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 동네 친구들끼리 나무로 만든 총을 가지고 놀았다. 고무줄을 탄환 삼은 이 총을 쏘며 골목길을 휘저으면 내가 마치 람보라도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느 편이 돼도 아이들 각자는 스스로 정의의 사도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리의 시야에 복잡한 골목길의 전봇대는 멋진 은폐 엄폐의 폼을 잡기 위한 더 없이 훌륭한 소품으로 보였고, 가끔 지나가며 “시끄럽다” 외치는 어른들의 힐난조차 전장의 폭탄 소리로 들렸다.
<신기전>을 봤다. 시사회 무대 인사에 나서 "중국의 이어도 시비가 다행으로 여겨진다"고 한 주연배우
민족 의식을 탓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그 민족 의식을 애들 장난처럼 포장하는 게 딱하다는 얘기다. 나라 밖 사람들이 본다면 그 유치함에 실소를 머금게 될만한 영화의 설정은 스스로 약소국의 처지임을 자탄하고 상상의 복수전을 펼치고 있는 어느 왕따의 우울증적 환상처럼 보인다. 남의 나라의 천박한 역사 인식을 준엄하게 꾸짖는 길이 같이 천박해지는 건 아닐 것이다. 불행하게도 이 영화에서 내가 얻은 건 마스터베이션 이후 남는 듯한 공허함 뿐이었다.
한편으로는 아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영화의 제작자인
그러나 이런 영웅주의 역사관이 쉽게 빠질 수 있는 맹점은, 열강으로부터 자존을 지켜 온 역사에 대한 자긍을 넘어 식민지 수탈을 통해 배를 불렸던 제국주의 열강과의 수평적 자리 바꿈을 은근히 꿈꾼다는 데 있다. 압도적인 군사적 힘을 갖는다는 것이 단순히 방어적 의미에 그칠 수 없음을 역사는 말해준다. <신기전>의 가정법 과거완료적 역사관은 신무기 하나로 명과 조선의 위치를 시침 뚝 떼고 바꿔 버린다. 그렇다면 비슷한 맥락으로, 이 영화의 제작진은 북한의 핵 개발 시도에 대해선 어떤 입장일까, 궁금해 진다. 혹은 미국의 쇠고기 수입 압력에 대해선?
편리하게 역사로 숨고, 더 편리하게 가정법을 설정하는 것은 이런 복잡한 문제에 대한 직설법을 회피하고, 대중에게 당장의 가상 오르가슴을 선사하겠다는 얄팍한 의도를 숨기기 위해서다. 사실 그게 대중 오락 영화가 할 일이 아니냐고 반문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나는 한국이 적어도 <미이라 3>같은 한심한 영화를 만들지 않는 나라가 되기를 원할 뿐이니까.
역사에는 가정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이든 필연적 동기에 의해 발생하기 때문에 가정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팩션에서만큼은 어느 정도의 가정법이 허용된다. 이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에 의해 역사적 사실의 당대는 물론 현재적 의미까지 곱씹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고 현재의 집단 무의식에 무작정 편승해 역사적 회한이라는 거대한 유산마저 바꿔 놓고 낄낄댄다면, 그건 그냥 동네 아이들끼리 즐기는 고무줄 총 놀이나 다름 없어 진다. 그러고 있기에 영화는 너무 비싼 작업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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