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운 감독의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지난주 극장가에서 전체 스크린의 절반 가까이에서 상영됐는데요, 그래서 또 다시 스크린 독과점 논란이 고개를 들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고개를 들어야 당연한 노릇인데 '조짐'만 있는 것도 한심해 보입니다.) 한국영화가 침체에서 벗어나는 건 좋지만, 극장가의 다양성을 침해하거나 작은 영화들의 생존을 위협하면서까지 흥행하는 건 썩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을 하고 싶습니다. 스크린 독과점에 대한 참으로 지루한, 그러나 꼭 필요한 문제제기, 이번엔 문답으로 풀어 봅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일단 예상했던대로 압도적인 흥행세를 기록했죠?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박스오피스에 따르면 <놈놈놈>은 지난 주말 954개 스크린에서 상영돼서 첫 주말 215만 명의 관객을 동원한 것으로 집계됐습니다. 이 정도면 상당히 폭발적인 흥행세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일단 오프닝 스코어로는 <괴물>과 <디 워>에 이은 세 번째 규모입니다.

954개 스크린이라면 어느 정도로 많은건가요?

일단 954개라는 숫자에는 <놈놈놈>만 튼 상영관과 다른 영화와 교차 상영한 상영관을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현재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연동돼 있는 전국 스크린수는 총 2,054개입니다. 그러니까 전국 상영관의 50%에 육박하는 스크린수라고 할 수 있겠죠. 쉽게 말해 지난 주말 전국 극장가에선 두 개 중 한 개 상영관에서 이 영화를 틀었다는 얘기가 됩니다.

그렇게 많은 스크린수를 확보하게 된 것은 일단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감이 크다는 얘기 아닐까요?

극장 입장에선 당연히 장사가 될만한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는 게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른바 메이저 배급사들이 멀티플렉스 체인망을 함께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배급사의 흥행 전략적 차원에서 상당수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상황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습니다. <놈놈놈>의 경우엔, 워낙 많은 제작비를 들어간 영화라 손익 분기점이 700만 가까이 되기 때문에 단기간에 대규모 관객 동원의 필요성이 클 수밖에 없는 작품이고, 이에 따라 스크린을 과도하게 확보하게 된 결과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스크린 독과점 논란은 2년전에 <괴물> 상영 때도 불거졌던 것으로 기억하는데요. 이번에는 그때만큼 논란이 거세지는 않은 것 같아요.

일단 올 상반기 한국영화가 극소수의 흥행작을 빼고는 거의 다 참패하는 등 극도의 부진을 보였다는 점에서 한국영화를 살려야 하는 게 아니냐는 분위기가 영화계 안팎에서 일고 있고, 언론도 이런 사정을 감안해 특별히 스크린 독과점에 가시 돋친 시선을 보내지 않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한국영화가 위기 국면을 탈출하려는 노력이 곧 스크린 독과점을 정당화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게다가 2년 전 스크린 독과점 논란을 불러 일으켰던 <괴물>이 당시 600여 개 스크린을 확보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오히려 <놈놈놈>의 스크린 독과점 상황이 객관적으로도 더 심각하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상황이 한국영화에만 해당되는 것은 아니죠?

사용자 삽입 이미지
물론 그렇죠. 지난해 개봉했던 <스파이더맨 3>나 <캐리비언의 해적 3: 세상의 끝에서> <트랜스 포머> 같은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의 경우엔 <괴물>의 스크린 수를 한참 웃도는 규모의 개봉 스크린을 확보한 바 있습니다. 올해만 해도 지난 5월 개봉한 <인디애나 존스 4>가 680개 스크린에서 개봉했습니다. 이런 추이를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한국영화가 과도한 스크린수를 확보한 배급 방식을 만들어내고, 그런 방식을 할리우드 영화가 답습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형 흥행 전략이라는 걸 한국영화 스스로 할리우드에 가르쳐 준 셈이 됐는데, 이러다 보니까 흥행도 영화 자체의 힘보다는 누가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느냐의 세 싸움으로 기울어지는 현상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습니다.


스크린 독과점, 사실 뚜렷한 기준이란 게 모호한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가 독과점이라고 볼 수 있는건가요?

공정거래법상으로 1개 사업자가 50% 이상의 시장 점유율을 확보하게 되면 독과점으로 보게 됩니다. <놈놈놈>의 경우엔 일단 문제되는 게 시장 점유율이 아니라 스크린수이고, 또 그것이 수치상으로는 50%를 넘지 않기 때문에 법적으로 독과점이라고 재단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영화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해 전체 스크린의 30% 이상을 확보하면 독과점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대체로 가장 많은 스크린을 확보한 영화가 멀티플렉스의 가장 큰 상영관을 확보하게 되기 때문에 30% 정도의 스크린 점유율이라 하더라도 좌석 점유율로만 따지면 50%를 넘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미국이나 일본 같은 영상 선진국에서도 30% 이상의 스크린을 확보하는 경우는 사실상 없다고 할 수 있는데요, 유독 한국 극장가에서만 과도한 스크린을 확보하는 방식의 흥행 전략이 보편화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흥행 전략이 보편화됐는지도 좀 따져봐야 될 것 같은데요.

직접적으로는, 부가 판권 시장이 사실상 궤멸되고 극장 수입에만 지나치게 의존하는 수익구조에 기인합니다. DVD 등의 홈비디오 유통을 통한 수익에서 크게 기대할 게 없기 때문에 극장 개봉 때 단기간에 투자금을 회수하려는 경향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되다 보니까 힘이 센 배급사에서 개봉하는 영화들이 더 많은 스크린을 확보하게 되고, 그렇지 못한 영화들의 경우엔 아예 관객들과 만나는 기회가 원천 차단되는, 흥행의 부익부 빈익빈, 이른바 양극화 현상이 커지고 있는 것이죠. 이것은 관객들이 다양한 영화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그만큼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해결책이 있을까요?

영화계 안팎에서 스크린 독과점의 폐해를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아주 없지는 않습니다. 정치권 일각에선 스크린 독과점을 규제하는 법안도 검토된 적이 있었죠. 그러나 현재 스크린 쿼터가 절반으로 축소된 상황인데다 극장과 배급사, 제작사들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해결이 쉽지 않은 게 현실입니다. 특별한 강제적 견제 장치가 없는 이상, 지금으로선 영화계 관련 종사자들이 영화 문화의 다양성이라는 대의를 공유하고, 스크린 독과점을 자발적으로 자제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물론 자발적 자제는 말이 쉽지 실효성이 크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시장 경제가 처음부터 생태계와 같은 자발적인 조절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굳이 공정거래법이 따로 존재할 이유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아무튼 스크린 독과점은 결국 영화인들의 발목을 잡는 부메랑으로 돌아옵니다. 지금 한국영화의 침체 국면은 그 부메랑이 마침내 돌아왔기 때문에 생긴 결과입니다. 궁극적으로, 독과점에 대한 법적 제도적 개선 장치를 마련하지 않는 한 한국영화는 장기 침체의 늪에 빠지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입니다. 왜 할리우드가 반세기도 전에 반트러스트법을 만들어 독과점을 금지했는지 상기해야 합니다.

,
BLOG main image
3 M 興 業 (흥 UP)
영화, 음악, 방송 등 대중 문화의 틀로 세상 보기, 무해한 편견과 유익한 욕망의 해방구
by cinemAgora

카테고리

분류 전체보기 (1187)
찌질스(zzizzls) (3)
영화 이야기 (702)
음악 이야기 (34)
TV 이야기 (29)
별별 이야기 (122)
사람 이야기 (13)
3M 푸로덕숀 (156)
애경's 3M+1W (52)
민섭's 3M+α (27)
늙은소's 다락방 (26)
라디오걸's 통신소 (1)
진영's 연예백과사전 (4)
순탁's 뮤직라이프 (10)
수빈's 감성홀 (8)

달력

«   2024/04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TNM Media textcube get rss DNS Powered by DNSEver.com

최근에 올라온 글

최근에 달린 댓글

최근에 받은 트랙백

3 M 興 業 (흥 UP)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attertools / Supported by TNM Media
Copyright by cinemAgora [ http://www.ringblog.com ]. All rights reserved.

Tattertools 티엔엠미디어 DesignMyself!
cinemAgora's Blog is powered by Textcube. Designed by Qwer999. Supported by TNM M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