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죄 걸린 FILM2.0에 보내는 응원가

별별 이야기 2007. 7. 20. 23:14 Posted by cinemAgora

저널의 태생적 한계는 선정성이다. 저널리즘의 태동은, 하등의 알 필요 없는 정보를 아는 것이 중요한 것처럼 행세하는 데서 비롯됐다고, 나는 배웠다. 평화로운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겐 아랫마을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그래서 문상을 가야한다는 것 정도를 입소문으로 전해듣는 것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저널은, 국왕이 어디로 납시었다는, 그래서 거기에 애국심을 덧입히는 방식으로, 정보가 손쉽게 이데올로기화할 수 있는 루트를 개발해 냈다. 그것은 근대 국가주의의 발전과 정확하게 발을 맞추는 것이었으므로, 지배 계급에게도 적잖게 유용한 것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모든 분야가 그렇듯, 저널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므로, 종사자들은 저널의 그런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애써 왔다. 선정성으로부터, 조장된 편협한 국가주의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고, 그들에게 정당한 판단의 준거를 제공할 수 있는 길을 모색했다. 우리가 익히 하는 저널의 미덕, 즉 '공정성'과 '객관성'이라는 개념은 그래서 탄생했다. 공정성과 객관성은 그러나 끊임 없이 추구하지만 닿을 수 없는 무한 수열과 같은 것. 분명한 것은, 그렇다고 해서 추구를 포기한다면, 시민의 눈과 귀가 조장된 정보에 의해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자명한 이치를 자의식의 품으로 껴안는 것뿐이었다.

현대사는 그같은 자의식을 가로막고 저널을 선전의 도구로 활용하고자 하는 욕망과, 그 욕망에 대항한 의식의 싸움을 기록하고 있다. 첫번째 적은 파시즘이었고, 두번째 적은, 이제 본격적으로 현시되는 자본, 좌파 정부라 일컬어지는 권력조차 어쩌지 못하는, 바로 그 무소불위의 자본 권력이다.

한편, 파시즘과 자본의 욕망에 대항하는 대신 손쉽게 타협하는 저널들도 줄을 이었다. 그들은 그에 대한 대가로 스스로 권력이 됐다. 시민 사회는 어렵지 않게 저널조차 권력이 됐다는 사실을 체감했다. "기자 새끼들"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저널은 사회악으로 일반화됐다. 이것은 또한 자본이 저널을 무력화시키는 유용한 알리바이가 됐다. 그들이 자신들의 이해에 반했을 때, 자본은 저널의 권력적 속성을 편리하게 상기한다. 그리고 마치 대단한 힘에 대항하듯, 취재 거부와 광고 취소라는 일련의 '조치'를 취한다. 이제 갑과 을이 순식간에 뒤바뀐다. 자본은 투사가 되고, 저널은 독재자가 되는 것이다.

내가 지난달까지 몸 담았던 영화주간지 FILM2.0이 최근 대규모 영화 자본의 심기를 거슬러 시범 케이스가 됐다. 그들이 원하는 기사를 그들이 원하는 시점에 쓰지 않은 죄다. 그들이 원하지 않은 기사를 그들이 원하지 않은 시점에 쓴 죄다. 시범 케이스가 된 게 어디 한 두번이 아니니, 나는 FILM2.0의 심지 깊은 편집장과 기자들이 이번 일 또한 용감하게 맞서는 데 대해 적잖게 자랑스럽다.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자본의 저널리즘 길들이기를 우리 스스로 객관과 공정이라는 무한 수열을 푸는 것만큼 골치 아프게 맞서고 있는 그들이 자랑스럽다.

경쟁지를 자처하는 영화  잡지의 편집장이 자신들의 광고 수주액이 경쟁지보다 많다고 편집장의 글을 통해 버젓이 자랑하는 처연한 반문화의 시대다. 한국영화 수호를 외치는 안티 할리우드의 투사들이 힘센 저널에 고개 숙이고 힘 약한 저널을 줄 세우는 데도 죄의식조차 못느끼는, 징그러운 모순의 시대다. 그러니 어려운 싸움이다. 동지가 없다. 독자들 밖에는.

무책임하게 편집권을 내팽개치고 뛰쳐 나온 선배의 입장에서 할 말은 많지 않다. 다만, 어려움을 꿋꿋하게 버텨온, 나의 가난한 후배 기자들이 그 가난한 스피릿으로, 씨네 21과 키노가 초창기에 애써 증명하려 했던 그것, 영화 저널이 자본의 이익에만 복무하는 매체가 아님을 이제사 증명해 보이길 감히 기대한다.

우리는 영화가 여전히 예술임을 순진하게 외쳐온 많은 작가들을 상기한다. 그들은 스러졌지만, 작품은 남았다. 라이프는 폐간했지만 많은 이들이 로버트 카파의 전설적인 사진을 기억하는 것처럼. 지금, 예술을 빙자해 배를 채우려는 사이비들을 비웃고 기억 속에 남는 일도 그리 나쁘진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한가지는 안다. 불명예는 결국 저들의 몫으로 남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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