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연락이 왔다. 허찬 감독. 지난 연말 3M흥업이 마련한 '200만 원으로 영화찍기' 행사에 단편영화 <거울 공주>를 출품한 장본인. 빠듯한 출품 기한을 맞추느라 기술적인 허점이 많았던 터라, 연출자로서의 안타까움과 스탭, 배우들에 대한 미안함이 컸었나 보다. 행사 당일 뒷풀이 자리에서 "꼭 완성본을 다시 보여드리겠다"고 다짐을 거듭하더니 결국 약속을 지켰다.
재편집과 믹싱, 색보정 작업 등 후반 작업에만 꼬박 3개월의 공을 들인 허찬 감독은, 어제 연세대 학술정보관 내 미디어 감상실(그는 연세대 국문과 대학원생이다)에서 3M흥업 멤버들과 주연배우 장문정 씨, 일부 스탭들을 불러 모은 뒤 다시 <거울 공주>를 상영했다. "한 말씀 하셔야죠?"라는 내 요구에 그는 상영관의 불을 끄더니 암전 상태에서 수줍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과연, 작품의 완성도가 눈에 띄게 향상됐다. 다소 거칠었던 편집의 흐름도 매끄러워졌고, 훨씬 선명해진 화면 때깔이 몰입을 도왔다. <거울 공주>는 비정규적 삶을 살아가는 20대 여성들의 일상에 대한 흥미롭고도, 설득력 있는 우화를 제시하고 있었는데, 평범한 일상의 그늘에 장르적인 박진감을 얹으며 풀어 헤치려는 그의 시도가 처음부터 미더웠던 나는, "이 상태로 출품됐다면 <거울공주>가 1등을 했을 것"라고 뒤늦은 찬사를 보냈다. "부디 여러 영화제에서 상영돼 반향을 일으키기를 바란다"는 기대도 덧붙였다.
무엇보다 자신의 작품을 끝까지 책임지려고 했던 그의 끈질긴 열정은 그 자체로 감동적이었다. 이렇게 또 한 명의 훌륭한 젊은 재능과의 인연을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200만 원으로 영화찍기' 행사의 취지는 110% 달성된 셈이다. 증발되지 않는 창의적 열정을 증명해 보인 허찬 감독에게 마음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