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너무 넘쳐 아쉬운 영화

영화 이야기 2009. 3. 15. 14:39 Posted by cinemAgo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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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스포일러 다량 함유
 

우선, 나는 이 영화의 문제 의식에 110% 공감한다. <극락도 살인사건>의 김한민 감독이 연출한 <핸드폰>은 우스꽝스러운, 그러나 결코 웃을 수 없는 현대 소비자본주의에 대한 우화를 제공한다. 핸드폰이라는 문명의 이기와 고객 제일주의에 포획된 두 남자를 병치시키는 가운데 대립시키는 구도는 충분히 흥미로울 뿐더러 새길만한 구석이 적지 않다.

핸드폰을 잃어 버려 사색이 된 연예인 매니저와 "똥개" 같은 고객들에게 일상적으로 당하고 사는 현대판 머슴은 서로를 향해 으르렁대지만 결국 두 사람은 '소외'라는 공통 분모에 묶여 있다. 연예 기획사의 오대표(엄태웅)는 소속 연예인을 팔아 먹기 위해 늘 핸드폰을 달고 살지만 누군가와 소통하는 방법을 까먹은 사람이다. 잃어버린 핸드폰과, 충전용 '꼬다리'에는 집착해도 그가 사랑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아내(박솔미)의 소통 욕구는 방치한다. 그러니까 그는 첨단 매체로 촘촘히 연결된 관계망 안에 있지만 진짜 소통으로부터는 철저히 소외돼 있는 현대인의 아이러니를 은유하는 인물이다.

오 대표의 핸드폰을 우연히 주운 걸 계기로 악마성을 드러내기 시작하는 정주임(박용우)은, 구매력의 물신화 과정에서 생겨난 다른 차원의 소외를 상징한다. 소비자를 일상적으로 고객으로 호명하는 소비 자본주의는 (사실은 소비의 노예인) 그들이 마치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 소비자본주의의 피고용인들은 고객 앞에서 그 착각의 순간을 연출하도록 훈련받은 판촉 노예로서 이 기만의 과정에 동원된다. 거래의 물신이 관계를 지배하는 순간, 인간에 대한 존중과 예의는 쉽게 증발되고 가식 또는 모욕이 남는다.
 

이 의미심장한 상징 인물이 서로 대립하는 과정을 스릴러의 호흡으로 담아내려 한 <핸드폰>은, 그러나 애석하게도 매력적인 소재를 맛깔나게 포장하는 데는 실패한다. 오대표와 정주임의 배경적 상황을 너무 친절하게 보여주려 하다 보니 수습해야 할 것들이 많아졌고, 이것이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영화를 갈팡질팡하게 할뿐더러 호흡을 늘어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이건 영화니까’하고 넘어가기에는 이야기의 디테일이 떨어지는 부분도 몰입을 방해했다. 이를테면, 나는 이런 부분에서 쉽게 납득이 안됐다. 오대표의 아내는 왜 핸드폰을 주운 사람에게 처음 전화가 왔을 때 그의 연락처를 묻거나 직접 약속을 잡지 않고 오대표의 사무실 전화 번호를 가르쳐 주겠다고 했을까. 고객 응대의 달인 정주임은 왜 처음부터 그렇게 쉽게 변태성을 드러낸 것일까. 오대표의 폭력적인 언사 때문에 서서히 오기가 발동하며 악마성이 점층되는 게 좀더 설득력 있지 않을까. 오대표는 정주임이 혼내주라고 한 두 사람의 행방을 어떻게 그렇게 쉽게 찾아냈을까. 정주임이 지시한 거라면, 그는 성추행남의 차가 어디에 주차해 있는지, 청소기 노인이 아침에 어느 공원을 조깅하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오대표는 왜 하필 으슥한 뒷골목도 아닌 백주의 공원에서 노인을 린치하는 걸까. 정주임은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한 녀석이 그 시각 어느 피씨방에 있는지 어떻게 알았을까 등등.

이런 의문들이 해결되지 않으니, 마지막의 반전은 여운도 충격도 주지 않는 사족처럼 느껴질 뿐이었다. 모든 요소들이 치밀하고도 설득력 있게 맞물려 있어야 하는 스릴러 치고는 이야기의 허점이 너무 많이 보인다. 설령 시나리오엔 다 들어 있었지만 러닝타임의 압박 때문에 생략된 거라 할지라도, 그런 사정까지 이해하고 넘어갈 관객은 없을 것이다.

이야기의 잔가지를 치고, 디테일을 조금 더 보강했더라면 꽤 훌륭하고도 의미 있는 스릴러가 될 뻔한 <핸드폰>은, 110% 공감했지만 2% 넘치는 바람에 김 빠진 사이다가 됐다. 그리하여 배우들의 호연(특히 엄태웅!)과 꽤 잘 설계된 장면 연출에도 불구하고, 나같은 관객들의 공감 욕구를 끝내 '소외'시키고 말았다. 뭐든 과유불급인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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