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수요일마다 김학도를 만난다. "청년학도 김학돕니다"라는 말로 자신을 소개하던 그 개그맨 김학도 말이다. 요즘 이 사람 뭐하나 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섭섭해할 게 분명하다. 그는 나와 함께 부산 MBC 영화 정보 프로그램 시네마월드의 MC를 맡고
있으며 라디오 DJ까지 겸하느라 나름 바쁜 방송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어쨌든, 나보다 늘 먼저 분장실에 도착해 있는 그는, 멀리서 걸어오는 내 기척을 귀신 같이 눈치채고, 거대한 목청으로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최~강의 최광희 기자니임!" 그리곤 늘 어머니가 정성스레 싸주신 과일과 떡을 가져와 아침을 챙기지 못한
분장실 스탭들의 영양을 돌본다.

쉬지 않는 입, 과잉의 에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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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도는 늘 과잉의 에너지로 엄청난 양의 수다를 떤다. 방송 직전까지 입이 쉬는 일이 거의 없다. 내가 개인적으로 알고 지내는 유이한 개그맨 가운데 한명인 그를 보며, 개그맨들은 평소의 생활이 유머의 점철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가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짐작컨대 그렇다. TV 카메라에 불이 켜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이 세상에서 가장 밝은 목소리와 얼굴 표정으로 돌변해야 하는 일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늘 스스로의 기분을 업시킨 상태로 유지해야 하는 것인데, 그게 도대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처럼 보이진 않는 것이다. 언젠가 내가 슬쩍 그 비결을 물었더니, 그는 말했다. "아무래도 신끼 같은 게 있는 것 같아요, 개그맨들은." 나는 그를 보며 그 말을 믿게 됐다.

그가 요즘 탐독하는 책, 먼나라 이웃나라
봄 개편 이후 교통방송에서 라디오 디제이 일을 맡게 되면서 그는 요즘 부쩍 공부를 많이 한다. 요즘은 만화로 된 세계사 책 '먼나라 이웃나라'를 탐독하고 있는데, 분장실에 내가 오면 어김 없이 그날 배운 지식으로 날 테스트한다. "최 기자님, 프랑스 혁명이 몇 년에 일어난 줄 알아요? 배운 사람이니까 그 정도는 알겠지?" 나는 틀리기 일쑤고, 그러면 그의 표정은 더욱 의기양양해진다. 어쨌든 그런 모습이 보기 좋다. 어쭙지 않게도 하워드 진의 미국민중사를 사 놓고 6개월 째 1권도 못떼고 있는 나에 비해 어떤 지식이든, 어떤 교양이든 열려 있는 자세로 수용할 줄 아는 그가
훨씬 문화적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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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화를 마친 그와 나는 자주 KTX를 타고 함께 서울로 올라온다. 꼴에 혼자 기차를 타도 꼭 할인해서 5만원짜리 특실 티켓을 사는 나이지만, 그와 함께일 때는 언제나 3만원짜리 일반석이다. 역방향일 때도 많다. "특실은 불편해요, 일반실이 책 읽기도 좋고..." 기차 안에서 그의 행동 패턴은 언제나 일정하다.
약간의 수다, 그리고 DMB를 켜 뉴스 보기, 먼나라 이웃나라 읽기, 그리고 잠.
 
두 사람이 길을 가도 그 안에 스승이 있다고 했던가.
김학도에게서 나는 에너지를 배운다. 지칠줄 모르는 에너지. 너무 많아서 흘러 넘치는 에너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들기도, 힘 나게도 만드는 에너지.

끼리끼리 독점은 방송가의 정글 법칙?
그런 그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인지상정일 것이다. 청년학도 김학도는, 그러나 최근 개그맨 전성시대의 수혜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어디나 부익부 빈익빈이고 어디나 양극화지만 그 판에서도 그런 정글의 법칙은
예외가 아닌가 보다.

열차 안에서 가지고 있던 MP3를 꺼내 진담반 농담반으로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랬더니 그 역시 진담과 농담을 섞어 줄줄줄 말을 한다. 듣자하니 뼈가 있다.
제법 가시 돋힌 뼈다. 시청률을 명분 삼은 연예 권력의 철옹성이 그에게도 남 모를 상처를 안겼나 보다. 어쨌든, 그를 통해서나마 방송가의 또 다른 정서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은 아주 흥미로운 일이었다.

개그의 혁명을 꿈꾸다
이게 만약 인터넷을 통해 유통돼 회자되면 그가 곤란해질 수도 있겠다 싶었으나, 그는 별로 개의치 않아 했다. 부디 그의 발언이 하이 코미디로 받아들여질 정도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수준이 열려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의 동의를 얻어 인터뷰 클립을 올린다.
즐청하시길.

(소음이 많은 열차 안에서 MP3 플레이어로 녹음한 클립이라 상태가 썩 좋지는 않습니다. 파일 변환 과정에서 (의도치 않았음에도) 음성이 약간 변조됐으며 특정 연예인의 실명이 거론된 부분은 묵음 처리했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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