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시작은 슈퍼주니어와 SS501 팬클럽 회원들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들이 애국가를 부르기 시작하자 다른 팬클럽들이 동조하기 시작해 이내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은 5만 여 명의 팬들이 한 목소리로 4절까지 부르는 애국가로 가득 찼다.
이날 모인 대부분의 팬들은 10대인 중고생들이다. 기자의 중고교 시절을 회상해보면 애국가는 조회 시간에나 부르던 따분한 노래였다. 행여 무슨 날이라도 돼 4절까지 불러야하는 건 일종의 악몽이기도 했다. 그런데 자신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을 보기 위해 드림콘서트에 모인 5만 여명의 팬들은 왜 애국가를 부른 것일까.
지난 95년 시작돼 올해로 14회를 맞은 드림콘서트는 가요계 최대 행사 가운데 하나다. 가요계 최대 단체인 음반제작자협회가 주최하는 만큼 매년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하는 데 올해 역시 동방신기, 원더걸스, SS501,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에픽하이, 쥬얼리 등 최고들이 한 데 모였다.
드림콘서트는 팬들에게도 중요한 행사다. 인기 가수들이 출연하는 만큼 그들의 팬클럽도 총출동하는 데 때론 팬클럽 사이의 반목이 다소 지나쳐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기도 한다. 올해 역시 ‘소녀시대 침묵 사건’(동방신기, 슈퍼주니어, SS501의 팬클럽 등이 소녀시대가 공연을 하는 10분 동안 침묵을 지킨 일)에서 이런 문제점이 드러났다.
드림콘서트의 또 한 가지 특징은 본 공연 시작에 앞서 팬들이 주도하는 이벤트가 있다는 점. 매년 드림콘서트마다 팬클럽들끼리 협의해 이벤트를 준비해 드림콘서트의 시작을 알리며 출연 가수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주곤 했는데 올해 공연에서 준비된 이벤트는 애국가 제창이었다.
드림콘서트 현장에서 만난 팬클럽 관계자들을 통해 전해들은 준비 과정은 매우 치열하고 꼼꼼했다. 애초 그들이 생각한 것은 5만 여 명의 팬들이 촛불에 불을 밝히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6시 50분이면 아직 훤할 때라 촛불을 켜기에 너무 이른 시간이었고 준비 과정도 수월치 않았다. 촛불을 대신할만한 무언가를 찾는 과정에서 애국가와 아리랑을 함께 부르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드림콘서트에 참여하는 팬클럽들은 각자의 사이트를 통해 이 사실을 알렸다. 이들 팬클럽 사이트에 게재된 이벤트 공고문을 보면 그들이 왜 애국가를 불렀는지가 더욱 명확해진다.
“현재, 공권력을 이용해 국민들에게 위협을 주고 말로만 사과하는 정부입니다. 나라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나라를 국민을 죽이려고 합니다. 우리나라를 우리 국민을 사랑하는 마음을 담아서 애국가, 아리랑을 부릅시다. 이것은 드림콘서트에 참여하는 모든 팬덤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작은 힘도 큰 힘이 될 수 있습니다.”
매스컴과 공권력의 눈과 귀가 서울 시청 앞 광장을 중심으로 한 도심 촛불집회로 집중돼 있는 동안 5만 여 명의 10대 팬들은 이렇게 잠실 주경기장에서 그들만의 촛불집회를 이어갔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비록 애국가를 부르는 것뿐이었지만(아쉽게도 아리랑은 함께 부르지 않았다), 그 울림은 충분히 웅장하고 또 진지했다.
많은 이들이 요즘 10대 팬클럽 회원들의 극성스런 스타 사랑에 문제가 있다고 얘기한다. 그들만의 팬덤 문화를 하나의 문화로 받아들이기보단 ‘연예인에 미친 빠순이들’이라 비하하는 이들도 많다. 하긴 얼마 전 가수 신해철은 이번 드림콘서트에 참여한 팬들을 ‘저질관객’이라며 원색적으로 비난하기도 했다. 이런 그들이 애국가를 불렀다. 한 목소리로 4절까지 애국가를 부르며 국가와 학교가 그렇게도 강조하는 나라사랑을 마음으로 외쳤다.
80년 5월 광주에서 울려 퍼진 애국가는 시민들에 대한 계엄군의 총격 개시 신호였다고 한다. 2008년 6월 잠실 주경기장에서 울려 퍼진 애국가는 과연 누구에게 무엇을 명령하는 신호였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