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시트콤 <프렌즈>의 ‘레이첼’ 이미지가 너무 거대해서인지 몰라도 제니퍼 애니스톤이 나오는 영화라면 은근히 로맨틱 코미디를 예상하게 된다. 거기에다 상대역이 오웬 윌슨이라니 요거 말랑말랑한 연애 소동극 한판이 펼쳐지겠구나, 기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포스터와 예고편을 보아하니, 이들의 연애 전선을 천방지축 강아지가 훼방을 놓는 애니멀 버전의 슬랩스틱 코미디이겠거니, 짐작한들 아주 터무니 없진 않을 듯 했다.
헌데 정작 시사를 통해 확인한 <말리와 나>는 이 모든 예측을 가볍게 배신해 버렸다. 이건 굉장히 따뜻한 휴먼 드라마다. 말하자면, 개를 키우는 과정 안에 녹여 놓은 인생론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게다가 제법 ‘가족’의 의미를 곱씹게 만든다. 웃기는 장면이든 울리는 장면이든 억지스럽지 않게 관객의
<말리와 나>에서 ‘말리’는 개 이름이다. 막 부부가 된 존과 제니는 적적함도 달랠 겸 래브라도 리트리버 강아지 한 마리를 입양한다. 헌데 이 녀석이 사고뭉치다. 소파며 베개며 온 집안의 가재도구들을 물어 뜯어 남아 나는 게 없다. 훈련을 시켜도 좀처럼 개선되지 않는 골칫덩어리를 안고 끙끙대다가 어느새 부부는 말리에게 정이 든다. 하지만 잇따라 세 아이를 낳으면서 상황이 바뀐다.
<말리와 나>를 꽤 새길만한 영화로 만든 것은 러닝타임을 개와 주인들의 한판 씨름으로만 소비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자녀가 하나 둘 생기면서 부부의 일상이 변화되는 과정을 꽤 현실감 있게 묘사하고 있는데다 기자를 꿈꾸는 칼럼니스트 존의 직업적 고민도 녹여낸다. 이 과정에서 변화하는 삶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 어떤 ‘가치’에 대한 온전한 애정이 묻어난다. 그 언저리, 혹은 중심에 사랑을 주고 받은 주체이자 객체인 말리가 있는 셈이다. 그런 맥락에서, 이들 가족과 10여 년의 시간을 지지고 볶은 말리가 자연스럽게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의미를 획득하는 과정은 코끝이 찡해질만큼 설득력이 있다. 같은 제목의 베스트 셀러가 원작이다. 2월 19일 개봉.
개는 좋은 차, 큰 집, 명품 옷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막대기 하나면 충분하죠.
당신이 부자인지 가난한지 똑똑한지 멍청한지도 상관하지 않구요.
자기가 받는 사랑을 모두 되돌려주죠.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당신을 소중하고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사람…
그런 사람이 지금 당신 곁에 있나요?
-영화 <말리와 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