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 늦겨울에 나는 외가 친척들이 살고 있는 광주를 다녀 왔다. 그 때 나는 12살이었고, 사촌 형들은 시내에서 자취를 하고 있었다. 한 겨울의 광주는, 서울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지만 사람들은 정이 넘쳤다. "워메~서울 도련님이 광주 나들이 오셨당가!" 이모와 그의 친구들은 내 엉덩이를 함부로 두드리며 걸쭉한 남도 사투리로 농을 일삼았다. 서울에서 어쭙잖게 깍쟁이 기질만 익혀온 나로서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나는 그 살가움의 진심을 짐작할 수 없을 정도로 어리진 않았다. 이모의 아들은 시내 극장에서 용이 하늘에서 막 싸우는 영화를 보여줬다. 뒤이어 동시상영된 영화는 살빛이 난무하는 에로영화였는데, 그때까지도 난 사촌형이 왜 나를 데리고 극장에 왔는지 눈치채지 못했다.

광주는 내게 외가가 있는 동네이고, 고단한 일상에서도 큰 소리로 농을 던지는 사람들이 사는 고장으로 각인됐다. 그해 늦봄, 이런 나의 기억이 거짓이었다는 듯, 신문과 방송이 살풍경의 광주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곳이 폐쇄되었으며(사실은 고립이었지만), 폭도들이 날뛰는 지옥으로 변했다는 거다. 신문에는 희뿌연 연기 속에 얼굴을 가린 사람들이 돌과 각목을 들고 있는 사진이 실렸다. 폭도들이 총을 탈취해 광주를 점령했다는 소식이 뒤이었다. 순간, 사촌형들과 이모가 떠올랐다. 그들이 폭도였단 말인가!

세월이 조금 지난 뒤 나는 말을 아끼는 사촌형들로부터 아슴프레하게나마 그날의 진실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는 그들의 증언에 흔쾌하게 귀를 열지는 않았다. 신문과 방송이 감히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할 리가 없다고 철썩 같이 믿었고, 머리 벗겨진 대통령 각하께서 무슨 깡패 새끼도 아니고, 자기 국민을 상대로 마구 총질을 해댔을 리도 없다고 믿고 싶었다. 그냥 그렇게 믿어 버렸다. 대학에 입학하고, 나는 교정에서 사진전을 통해 그날의 참혹함을 목격했다. 곤봉에 맞아 도저히 형체를 알아볼 수 없도록 으깨어진 얼굴, 총에 맞아 반쪽이 날아가 버린 얼굴...그렇게 죽거나 다친 무고한 시민이 수 천명에 달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80-90년대를 살아온 지식인들에게 80년 5월의 광주는 헤어날 수 없는 가위눌림이었고, 씻을 수 없는 원죄였다. 광주에 대한 그들의 거대한 부채감은, 87년 절정을 이룬 학생운동의 기폭제가 됐으며, 문인이나 예술가들도 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그들의 발언은 조심스러웠다. 함부로 광주를 말할 수 없었던 정치적 환경도 그랬거니와  광주를 당당하게 불러내기 어려울 정도로 내재된 죄의식이 컸기 때문이기도 했던 것 같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광주로부터 시작해 한국사회의 모순을 고발하는 89년 <오! 꿈의 나라>가 대학가를 돌며 상영됐을 때, 나는 흥분했다. 경찰이 이 영화의 상영을 막기 위해 최루탄을 쏘며 학교로 쳐들어올 때 나는 그들을 향해 돌을 던졌다. 하지만 정작 이 영화를 보진 못했다. 장선우가 96년작 <꽃잎>에 이르러서야 어린 미친년을 통해 그날의 상처를 핥았다. 이창동은 99년작 <박하사탕>을 통해 상처를 불러 냈다. 플래시 백을 통해 현재로부터 80년 광주까지 나아가는 이 영화는, 한국사회에서 보편과 상식, 인간성을 가장 적나라하게 파괴시킨 계기로써의 광주를 회고한다. 나는 역시 흥분했지만, 왠지 뒤가 구렸다. 이건...먹물들의 자조가 아닌가.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나았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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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오늘 시사회를 통해 <화려한 휴가>를 봤다. 한 여름에 개봉하는 블록버스터로 잔뜩 뻥뛰기가 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날의 상처를 27년만에 처음으로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나는 내내 가슴이 콩닥거렸다. 그래서 나는 신파적 설정이니, 대중영화로서의 관습이니 하는 얘기들을 이 영화에다 함부로 갖다 붙일 수 없다는 것을 먼저 고백해야 겠다. 그저 80년 광주가 이렇게 살아서 스크린 위에 '비극의 스펙터클'로 재연되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직업적 평정심을 잃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도 최대한 정신을 차리고 말한다면 <화려한 휴가>는 5월 광주를 21세기 대중 앞에 불러 내는 데 있어, 지금까지 가장 '비먹물적'(이런 표현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인 전략을 택한 영화다. 인물들은 정형화돼 있으며, 실화에 근거하고는 있지만 듬직한 택시 기사 청년(김상경)과 수더분하고 매력적인 간호사(이요원)의 멜로 라인을 중심에 둔 드라마 역시 매우 상업 영화적이다. 그럼에도 나는, 계엄군이 이들을 향해 곤봉을 휘두르고, 총기를 난사하는 장면으로도 충분히 눈물이 난다. 그럼에도 나는, 시민군이 끝까지 도청을 사수하려다 하나씩 죽어가는 장면에서 눈물을 멈출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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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운 점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영화 속의 그 위대한 광주 시민들은, 유독 주요 인물들만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이걸 흥행을 염두에 둔 대중 영화로서 보편성을 얻어내기 위한 설정이라고 쳐도, 당대 혁명적 광주 시민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지대한 요소라고 할 수 있는 언어(사투리)의 변조는, 나에겐 광주 정신에 대한 일말의 모욕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용서가 되는 이유가 있다. 얼마전 <화려한 휴가>의 예고편이 극장에서 상영되는데 20대 초반의 두 젊은이가 하는 얘기를 엿들었다. "저거 뭐야? <실미도> 같은거야?" 누군가에겐 씻을 수 없는 원죄였던 27년 전의 그 사건이 시나브로 잊혀지고 있다. 그래서일까? 영화의 마지막, 이요원이 연기한 젊은 간호사는 차를 타고 다니며 확성기로 절규한다. "시민 여러분, 우리를 잊지 말아주십시오." 그래서, 나는 이 영화의 대박을 기원한다. <태극기 휘날리며>와 <실미도> 뿐 아니라, <화려한 휴가>도 대박이 나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광주를 제대로 기억에 담았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그래야만, 한국사회가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저력이 있는 사회로 거듭났음이 입증되는 것이다. 나는 자꾸만 그렇게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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