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난 척 하는 이와 비웃는 이
내 느자구 없는 자뻑은 가끔 그런 식의 유머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을 당혹 속에 몰아 넣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대학원 중간 시험을 위한 내 나름의 족보를 만들어 공유한 적이 있었는데 술자리에서 학우들의 칭찬을 듣고는 잔뜩 우쭐해진 표정으로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대체로 저와 같은 학습능력은 어느 정도는 타고 났다고 보는 게 적절한 것 같아요.” 주변 사람들의 표정이 한 순간 뜨악해졌던 것은 물론이다.
그러나 나를 잘 아는 이들은 곧잘 웃는다. 대체로 호탕하게 웃어주는 친구들은, 대부분 그들 스스로도 자뻑에서는 나와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경우가 많다(나는 타인을 깎아내리는 유머를 구사하는 친구들보다 스스로를 고양시키며 비웃음을 자처하는 친구들이 훨씬 좋다). 특히 방송, 언론계 지인들과 함께 운영중인 팀블로그 ‘3M흥업’의 멤버들은 술자리 때마다 우리의 블로그를 자찬하는 ‘공동 자뻑’의 파노라마를 펼쳐 놓곤 하는데, 따로 안주가 필요 없을 정도다.
내가 이렇게 자뻑 유머를 생활화하고 사는 데는 나름의 배경이 있다. 칭찬 듣는 일이 참 드물었던 어린 시절, 내가 유일하게 칭찬을 들을 수 있는 기회는 고작 학교에서 드물게 상을 받아올 때가 거의 전부였다. 얼마나 칭찬이 고팠으면 산에 삐라를 주으러 다닌 적도 있었다(당시엔 삐라를 주워 학교에 내면 반공상을 줬다). 어쨌든 칭찬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자뻑이라는 대안을 만들었고, 처음에는 재수 없어 하던 친구들도 슬슬 그것을 하나의 유머 코드로 받아들여주기 시작했다. 자뻑은 일석이조의 소통 방식이 됐다. 나는 내 자랑을 함으로써 카타르시스를 얻고, 친구들은 웃음을 얻었으니까. 헌데 이 것도 자꾸 하다 보면 진짜 내가 잘난 녀석인 줄 알고 은근한 질투심에 사로 잡히는 어처구니 없는 친구들도 생기는 것 같았다. 물론, 어린 시절 얘기다.
그래서인지 나는 <미쓰 홍당무>의
아무리 겸양이 미덕이라지만, 나는 위선적이고 수사에 그치는 겸손보다는 차라리 솔직한 자뻑이 훨씬 인간 관계를 윤택하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 편이다. 게다가 가끔 스스로의 진보를 견인하기도 한다. 최근 3M흥업 멤버들이 야심 차게 진행중인 단편 영화 제작 지원 프로젝트도, 실은 그 같은 자뻑의 소산이다. 어차피 잘 난 우리들이지만, 그 잘남을 활용해 다른 이의 잘난 티를 구경해보자는 심산이다. 이런 자뻑, 나름 귀엽고 호혜적이지 아니한가. 안 그래도 우울한 일만 넘쳐나는 세상이다. 잔뜩 주눅 들어있는 표정들이 너무 많다. 우리 모두 적극적으로 잘난 티 좀 내고 살자. 아니, 좀 웃게 잘 난 척이라도 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