윤을 부풀리는 대규모 영화 자본가들에게 어떤 영화가 시민의 영혼에 거름이 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 들어설 자리는 크지 않아 보인다. 그래서 나는 믿지 않는다. 오늘도 여전히 한국영화를 사랑해 달라고 읍소하고 있는 그들의 진심을.

* 9월 13일자 컬처뉴스(http://www.culturenews.net)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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