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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리의 방송중 비속어 사용 논란이 일회성 해프닝으로 슬쩍 넘어가는 분위기다. 나로선 섭섭하다. 논란이 파급, 유통되는 과정이나 연예인을 대하는 대중의 태도, 그리고 그들의 이중적 위상까지 한국 대중문화 지형의 한 단면을 그대로 보여주는, 흥미로운 함의가 적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몰라도 전문가 한 분이 나와서 음성분석까지 한 결과를 들이대며 그건 '존나'가 아니라 '좀더'였다고 해명했다는 이유로 그걸 하나의 주장이나 견해가 아닌 기정사실로 몰고가는 일부 언론의 행태는 또 한번의 코미디다. 기사거리의 보고(寶庫)를 보위하자는 이심전심이었을까? 일부 네티즌들의 지적을 '논란'으로 확대 재생산시킨 장본인들이, 다시 그걸 서둘러 봉합하고 있는 꼴이 가관이다. 나는 방송 출연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들이대는 외모 지상주의적 발언은 왜 이 정도 논란조차 되지 못하는지 의아하다.(뭐가 외모지상주의적 발언인지 따지는 것보다 말트집이 훨씬 쉽고 자극적이기 때문이라는 것쯤은 짐작못할 바 아니다.)  

한참 뒷북일테지만, 나는 그녀가 '존나'라는 표현을 썼을 개연성이 적어도 80% 이상이라고 생각한다. 왜냐? 그 문장에선 그 수식어가 '좀더'보다 백배 더 자연스럽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두 사람간의 대화 안에서 즉각적인 비교대상이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어떤 것과의 비교를 전제하는 '좀더'라는 수식어가 과연 그 문장에 어울릴 것이며, 설령 그렇다 하더라도, 그 부자연스러운 수식어를 그렇게 순식간에 떠올려 발음하고 넘어갈 수 있었을까? 글쎄다.(구어체에서 '좀'을 '쫌'에 가까운 된소리로 발음하는 경우가 더 많다는 것을 상기하면("쫌만 조~" 혹은 "쫌쫌쫌" 하듯) '쫀나'도 아닌 '존나'로 들어도 그렇게 들리는 그 말이 사실은 '좀더'였다는 분석은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 대목이긴 하다.)

여하튼 나는 여기서 이효리가 감히 방송에 나와 '존나'라고 말했다고 단정짓고, 그런 천박한 비속어를 쓴 우리의 '허리 여왕'을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려는 건 아니다. 설령 좀 그랬다면 어떤가. 나는 어제 하루만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휴대폰에 대고 '존나 쩔어'라고 말하는 소리를 여러번 들었다. 남녀불문하고 10대, 20대들이 하도 말끝마다 사용해서, 이제는 차라리 욕설이 아닌 것처럼 들리는 '존나', 그게 남성 성기를 뜻하는 '좆'에서 비롯됐다는 것조차 쓰는 이도 모르고 듣는 이도 모르게 될 정도로 일상어가 된, 그 '존나'를 이효리가 썼다 했을 때 오히려 정겹기까지 했다. 하물며 장관이 욕설을 해도 멀쩡한 시대 아닌가.

이 사안에 있어서 내가 생각하는 문제의 핵심은, 그녀가 '존나'라고 했느냐 '좀더'라고 했느냐, 또 연예인이 그런 말을 써서 되느냐가 아니다. 드러나보이는 현상, 즉 연예인들에게만 무슨 성인군자가 될 것을 요구하는 우리 사회의 이중성과 (신정환 욕설 방송에서 재차 확인됐듯) 비속어 사용에 대한 적절한 가이드라인과 대응책이 없는 후진적인 방송 시스템이다.

연예인은, 말하자면 '공인된 날라리'다. 우리는 그들이 마음껏 찧고 까부는 모습을 보면서 고단한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대리만족을 느낀다. 우리도 그들처럼 마음껏 놀고 싶지만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직업적으로 기가 막히게 잘 노는 그들의 놂을 구경함으로써 쾌감을 얻는 셈이다. 그리고 놂은 몸과 언어로 표현된다. 공인된 날라리인 연예인들이 날라리적 몸짓과 언어를 사용하는 것은, 그러므로 매우 당연한 노릇인 것이다.

헌데, 한국의 방송 시스템은 늘 연예인들에게 입조심하며 놀라고 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 기제가 작동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보니 연예인들은 자연스럽게 방송을 솔직한 표현의 장이 아닌, 이미지 구축의 장으로 활용한다. 세상 지천에 험담과 뒷담화가 난무하는데, 방송에 나온 연예인들은 하나같이 천사표다. 서로 빨아주고 칭찬하기에 바쁘다. TV 속 세상만 천국이다.

생방송이 아닌 이상, 더구나 출연자들의 자연스러움을 끌어내야 하는 리얼리티쇼나 버라이어티쇼라면, 제작진은 연예인에게 좀더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허용하되, 그들이 의도적이든 부지불식간이든 혹시라도 비속어를 사용할 경우 사후 편집 과정을 통해 적절히 처리하면 된다. 미국이나 일본 방송에서처럼 해당 대목을 묵음처리하거나 삑 소리를 삽입하면 될 일이다. 그렇다면 적어도 시청자는 해당 출연자가 비속어를 사용했음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된다. 어떤 비속어인지는 발언의 맥락과 시청자 개인의 경험을 통해 알아서 유추하면 될 것이고, 어쨌든 어떤 연예인이 입이 거친지 아는 것 역시 해당 연예인의 캐릭터를 더욱 현실성 있게 체감할 수 있는 요소가 될 수 있다. 그게 꼭 부정적으로 작용할 일은 아니라는 얘기다.

'방송에서 비속어를 들려줘서는 안된다'는 것과 '연예인은 방송 출연중 결코 비속어를 사용해서는 안된다'라는 얘기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전자는 방송의 공영성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지만, 후자는 연예인의 직업적 정체성 뿐 아니라 자연인으로서의 인권과 표현의 자유의 문제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책임은 슬쩍 빠진 상황에서 두 상충되는 요소가 편리하게 동일시되고 총체적으로 혼동되니 시청자도 혼동을 일으키고, 결국 방송은 항상 위선적인 매체로 남는다. 앞에 나와서 할 말과 뒤에서 할 말이 달라야 한다고 가르친다. 은연중에 표리부동의 처세술을 갈파한다. 왜 시청자들이 방송과 연예인들을 잘 믿지 못하게 됐는지, 새겨볼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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