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자연이 살았던 복층형 빌라. 전세로 거주중이었다.
내가 고인의 경제 상황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계기는 ‘데스노트’라고 알려진 경찰 증거물이었다. 앞서 나는 지난 16일에 발행된 <일요신문> 879호를 통해 '데스노트'의 실체를 단독 보도한 바 있다. 경찰이 이 증거물을 입수한 것은 자살 직후다. 자살 원인을 파악하기 위해 고인의 집을 찾았다가 소설책 뒷부분에 고인이 직접 쓴 ‘데스노트’라는 제목의 글을 발견한 것. ‘데스노트’라는 제목처럼 여기에는 본인이 싫어하는 연예관계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는데 고인의 심경이 적혀있는 글들도 포함돼 있었다. 그 가운데 “생활고에 시달리는 내가 싫다”는 문장이 담겨 있었던 것. 그렇다면 진실은 무엇일까.
유가족인 언니, 오빠와의 접촉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우선 고인의 고모를 찾아갔다. 고인의 고모는 현재 탄탄한 중소기업인 A 업체의 회장으로 소문난 재력가다. 고인의 가정이 유복하다고 알려진 까닭 역시 고인의 고모와 관련이 높다. 우선 고인의 고향인 전라북도 정읍시에선 고인이 ‘A 업체 회장 조카’로 유명했다. 그만큼 정읍에선 소문난 재력가 집안이라는 것. 고인의 부친 역시 A 업체와 연관이 깊다. 생전에 A 업체에서 고위직으로 근무했던 것. 그렇지만 고인의 부친은 지난 2002년 간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일단 고인의 고모는 경제적 어려움에 대해 말도 안된다는 반응을 보였다. 고인의 고모 장 아무개 씨는 “생활고 때문에 (장)자연이가 힘들어 했다니 말도 안된다. 경제적으로는 아무런 어려움이 없이 컸고 지금도 그렇다”고 얘기했다.
장자연이 타고 다니던 외제차. 고인 소유가 아닌 리스 차량이었다.
전북 정읍에서 만난 시민들 역시 비슷한 반응을 보였다. 평생 부족함 없이 쓸 만큼 유산을 물려받았을 것이라고 예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렇지만 이런 예상의 중심에는 ‘A 업체 집안이니까’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그렇지만 분명 A 업체는 고인의 부친이 아닌 고모가 운영하는 회사일 뿐이다.
어렵게 정읍에서 고인의 부모가 생전에 가깝게 지내던 지인 한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그는 고인과 유가족이 엄청난 유산을 물려받았다는 추측은 말 그대로 추측에 불과할 것이라고 얘기했다.
“고인의 할아버지는 상당한 부자였지만 고인의 부모는 평범한 아파트에 살았는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편이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유산을 물려줄 정도는 아니었어요. 두 자매가 먼저 서울로 떠나고 아들만 오락실 등을 운영하며 정읍에서 혼자 살다 몇 년 전 정읍을 떠났죠. 다만 둘째인 딸(고인의 언니)은 돈이 좀 있다고 들었는데 유산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상황 때문일 겁니다. 그렇다고 호화로운 집에 살며 외제차를 몰고 다닐 정도는 아닐 겁니다.”
장자연 명의의 국산 승용차. 고인이 아닌 오빠가 타고 다녔다고 한다.
고인과 유가족의 재산 규모에 대해서도 확인이 가능한 부분 내에서 살펴봤다. 먼저 고인이 살았던 분당 소재의 복층형 빌라의 경우 전세로 거주 중이었다. 인근 부동산 업자에 의하면 “4년 전 쯤 전세 계약해 언니와 함께 살았었다”면서 “공기 좋고 경치 좋은 집을 찾았는데 마침 그 집은 벚꽃이 피면 경치가 뛰어난 집이었다”고 한다. 전세 계약은 고인이 아닌 고인 언니 명의로 된 것으로 알려졌고 4년 전 계약 당시에는 고모가 동석했다고 한다. 고인의 언니는 개인적으로 돈이 조금 있었을 것이라는 지인의 얘기와 일치하는 대목이다. 또한 고인이 타고 다니던 외제 승용차 역시 고인 명의가 아닌 리스 차량이었다. 별도로 고인 명의의 낡은 국산 중형차가 한 대 더 있었는데 이 차는 고인의 오빠가 타고 다녔다고 한다.
유가족인 언니와 오빠의 직업에 대해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오빠의 경우 정읍에선 오락실을 운영했었고 보험 관련 일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서울에 올라온 뒤에 뭘 하며 지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언니의 경우에는 정읍에서도 직업과 관련해 알려져 있는 내용이 전혀 없었다. 결국 지금까지의 확인 결과, 고 장자연이 비록 고급 주택에 살며 외제차를 몰고 다녔다 할지라도 소속사 대표의 주장대로 그녀가 풍족한 생활을 했다고 단정 지을만한 근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