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생순> 대박날 것 같은 예감

영화 이야기 2008. 1. 1. 11:16 Posted by cinemAgora

이른바 '대박'이 난 영화를 시사회를 통해 미리 볼 때면 늘 비슷한 종류의 느낌을 받곤 했다. <살인의 추억>을 볼 때도, <타짜><미녀는 괴로워><웰컴 투 동막골><괴물><화려한 휴가>를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아이구야, 대중 영화로 이 정도면 잘 만들었다'라는 느낌 뒤에 '흠, 이 영화 되겠는걸?' 하는 예감이 불현듯 스친다. 내 경우, '흠, 이 영화는 안되겠는걸' 하는 예감은 적지 않게 틀렸다(<가문의 영광><색즉시공><사랑> 등이 그 경우다). 그러나 적어도 '되겠는걸' 하는 예감은 곧잘 맞아떨어졌다. 그리고 이런 내 예감의 적중도를 다시 한번 신뢰해 본다면, 임순례 감독의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이하 <우생순>)은 대박이 날 것 같은 영화다. 초대박 수준은 아닐지라도 적어도 300만 이상은 들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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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미덕을 비평적 관점에서 구구절절 읊어대기 전에, 점쟁이도 아니면서 감히 하늘도 모른다는 흥행을 점치는 표면적인 근거부터 말하면 이렇다. 우선, <우생순>은 한국 관객들이 경향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감정의 흐름을 제공한다. 간단히 말해 전반부엔 웃기고 후반부엔 세게 울린다. 김정은과 문소리는 후반부의 울음을 위해 착실히 갈등과 화해의 드라마를 쌓아가고, 김지영과 조은지는 전반부의 웃음 폭탄을 책임진다. 특히 '정란' 역의 김지영은 <우생순>을 부담스러운 '스포츠 신파'로 흐르지 않게 만드는 사이드 어태커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해 낸다. 감독 역의 엄태웅도 선수들과의 갈등을 통해 극의 긴장감을 팽팽하게 만들어내면서도 외곬에서 느껴지는 미묘한 유머를 발산한다. 말하자면, 배우들간의 캐릭터 배분이 완벽에 가깝게 잘 짜여져 있는데다, 하나의 캐릭터 안에서도 눈물 섞인 연민과 웃음 섞인 동조의 시선을 동시에 이끌어 내는 입체감을 확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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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한국에서 스포츠 영화는 안된다는 징크스를 깰만한 비기가 숨어 있다. 일단 <수퍼스타 감사용>이나 (스포츠 영화의 범주로 넣기는 좀 무리지만)<스카우트> 등의 영화들이 너무 먼 과거의 일을 끄집어 낸 데 반해, 이 영화는 아직도 많은 이들의 기억에 생생한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의 드라마를 발빠르게 영화화했다. 은퇴한 선수들까지 끌어 모을 정도로 척박한 국내 핸드볼 환경을 극복하고, 세계 최강의 덴마크를 맞아 일진일퇴의 명승부를 펼쳤던 한국 여자 핸드볼 대표팀은 그 자체로 드라마였다. 지난 2002년 <YMCA 야구단>으로 스포츠 영화의 흥행 노하우를 학습한 바 있는 당시 명필름, 지금의 MK픽쳐스는 <화려한 휴가>의 나현 작가를 투입해 모두가 알고 있는 이 감동 실화가 진짜 드라마가 되는데 필요한 촘촘한 상상력의 살을 붙였다. 영화는 굵직한 드라마의 뼈대를 실화에서 가져오되, 허구로 재창조한 인물들의 에피소드를 가미해 그럴싸한 영화적 감정선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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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째, <우생순>은 단순한 스포츠 영화가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편리한 조롱 거리로 전락한 '아줌마성'에 대한 찬사를 보내고 있는 '휴먼 드라마'에 가깝다. 그동안의 숱한 '바람 영화'들이 불륜을 선택하는 여성들을 통해 아줌마 되기를 거부하는 욕망에 편승해 왔다면, 이 영화는 국가대표 핸드볼팀의 노장 선수들을 통해 삶의 고단함에 정면으로 맞서는 아줌마의 뚝심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 설파한다. 우리는 그 뚝심이 결국 은메달에 그치고 만 것이라는 걸 알기에 더욱 안타까운 시선으로 이야기의 흐름을 좇게 된다. 그러나 관객은, 그들의 뚝심이 변변한 실업팀 하나 없는 상황에서 1천여 개의 실업팀을 보유한 덴마크를 상대로 끈질기게 따라 붙은 뚝심이었다는 사실 또한 기억하고 있다.

<와이키키 브라더스> 이후 6년만에 처음으로 대중영화의 메가폰을 쥔 임순례 감독은 관객들이 다시 한번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삶을 통해 기억의 편린을 재조합해 내도록 기꺼이 돕는다. 감동 받고 그냥 돌아서기엔 너무 아까운, 척박한 들에서 피어 오르는 꽃처럼 아름다운 무엇이, 그들과 우리를 뜨겁게 한 그 무엇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냐고, 그러니 다시 기억하고 축하하자고 말한다. 그날 아줌마 선수들이 일군 기적이야말로 아주 특별하지도 않은, 바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고 때론 농담 섞어 말하곤 하는 그 억척스러운 아줌마성의 소산이었다고 말이다. 거기에 임순례 감독이 소망을 담아 방점을 찍는 풍경은, 나와 가족밖에 모르는 파편화된 이기주의가 아니라 서로의 상처를 함께 보듬고 흔쾌히 하이파이브를 나누는 멋진 아줌마들의 눈부신 우정과 연대다. 지난해 말 <색, 계>에 감동 받은 이땅의 아줌마들과 예비 아줌마들이 이제 <우생순>을 보며 주먹을 불끈 쥐고 삶의 에너지를 충전하게 될 것 같은 예감.

해서 된다. <우생순>은 흥행할 것이다. 틀리면 앞으로 1년간 영화 리뷰를 쓰지 않겠다.(진짜 틀리면 어떡하지? <우생순> 홧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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