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의명: 리비도 촉진 특위 긴급회의
일시: 2013년 3월 14일
장소: 청와대
참석자: 대통령, 보건복지부 장관,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전국 숙박업계 협회장, 전국 제과업 협의회장, 전국 외식업 조합장,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음반기획자 협회장.

대통령: 오늘 긴급 회의를 소집한 이유에 대해 장관으로부터 대강의 설명을 미리 들었습니다.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 겁니까?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대통령님, 나라 경제에 엄청난 악영향을 미칠 정도로 상황이 심각합니다. 오늘 대통령님을 모시고 이런 자리를 마련한 것은 상황의 심각성이 국운을 좌우할 정도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2년 전 대통령 직속으로 리비도 촉진 특별 위원회를 설치했을 때만 해도 노란불 수준이었다면 지금의 상황은 거의 빨간 불이 들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대통령: 빨간 불이라니...조금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죠.

전국 제과업 협의회장: 대통령님, 외람되지만 제가 먼저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오늘이 어떤 날인지 아십니까?

대통령: 3월 14일이죠.

전국 제과업 협회장: 크음~! 오늘이 그 유서 깊은 화이트데이라는 날입니다. 십수년전 저희 제과업계에서 상품 판매 촉진을 위해 절치부심 끝에 개발해낸, 그러니까...

대통령: 거 남자가 여자한테 사탕 주는 날이죠? 저도 그 정도는 압니다.

전국 제과업 협의회장: 그렇습니다. 그런데, 연 3년째 사탕 매출이 떨어지더니, 올해는 급기야 지난해보다 절반 이상이나 매출량이 급감하고 말았습니다. 그 뿐 아니라 2월 14일, 그러니까 발렌타인데이의 초콜렛 매출은 더욱 심각하게 줄어 들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얼마 안있어 저희 제과 업계에 상당한 타격을 입힐 게 뻔합니다.

대통령: 매출이 준다면, 그 이유가 뭡니까?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연애를 안 합니다. 도대체가 요즘 젊은 아이들이 사랑을 안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의 구매력이 엄청나게 떨어지고 있다는 겁니다.

전국 숙박업계 협회장: 사실...제과업계의 사정은 저희들에 비하면 엄살에 불과합니다. 저희들은 일년 내내 불황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1년 전부터 대실료를 50% 일괄 인하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니까 만 오천 원입니다. 만 오천 원! 그래도 투숙객은 점점 더 줄어들고 있습니다. 도대체들 연애를 안 하니 누가 섹스를 하러 오겠습니까. 초고속 인터넷에 최첨단 영상 시설까지 갖추고 있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이 정도이니 온 벽에 스크린을 만들어 야동을 뿌려대는 업소도 생겨날 정돕니다.

전국 외식업 조합장: 저희 외식업도 마찬가집니다. 5년 전만 해도 호황을 누리던 분위기 좋은 이태리 식당들, 요즘 파리 날리고 있습니다. 아무리 인테리어를 멋지게 한들, 커플 손님들이 급감해 반타작 매출에 그치고 있습니다. 키스라도 하라고 자리 사이에 벽을 만들었지만 오히려 부작용만 늘었습니다.

대통령: 젊은 남녀가 연애를 하지 않는다는 건 도저히 이해를 못할 노릇이군요.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그러니까 이른바 '초식계' 현상이 한국에도 본격적으로 몰아닥친 겁니다. 초식계란, 마치 풀만 먹고 사는 것처럼 도무지 짝을 찾아 나설 생각을 안하고 사는 젊은 남자들을 일컫는 말인데요. 연애를 함으로써 부수되는 경제적 부담을 도저히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아예 연애 자체를 포기해 버리는 이들이죠. 최근 조사에 따르면 20대 남성 가운데 이런 초식계가 50%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통령: 남성들이 그렇다면 여성들은 어떻습니까.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흥미롭게도, 여성들의 경우엔 반대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이른바 '혼활(婚活)', 그러니까 혼사를 성사시키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서는 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는데요, 그 이유는 유감스럽게도 초식계와 비슷한 맥락입니다. 여성들의 경우, 솔로로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경제적 사회적 부담이라는 측면에서 남성보다 훨씬 열악한 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에 결혼을 통해 그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괜찮은, 그러니까 안정된 경제 환경을 제공할만한 배우자를 찾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는 것이죠. 하지만 말씀드렸다시피, 남자들이 모두 초식계로 전환하고 있으니 리비도의 상당한 불균형 현상이 빚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대통령: 거 큰일이군요. 연애 하나 하는 데 돈이 그리 많이 든답니까?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이 자리에 왜 숙박업계와 제과업계, 외식업계의 대표분들이 참석해 있는지 짐작하시면 될 듯 합니다. 조사에 따르면 연애를 함으로써 일년간 지출해야 할 금액이 1천만 원을 웃돈다고 합니다만...뭐 외식, 명품 선물, 여행, 만난 지 100일, 키스 데이에 빼빼로 데이, 로즈 데이, 발렌타인 데이와 화이트 데이, 크리스마스 등의 각종 기념일 챙기기 등등으로 소비되는 돈 말입니다. 외신 보도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커플들이 1년 중 챙겨야 할 기념일이 30일 정도 된다더군요. 그거야 뭐 경기 부양을 위한 것이니 큰 문제 아닙니다만, 아무튼 나라 경제의 근간인 우리 기업의 회생을 위해선 정책적 대안이 시급한 시점입니다.

전국 숙박업계 협회장: 정부가 젊은이들의 연애 욕구를 정책적으로 강력하게 부추겨 주셔야 합니다.

대통령: 정책의 필요성은 절감합니다만, 구체적 대안이 쉽지 않을 듯 합니다. 대책이 있겠습니까?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지금 이 자리에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과 음반기획자 협회장이 참석해 계십니다만, 결국 문화적인 접근만이 실효를 거둘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가요에서 이별 노래를 금지해야 합니다. 대신, 사랑을 시작할 때의 희열을 찬양하는 노래를 많이 만들도록 효과적인 장려 정책을 제안합니다. 영화도 중요합니다. 로맨틱 코미디 쿼터제를 만들어, 일정 퍼센트 이상의 사랑 영화를 만드는 것을 전제로 다른 장르의 영화 제작을 허용하는 것이죠.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 대통령님, 그런 종류의 쿼터 제도는 이미 수십년전에 비슷하게 존재하긴 했습니다만, 아, 그 때는 반공 영화 쿼터가 있었죠, 헌데 그게 무리인 이유가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아, 아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로맨틱 코미디는 이미 몇 년 전부터 완전히 한물간 장르가 됐습니다. 이젠 그 어떤 제작자도 로맨틱 코미디를 만들려 하지 않습니다. 장사가 안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죠. 연애에 대한 기대가 없는 젊은이들이 왜 굳이 로맨틱 코미디를 보려 하겠습니까. 그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봅니다.

음반기획자 협회장: 그건 저희 음반기획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랑 노래요? 만들어봤자 팔리질 않습니다. 심지어 요즘엔 라디오에서도 청취율 떨어진다고 거의 틀어주지를 않는 분위깁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랑 노래를 만들라는 건 제 무덤을 파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아예 사랑을 안하니 이별 노래도 사양길입니다.

대통령: 그렇다면, 이래저래 방법이 없는건가요?

리비도 촉진 특위 위원장: 사실 수개월전부터 보건복지부 장관과 극비리에 검토해온 프로젝트가 있긴 합니다만...

대통령: 뭡니까?

보건복지부 장관: 험! 먼저, 이제야 보고를 드리게 돼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저희가 검토한 극비 프로젝트는 이겁니다. 모든 젊은이들이 성년이 된 순간, 그러니까 만 20세가 된 순간부터 1년에 한번씩 의무적으로 보건소에 들러 주사를 맞게 하는 겁니다.

대통령: 주사라뇨?

보건복지부 장관: 최음제 주삽니다. 사회심리학적으로 리비도가 위축돼 있으니 생리학적으로 해결해 보자는 것이죠.

대통령: 부작용은 없겠습니까.

보건복지부 장관: 인권 단체의 저항이 예상됩니다만, 국익을 내세우면 큰 무리는 없을 듯 합니다. 안그래도 초식계와 혼활 자식들 때문에 골치가 아픈 기성세대들 역시 연애 기피 현상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있는 터라...아시다시피 한국의 여론은 1990년대부터 그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지금의 20대들은 정치적 발언의 방법론을 아예 모르기 때문에 크게 상관할 문제는 아닙니다.

대통령: 그렇다면, 밀어 붙여 봅시다.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사랑을 하게 만드세요. 사랑이 살아야 기업이 삽니다. 기업이 살아야 나라 경제도 산다는 것을 우리 모두 명심합시다. 오늘 회의는 여기서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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