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시 잠적한 정선희를 만나다

민섭's 3M+α 2009. 1. 13. 17:49 Posted by 알 수 없는 사용자

‘술’로부터 버림받은 애주가의 연말은 너무나 참혹했다. 3M흥업 송년회에서도 술을 마시지 못해 맹물로 버티다 포도주스를 사와 와인인 양 버텨야 했다. 이거야 원 낮술 밤술 새벽술에 아침댓바람 해장술까지 마다하지 않던 놈에게 두 달이 넘는 금주는 너무 가혹한 형벌이었다. 그것도 송년회가 이어지는 연말에...

그래서 교회로 갔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7월부터 20년 만에 다시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나는 연말에 집중적으로 교회에 나갔다. 특히 동네 작은 교회에서 새벽기도의 자리를 열심히 지켰다. 새해 첫 번째 포스트부터 종교적인 색채의 아름다운 글을 쓰려고 하는 것일까? 자의반(!) 타의반(?)으로 3M흥업 최고의 삐끼, 낚시질의 대가가 된 신민섭 기자가 2009년부터는 달라지려 하는 것일까?


지난 해 ‘게으른 기자의 안재환에 대한 미안함’이란 포스트를 보신 분들은 알겠지만 내가 사는 집은 정선희의 집 인근에 위치해 있다.
그런 까닭에 정선희가 다니는 교회도 꽤 가까운 거리다. 연말에 집중적으로 새벽기도에 나간 이유 역시 정선희의 근황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아! 여기서 또 얼마나 많은 분들이 격분할 것이며, 수많은 비난성 댓글이 붙을 것인가!)


최근 정선희가 잠적했다는 소식이 보도됐다. 그런 상황은 지난 해 12월 22일 유가족 측이 고인의 유품을 찾으려 노원경찰서에 들른 뒤 정선희를 만나겠다며 그의 집을 찾으면서 알려졌다. 유가족이 정선희를 만나기는커녕 이틀 전 이미 이사했다는 이웃 주민의 말만 듣고 돌아온 것. 이를 동행 취재한 한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졌는데 방송에서 유가족은 “이건 경우가 아니다. 무서운 건지 두려운 건지 모르겠다”며 격분했다. 대략 12월 20일 즈음 정선희가 집을 떠난 것, 그렇게 잠적이 시작됐다.

그렇지만 12월 24일 정선희를 만난 이들이 있었다. 바로 고 최진실의 측근 인사들. 고인의 생일인 12월 24일 측근들이 고인의 집에 모였다. 이 자리에 정선희가 참석했는데 측근들에 의하면 그는 이사한 게 아니라 인적이 드문 곳에서 휴양을 취하고 있다고 했다. 과연 요즘 정선희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교회라면 정선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정선희는 모친의 권유로 교회에 다니게 돼 지금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신앙이 더욱 공고해진 계기는 SBS 공채개그맨이 된 이후 무명이던 신인시절. 선배 소개로 타 방송사에 출연했는데 이것이 SBS 관계자들에게 알려지면서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돼 새벽기도에 나가게 됐다는 일화로 유명하다. 촛불발언 당시는 물론 안재환이 사업 문제로 힘겨워 할 때, 그리고 고 안재환과 최진실의 죽음 이후에도 그는 새벽기도의 자리를 지켰다.

그렇지만 새벽 교회에서 정선희를 만날 순 없었다. 정말 잠적한 게 아닌가 싶었다. 처음엔 교회에 들어가는 게 힘겨웠다. 교회가 다소 작아 새벽기도에 오는 교인의 수가 그리 많지 않았다. 들어가서 예배를 드리는 게 곧 이마에 ‘기자’라고 쓰고 들어가는 꼴이었다. 게다가 이 교회 교인들은 그 동안 취재진의 잦은 출몰로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을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첫 날은 그냥 교회 밖에서 잠복하다 돌아왔다.

그 다음날은 아예 교회에 들어가 새벽예배를 드렸다. 교회 입장에선 새벽예배의 자리가 일만큼이나 종교적으로도 소중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선희가 나타나면 다시 평범한 교인이 아닌 기자로 돌아와야 한다는 현실이 안타까웠지만...


며칠 뒤 드디어 정선희를 만났다. 12월 31일 송구영신예배에는 참석할 거라 예상했고 이것이 적중했다. 송구영신예배는 밤 11시 40분에 시작될 예정이라 기자는 30분을 조금 넘겨 교회에 들어갔다. 그리고 5분쯤 뒤 정선희가 들어왔다.

사실 이 글을 쓰는 나는 기자를 하기엔 매우 부족한 사람이다. 우선 낯을 많이 가린다. 처음 보는 사람 앞에서 순간 ‘얼음’이 돼버리곤 하는 데 새로운 사람을 많이 만나야 하는 기자에겐 치명적인 단점이다. 연예인 인터뷰에서도 늘 헤매기만 하는데 이는 소개팅 나가서도 매한가지. ‘연애엔 무능한’ 까닭 역시 여기에 있다. 더욱 치명적인 단점은 겁이 많다는 것. 며칠 동안 기다린 정선희가 나타났는데 좋긴커녕 너무 겁이 났다. 정선희를 만나러 온 것이지만 속으론 그냥 그가 오지 않길 바라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이율배반적인 심리 상태를 우리 데스크가 알면 날 죽이려 하겠지만...

게다가 정선희는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바로 내 앞자리에 앉았다. 알고 보니 앞줄에 앉아있던 이들이 정선희의 가족들이었던 것. 정선희는 교회에 들어오자 먼저 교인들과 인사를 나눴다. 반갑게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예전보다는 많이 좋아 보였다. 여전히 ‘밝은’ 이란 형용사를 붙이긴 어려웠지만 비교적 평상심을 되찾은 듯 보였다. 고 최진실 장례식장에서 봤던 정선희의 표정은 글로 표현하는 게 불가능할 정도였다. 바로 옆자리에 어린 조카가 앉아 있었는데 계속 뭔가 말을 거는 조카에게 자상하게 대답해 주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다만 2008년 한 해를 돌아보며 회개하는 순서에선 잠시 눈물을 흘리는 듯 보이기도 했다. 바로 뒷자리라 정확히 볼 순 없었지만 손이 자주 눈으로 가는 모습이 엿보인 것. 0시를 넘겨 30분 쯤 지난 뒤 예배는 끝이 났다. 정선희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인들과 새해 인사를 나눴다.


이젠 차례가 됐다. 그를 붙잡고 기자임을 밝히고 인터뷰를 해야 했다. 그런데 뭘 물어봐야 할까. ‘잠적한 게 맞냐고, 왜 잠적했냐고 물을까?’ 아니다 그건 정선희가 스스로 판단한 개인적인 결정일 뿐이다. ‘요즘 심경을 물어볼까?’ 물어서 뭘 하겠는가, 충분히 힘들어 휴양까지 하고 있는 사람에게. ‘유가족이 주장하고 있는 고인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볼까?’ 아니다, 이미 그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모든 진술을 했고 이에 따른 경찰의 판단에서 의혹의 여지는 없었다. 이런 생각을 하는 사이 정선희는 교회 밖으로 나와 차량에 올랐고 기자는 뒤따라 요즘 거처를 확인할까 했지만 그 생각마저 접었다. 그러고 나니 참으로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나는 여길 왜 왔을까, 아니 며칠 동안 왜 정선희를 찾아다닌 것일까.’ 이런 감정은 연예계 사건사고를 전문으로 하는 연예부 기자라면 누구나 느끼는 허무감일 것이다.


이제 고 안재환을 둘러싼 의혹은 풀릴 것은 풀리고 풀리지 않은 부분은 미스터리로 남으며 어느 정도 마무리 됐다. 그리고 이젠 홀로 남겨진 정선희, 그리고 아직도 억울함을 호소하는 유가족이 남았다. 남을 웃겨야 하는 개그우먼이던 정선희가 다시 연예계로 복귀해 누군가를 웃기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그가 어디서 어떻게 지내며 아픔을 극복하고 있을까. 나는 더 이상의 궁금증은 그냥 묻어 두기로 했다. 이제 그 부분은 온전히 그의 몫이기 때문이다. 부디 하루 빨리 지난날의 아픔에서 빠져나오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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