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이라 3' 이긴 자가 여자를 갖는다?

영화 이야기 2008. 8. 10. 22:26 Posted by cinemAgora

나는 <미이라> 시리즈를 볼 때마다 한숨 나온다. 아무 생각 없이 즐기자고 만든 팝콘 무비에 불과하지만, <미이라> 시리즈는 '엄청난 볼거리와 스펙터클'이라는 미끼로 관객을 낚아 놓고는 다른 문화권의 역사적 아이콘을 손쉽게 악마화해 버리는 짓거리로 볼거리 제공의 임무를 완수하는, 썩어 빠진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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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 아프지만, 간단하게 이 시리즈의 내용을 복기해 보자. 대결 구도는 매우 단순하다. 말하자면, 릭 오커넬 가족 대 부활한 미이라다. 봉인됐던 미이라가 다시 깨어나 미완의 욕망을 채우려 들고, 오커넬은 위기에 빠진 세상을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한다. 1편과 2편에서 그것은 고대 이집트의 이모텝과 스콜피온 킹이었고, 7년만에 나온 속편인 3편에 이르러 오커넬 가족의 악마 찾기는 고대 중국으로 옮겨 간다. 진시황과 병마용갱에서 모티브를 얻은 게 분명해 보이는 3편에서 이모텝의 자리는 '황제 한'으로 대체됐다.

그 외에는 사실상 전편의 답습이다. 다만, 속편의 알리바이를 위해 오커넬 부부 사이의 아들인 알렉스가, 아버지만큼 허랑방탕한 어른이 됐다는 설정을 추가했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는 남의 나라 유적을 괜히 발굴하다가 결국 황제 한을 깨우게 되는 단초를 제공하지만, 자신의 행동에 책임을 지기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운다. 영화는 매우 상투적이게도, 여기에 가족애 회복의 플롯을 살짝 얹어 놓았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싸우다 소원했던 관계를 푼다는 둥 어쩌고저쩌고. 이 과정도 아버지가 죽을 위기를 맞으니 만사형통이다.

이 정도면 뭔가 약하다는 것쯤은 제작진도 모르지 않았을 터, 두 명의 동양 여성 캐릭터가 추가되니, 바로 황제 한에게 저주를 씌운 뒤 그가 깨어나지 않도록 수 천 년간 감시해왔던 여성 주술사 지주안과 그의 딸 린이다. 전편들과 마찬가지로 깨어난 이들의 못다 핀 꽃 한송이가 갈등의 씨앗이렸다. 한과 지주안, 그리고 지주안을 사랑한 죄로 능지처참된 한의 심복 사이의 수천년 묵은 삼각 관계가, (대단하게도!) 세상을 위기에 빠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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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지주안이 그 업보를 치르느라 바쁠 때, 그리고 오커넬 부부가 철 없는 아들 녀석이 저지른 사고를 수습하느라 동분서주할 때, 알렉스는 어여쁘고 신비롭고, 게다가 용감하기까지 한 동양 여인 린에 대한 작업 전선에 바쁘다. 이 멜로 라인을 조금 비틀어 본다면, 알렉스에게 린은 마치 이 싸움의 전리품과도 같다.

때마침 황제 한은 방해자들 앞에서 자신이 린을 갖겠다는 의욕을 분명히 함으로써, 열혈 청년 알렉스의 전의(또는 리비도?)를 한껏 자극한다. 알렉스로선 자신의 발굴 욕망이 빚어낸 결과에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 말고도 반드시 황제 한을 물리쳐야 할 또 하나의 결정적인 이유가 추가된 셈이다. 바야흐로 두 인물은 한 여자를 사이에 둔 경쟁 관계에 서게 된다.

이 과정에서 영화는 굳이 린에게 성적 욕망의 대상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다. 앞뒤 안 가리고 남의 유물에 달려들 듯, 예쁜 여자만 보면 정신 못 차리고 주먹질을 불사하는 알렉스에게 새로 나타난 린은 특별한 대상이라기 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일 뿐이다. 린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 대한 이해와 성찰이나 여성을 바라보는 단순무식한 시선을 교정한다든가, 하는 짓 따위는 그에게 시간 낭비일 뿐이다. 어서 놈을 처치해  그녀를 차지해야 한다. 이 젊은 마초는, 머리가 세 개나 있는 용으로 형상화된, 동양의 사악한 남근을 물리침으로써 자신의, 또는 서구인이 가진 성적 능력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싶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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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극히 상투적인 오락영화를 이렇게 오버해서 받아들이는 이유는 그리 낯설지 않은 현실의 풍경이 연상되기 때문이다. 힘 센 나라의 남자가 힘 약한 나라의 여자를 취하는 현실 말이다. 중심부의 미국 남자가 준중심부의 한국 여자를 취하고, 준중심부의 한국 남자가 주변부의 제 3세계 여자를 취하는, 그 남근의 국제 정치학!

시장 확대를 위해 동양을 끌어들이느라 분주한 할리우드 상업주의에 대단한 정치적 올바름을 기대한다는 것은 애당초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렇다 하더라도 다른 나라의 문화적 유산을 자신들에게 익숙한 선과 악의 기독교적 이분법으로 가르고 소유욕(또는 점령욕망)을 로맨스로 포장하는 제국주의적 시선을 재차 확인한다는 게 썩 유쾌한 일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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