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해진과 김혜수는 끝까지 열애설을 부인했어야 한다. 아니 최소한 침묵으로 일관했어야 한다. 보도 자료를 통해 열애 사실을 공식 인정함에 따라 그들은 과거의 해명이 거짓말임을 스스로 인정한 꼴이 됐을 뿐만아니라, 향후 동료 연예인들의 사생활이 심각하게 침해될 소지를 만들었다. 이게 무슨 말인고 하니...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이 보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8년 11월 한 스포츠신문에서 유해진과 김혜수의 결혼설을 특종 보도했다. 그렇지만 이 특종 보도는 곧 오보가 됐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 기사의 핵심은 2009년 5월 결혼설이었는데 두 사람은 지난 해 5월에 결혼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두 사람은 결혼설 뿐 아니라 열애설 자체도 부인했다. 해당 기사를 작성했던 선배 기자는 필자에게 “한 군데서만 확인한 사안을 가지고 특종이라고 보도하진 않는다”라며 “여러 곳에서 크로스 체크를 해서 열애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했고 결혼설 정황까지 잡혀 기사화한 것인데 당사자들이 아니라니 황당할 뿐”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그리고 얼마 뒤 그 선배는 연예계를 떠났다. 지금은 어떻게 지내는지, 이번 기사로 당시의 황당함이 좀 누그러졌는지 궁금하다.


열애설 기사는 연예 언론에서 가장 큰 뉴스 가운데 하나로 분류된다. 그만큼 독자들의 관심이 큰 영역이지만 취재 방법이 상당히 애매한 것도 사실이다. 지인 및 측근들의 제보, 데이트 목격자의 증언 등을 종합해 열애설 기사가 보도되는데, 열애설 기사의 속성상 당사자들이 아니라고 하면 이는 곧 오보가 되고 만다. '유해진 김혜수 열애설' 최초 보도가 오보가 됐던 게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열애가 지속돼, 나중에 사실이 확인되는 경우도 있지만 연애의 특성상 해당 커플이 열애 사실을 부인하다 결국 결별하게 되면 그 기사는 영원히 오보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연예인 열애설 기사에서 실제 열애 중인지 여부는 중요치 않다. 연예인 입장에서는 열애설 공개에 따른 실익을 따져, 인정과 부인을 결정한다. 실제로 연예부 기자들 사이에 전설처럼 내려오는 과거 사례 가운데에는 경악을 금치 못하게 만드는 사연도 있다. 90년대 한 언론사에서 연예인 커플의 결혼설을 보도하자 해당 연예인들은 이를 강력히 부인하며 명예훼손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결국 물적 증거가 없는 해당 기자는 패소했고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금을 물어야 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실제로 두 연예인은 결혼했다. 그러면서 해당 연예인들이 했던 말, “해당 결혼설에 대응하며 소송까지 진행하는 과정에서 애정이 싹터 결혼하게 됐다.” 아! 이를 어쩌란 말인가.

이번 열애설 기사에서 잇따라 특종을 보도한 건  <스포츠서울닷컴>이지만, 한국 언론에서 밀착취재를 주도해온 세력은 사실 여성 월간지였다. 그리고 필자가 몸담고 있는 <일요신문> 역시 신문과 잡지의 성격을 두루 갖추고 있어 오랜 기간 밀착취재 기법으로 연예인들을 취재해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여성 월간지들이 특종 경쟁을 중단하면서 월간지의 밀착취재 역시 잠잠해졌다. 그러는 사이 <스포츠서울닷컴>이 밀착취재에 올인해, 대표적인 밀착취재 언론사로 자리잡게 됐다.


<스포츠서울닷컴>은 지난 2~3년 새 다양한 연예인의 열애설을 보도했고 그 때마다 데이트 현장을 촬영한 사진이 함께 보도됐다. 측근이나 지인의 제보, 데이트 목격자의 증언 등에 머물러 있던 연예인 열애설 기사의 증거에 데이트 현장 사진이 추가된 것이다. 이런 취재 기법을 소위 ‘증거주의 보도’라 부른다. 확실한 증거가 없으면 기사화 하지 않는 영미권 언론사들이 채택하고 있는 취재 방식이다. 이로 인해 해외에는 언론사에 ‘증거’를 제공하는 파파라치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반면 아직까지 한국 언론은 증거주의 보도를 취하지 않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제보와 증언만으로 보도된 열애설에 대해 해당 연예인이 이를 인정할 지 아니면 부인할 지를 고민하는 호사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영미권을 비롯한 해외에선 이런 형태의 증거가 없는 열애설 보도는 존재할 수 없다. 이는 다만 연예부 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정치부나 사회부 경제부 등 대부분의 국내 언론은 ‘소식통에 의하면’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이라는 표현으로 불투명한 증거를 기반으로 한 보도를 자주한다. 그러다 보니 확인도 안 된 검찰 수사 내용을 언론에 흘리는 ‘빨대’들이 존재한다. 지난 한 해 검찰 ‘빨대’들이 언론과 여론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미쳤는지는 모두들 기억할 것이다. 물론 해외 언론에서도 ‘소식통에 의하면’ ‘익명을 요구한 관계자에 따르면’ 등의 표현이 종종 등장하나 이는 취재원 보호를 위해 제한적으로 사용되고 있을 뿐이다.

아직 국내에선 익숙하지 않은 증거주의 보도를 채택한 탓인지 밀착취재 방식은 늘 사생활 논란을 야기하곤 한다. 그런데, 과연 어디까지가 사생활 침해일까. 열애설을 보도하는 것 자체가 사생활 침해일까, 아니면 밀착취재를 통해 열애 장면 사진을 촬영해 보도하는 것이 사생활 침해일까.


유해진과 김혜수는 스스로 밀착 취재를 유도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사람의 열애설 인정 보도 자료가 각 언론사로 발송된 이후 연예부 기자들은 상당한 배신감과 위기감을 가졌다. 당일 오후 만난 몇몇 후배 기자들은 최초로 열애설이 보도됐던 당시를 뚜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소속사를 통해 열애설을 강력 부인한 두 사람은 이후 영화 홍보를 위해 가진 매스컴과의 인터뷰에서도 거듭 열애설을 부인했다. 심지어 양측 모두 “아무렴 내가 김혜수와 만나겠냐?” 또 “아무렴 내가 유해진과 만나겠냐?”는 반응까지 보였을 정도였다. 그런데 결국 데이트 현장이 촬영된 사진이 공개되며 다시 한 번 열애설 기사가 보도되자 이번엔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다음은 김혜수의 소속사에서 발송한 보도 자료의 일부.

이번 모 스포츠 신문의 사진과 기사들이 배우나 연예인으로서가 아닌 극히 사적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당사자들의 사전 확인이나 동의 없이 보도되고, 그로 인해 파생 되는 무분별한 추측성 보도가 이루어진 상황에 대해서는 유감스러움과 안타까움을 느끼는 것 역시 부인하기 어렵습니다. 연예인들이 국민들의 관심과 그에 따른 궁금증에 부응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한편으로 그들의 최소한의 프라이버시 역시 보호되어야 한다는 점도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맞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만약 그들이 2008년 11월에 보도된 열애설을 떳떳하게 인정했다면 이렇게 언론이 밀착 취재에 들어갈 필요가 있었을까? 만약 이번 보도가 사진없이 다시 증언과 제보 등으로만 구성된 기사였다면 과연 두 사람이 열애를 인정했을까?

결국 이번 유해진과 김혜수의 열애설 공식 인정은 매스컴에게 “앞으로 열애설을 보도하려면 밀착취재를 해서 데이트 현장 사진이라도 한 장 가져와봐라”고 외치는 것과 같다. 실제로 <스포츠서울닷컴>이 밀착취재를 통해 연거푸 열애설 보도에 성공하자, 몇몇 언론사에서 비슷한 팀을 구성하려 했다는 소문이 들려오곤 한다. 실제로 팀을 구성했지만 잘 안됐다는 얘기도 있고, 비슷한 팀을 꾸리려다 중간에 계획을 접었다는 소문도 있었다. 그러던 차에, 이번 보도로 인해, 다시 연예 언론이 뒤숭숭해지고 있다. 유해진과 김혜수 커플이 내린 특명(?)에 따라 밀착취재 형태로 연예인의 열애설을 취재하려는 언론사가 급증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모든 기자가 연예인들의 특명(?)에 따라 두꺼운 외투와 무릎담요 등을 챙겨, 열애설이 나도는 스타의 집 주변에 잠복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다. 유해진과 김혜수가 이번 열애설 보도에 대해,
차라리 앞서 언급한 전설속 90년대 선배 연예인처럼 “2008년 열애설 보도 당시엔 남남이었는데 그 보도에 대항하려고 의논하다가 사랑이 싹텄어요”라는 거짓말이라도 하는 편이 그나마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 이 가사에 첨부된 사진은 <스포츠서울닷컴> 사진팀의 허락하에 게재된 것이므로, 무단 전제, 복사, 배포를 금합니다. 아룰러, 사진을 제공해준 스포츠서울닷컴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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