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스포일러 다량 함유

이 영화의 한국어 제목에 대해 불만들이 많은 것 같다. 원래 제목은 <비키크리스티나 바르셀로나>인데 국내 수입사에서 무슨 생각인지 제목을 이상 야릇하게 바꿨다. 헌데 영화를 보고 나니 용서가 된다. 제목의 목적이야 원래 낚시질이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제목도 아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내 남자의 전 아내도 좋아'이겠지만 영화의 핵심을 훼손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다만, 제목에 끌린 관객들이라면 그 놈의 아내가 언제 나오나 지루한 기다림을 참아내야 했을테지만 말이다.

언제나 귀여운 수다 영화로 우리를 즐겁게 하는 우디 앨런 할아버지가 이번에도 착착 감기는 한 편의 농담극을 완성해 제시했다.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를 어떻게 표현해야 좋을까. 나는 이 영화를 욕망에 대한 영화로 보고 싶다. 그러니까 욕망을 추구하는 네 사람의 서로 다른 방식을 나열해 놓고 당신은 어느 쪽을 선호하냐고 묻는 영화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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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크리스티나(스칼렛 요한슨). 이 여자는 늘 모험적 관계를 추구하는 욕망의 화신이다. 어느밤 우연히 다가와 섹시 작렬 작업 멘트를 날리는 스페인 화가 후안(하비에르 바르뎀)한테 '뻑' 간다. 동행한 친구 빅키(레베카 홀)는 어이 상실이다. 남자가 다짜고짜 쓰리썸 섹스를 요구했기 때문인데, 이 여자의 세계관에선 있을 수도 있어서도 안되는 상황이다. 어쨌든 두 여자, 남자가 모는 비행기에 몸을 싣고 오비에도로 향한다.

크리스티나가 중요한 순간에 위궤양을 일으키는 바람에 대타 데이트에 나선 빅키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이내 후안의 거부할 수 없는 매력에 무너지고 만다. 그러니까 섹스를 했다. 현실론자 빅키 후퇴하고 다시 낭만주의자 크리스티나 전진. 아예 후안과 동거를 시작해 알콩달콩 모드로 진입할 찰나, 또 한명의 여성 등장해주니 바로 후안의 전처 마리아(페넬로페 크루즈)다. 이 여자 포스가 장난 아니다. 처음엔 당혹스러웠던 크리스티나는 점점 이 여자와의 레즈비언적 관계에 이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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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분하자면, 크리스티나와 빅키는 욕망 추구의 두가지 방법론을 실천하는 주체이며 후안과 마리아는 그들의 욕망을 수렴하거나 반사하는, 일종의 대상들이다.  똑같은 대상에 대한 욕망을 각기 다른 방식으로 추구하는 두 여자의 방법론은, 그러니까 저돌형과 망설임 형이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티나는 일단 저질러보고 평가하고, 비키는 위험 요소를 우려해 머뭇거리며 천천히 이끌리는 방식을 택한다.

우디 앨런은 흥미롭게도 두 여자의 여정을 한 곳으로 귀결시킨다. 욕망을 실컷 추구한 크리스티나는 또 다른 새로움을 찾고 싶어진다. 위험을 무릅쓰고 망설임 끝에 저지른 빅키는 '죽을 뻔' 한다. 두 사람에게 남는 것은 똑같은 허무함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그래도 두 사람은 남은 인생동안 대동소이한 방법론으로, 그러니까 저돌적이거나 혹은 머뭇거리며 자신들의 욕망을 추구하며 살 것이다. 남는 것은 도돌이표처럼 찾아오는 허무함 뿐일지라도 다시 그렇게 무언가를 애타게 욕망할 수밖에 없는 게 우리 삶의 숙명이 아니던가. 그걸 장난기 섞어가며 드러내는 우디 앨런의 이야기에는 그 스스로를 포함한 인간에 대한 냉소와 연민이 교차한다. 간과할 수 없는 통찰이 숨어 있다.

이걸 어쩌면 진보와 보수가 오십보 백보인, 말하자면 경박한 자유와 위선적 경건함이 도토리 키재기를 하고 있는 미국적 상황에 대해 그가 느끼는 지루함의 표현으로 해석해도 큰 무리는 없을 것 같다. 그러니까 미국인들을 유럽에 데려다 놓고 반응 실험을 하고 있는 것 같은. 영화 한 편으로 풍부한 수다의 여지를 남겨주는 우디 앨런은 이번에도 그 연세에 걸맞지 않는 꽤 발칙한 농담 한자락을 객석에 툭 던져 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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