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양을 막론하고 용은 상상의 동물이지만 그 상징성은 하늘과 땅 차이다. 꿈도 ‘용꿈’을 최고로 치는 데서 알 수 있듯, 동양에서는 용이 길하고도 위대한 것을 상징해 왔다. 반면 뭐든 적을 상정하기 좋아한 서양 문화권에서, 용(드래곤)은 흉측하고 무시무시한 괴수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드림웍스의 3D 애니메이션 <드래곤 길들이기>는, 바로 이런 서구의 문화적 전통을 살짝 비틀어 전복의 쾌감을 이끌어 낸다. 괴물을 주인공으로 앞세운 대신, 잘 알려진 동화 속 캐릭터들의 속성을 뒤집었던 <슈렉>을 통해 이미 쏠쏠한 재미를 보았던 드림웍스는, 이번에는 ‘무시무시한 드래곤과 친구 되기’ 프로젝트로, 또 한번 <슈렉>의 영광을 재연하려는 야심을 선보인다.
드림웍스 애니답게, 주인공은 예의 멋지고 용감한 훈남이 아니다. 바이킹 족장의 아들이면서도 소심하기 이를 데 없는 ‘히컵’은 공포의 대상인 드래곤 ‘나이트 퓨어리’와 우연한 기회에 친구가 된다. 그리고 바이킹과 용들을 모두 위기에서 구해낸다.
줄거리는 참 간단하지만, <드래곤 길들이기>는 포스트 부시 이후 감지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정치적 트렌드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히컵을 뺀 모든 바이킹들이 드래곤에 대한 적대감과 호전적 태도를 버리지 못한다면, 히컵은 말하자면 평화주의자다. 그는 드래곤을 이해함으로써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입증해 보인다. 그리고 그의 믿음은 평화를 가져다 준다.
간단히 말해 적을 적으로 바라보는 것은 근거 없는 공포에 휩싸여 있기 때문이며, 바로 그 공포의 대상을 이해하고 교감하려고 노력할 때 평화의 씨앗을 얻을 수 있다는 메시지인데,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어쩌면 <아바타>의 연장선 위에 놓여 있는 듯 보인다. 나로선 후반부의 설정에서 살짝 빈정 상하는 대목이 없지 않았으나 할리우드 애들이 이 정도 올바름이라도 보이는 게 일견 기특하다.
(애니메이션 하나 두고 올바름을 말하는 게 웃기다 비웃으실 분들을 위해 첨언하자면, 나는 멋진 정의의 사도가 '악의 축'을 물리치는 설정보다 찌질한 애가 그 악의 축과 악수하는 설정이 교육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유익하고 올바르다고 믿는다.)
히컵이 길들이는 귀여운 드래곤 ‘투슬리스’ 그리고 '그롱클'이나 '테러블 테러' 등 각종 드래곤 캐릭터들의 향연이 재미있다. 특히 히컵이 투슬리스를 타고 하늘을 비행하는 대목에서는, 3D 애니메이션의 진가가 유감없이 발휘된다. 입체적 박진감이라는 측면에서, <타이탄>이 짝퉁 3D였다면, 이 작품은 진품 3D다. 5월 20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