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행복하신가요?... 글쎄요. 전 좀 머뭇거리게 됩니다. 굳이 따져보자면 .... 허둥지둥 만든 이유식을 제비 새끼처럼 입 쪽쪽 벌려가며 받아먹는 5개월 딸아이를 볼 때나, 기대하지 않고 들이킨 사골칼국수의 국물이 끝내주게 맛있었을 때, 남편과 함께 쓴 책 <행복빌라 301호의 연인>의 예스24 판매지수가 1천권을 돌파했음을 확인했을 때, 뭐 대략 이런 순간 잠깐씩 '행복하다'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 같은데. 글쎄요. 다 모아도 하루 24시간 중 10분 정도나 될라나... 왜 그렇게 '찔끔' 행복하냐구요? 흠흠. 가끔 돌출행동과 과격한 언행을 서슴지 않는지라 굉장히 적극 쾌활 유쾌한 에너지의 소유자로 오해받곤 합니다만. 겉보기와 달리 꽤 비관주의자인데다가 소심하기로 치면 벤뎅이의 속알머리를 열두번도 더 희롱하고 남는 수준인지라.
2005년 12월. 워싱턴 D.C. 백악관 앞 행복-행복 전문가 6인이 밝히는 행복의 심리학
위 사진, 저 맞습니다. 보복조치가 두려워 살짝 변장을 했지요. ㅋㅋ... 농담이구요. 소심한 제가 대범한 무엇으로 오해받곤 한다는 글을 쓰다보니, 갑자기 2005년도 미국 여행 시 워싱턴 백악관 앞에서 찍었던 이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골 때리지요? 후에 이 사진을 본 지인들은 다들 '죽인다' '쓰러진다' '멋지다' '근데 왜 한글로 썼냐 영어로 쓰지' 등등의 반응으로 열광했습니다. 모두들 '역쉬 대범한 김애경!'이라며 찬사를 보냈죠. 하지만 알고 보면 별 것 아닙니다. 한 단체가 백악관 앞에서 각국의 언어로 쓰여진 플랭카드를 만들어두고는, 관광객들이 알짱거리면, '웨어 아 유 프럼?'을 물어, 이렇게 해당 언어로 씌여진 카드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게 하는 겁니다. 주된 내용은 '퍽(fuck)부시'였죠. 사진을 찍어서는, 홈페이지에 올리더군요. 요즘은 살짝 온순해진 듯도 합니다만. 혹시 이 흥미진진한 단체의 활동이 궁금하시면 클릭! http://yellowcakewalk.net/
삼천포로 빠지는 재주, 오늘도 변함없고! ^^;;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죠. 그렇습니다! 소심입니다. 나의 행복을 방해하는 결정적 원흉! 술 먹고 저질렀던 치명적 실수, 액면가만 믿고 아직도 이십대인 줄 아는 착각, 결심을 따라잡지 못하는 손발의 게으름, 거절 못해 쓸데없이 저당 잡힌 시간들… 등등. 이 중 2008년까지 굳이 가져가고 싶지 않은, 절대 재활용 불가인 '나의 폐기물' 중 하나는 바로 '소심한 마음, 소심한 생각'입니다. 밤이면 밤마다 굳이 그 시간에 하지 않아도 될, 고민과 후회와 절망의 탑을 세웠다 허물었다를 반복하느라고 불면에 시달리는 그 모든 원인이 바로 이 '소심'에 있습니다. 조금 대범해지기, 기왕이면 낙천주의자인 양 해보기, 나를 사랑하기, 세상을 사랑하기, 조금 더 넉넉해지기 등등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 스스로와 해보는 다짐은 우선 이 '소심'을 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적어도 지금보다는 2%쯤 행복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뭐 언제는 몰라서 못했겠습니까만은. 그나저나 여러분의 '2007 폐기물'은 과연 무엇인가요? 뿌린대로 거둔 카드 대금? 사랑해선 안 될 사람을 사랑한 죄? 용서할 수 없는 내 머릿 속의 지우개? 미련스러워 버리지 못하는 미련? 유통기한 지난 통조림 깡통 같은 사랑?
기술이다보니 연습하면 할수록 늘어난다는 거죠. '행복전문가 6인이 밝히는 행복의 심리학'이라는 부제가 붙은 <행복>이라는 책은, 행복의기술을 증진시키는 요소로 다음의 17가지 것들을 제안합니다. 바로 나이, 돈, 일, 사랑, 건강, 운동, 미소, 웃음, 섹스, 음식, 공동체, 친구, 휴가, 반려동물, 가족, 아이들, 종교가 그것입니다. 이 중 흥미를 느낀 대목은 바로 나이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다른 요소들이 궁금하시다면 연말연초를 기해 '행복'이라는 책을 한번 읽어보심이 어떠실지).
40개 국가에서 6만 명의 성인을 대상으로 대규모 연구를 진행했다고 합니다. 행복을 세 가지 구성요소로 나눠 측정했는데 인생에 대한 만족감, 유쾌함 그리고 불쾌감이 그 조건이었죠. 연구 결과, 인생에 대한 만족감은 나이를 먹으면서 서서히 증가했고, 유쾌감은 서서히 감소했으며, 불쾌감은 변함이 없었다고 해요. ‘세상을 다 얻은 기분’과 ‘절망의 나락’ 따위의 극단적인 감정은 연륜과 경험이 쌓여갈수록 옅어지는 데에 그 이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실 나이 들면서 행복을 키워갈 수 있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행복>이란 책에선 이런 방법들을 제안하고 있죠. 친구들과 자주 연락하고 매일 좋았던 일을 세 가지씩 되새겨보는 것. 몸을 움직이는 활동을 하고 섹스를 하고 적어도 하루에 한번 신나게 웃는 것, 철분과 항산화제를 섭취하고 하루에 8~10잔의 물을 마시는 것 등등.
하지만 인생의 멘토와도 같은 이 어르신들의 말씀이 이론서의 방법론보다 훨씬 피부에 가까이 와 닿습니다. 한 살 더 먹는 여러분을 위해 이분들의 조언을 선물로 나누어 드립니다.
속박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주체적으로 살 것 “예전에는 욕 먹는 거, 남이 나 흉보는 거, 스캔들 나는 거 등등 사소한 것들에 집착하고 걱정했어요. 헌데 지금은 아무것도 안 무서워요. 젊었을 때 무게잡고 살던 내 주변 여자들도, 지금은 다 자유로워졌어. 선배의 출판기념회에서 꽃 하나씩 꽂고 ‘청실홍실’을 부른다니까. 보톡스 맞으려면 다들 1억 견적 나오는 여자들이지만, 우리는 그런 거 없이도 행복해요. 나는 화장품이 없어요. 가끔 저가 브랜드도 사고 그냥 막 써. 요즘엔 백화수복을 발라요. 원료가 쌀이고 먹는 알코올에 당분도 들었는데 뭐 어때. 백화수복 없으면 배상면주가에서 나오는 대포도 괜찮아요. 쌀이랑 은행, 달맞이꽃 종자 등이 원료잖아. 이렇게 느물느물하고 유연한 사고를 갖게 된 뒤, 훨씬 더 행복해졌어요. 무엇보다 요즘 가장 행복한 이유는, 내가 가진 돈으로 책을 원 없이 살 수 있기 때문이에요. 서평 보고 동네 서점에 잔뜩 주문해 놓으면 얼마나 행복하다고. 비싼 세단을 갖는 것보다 몇 배는 행복한 일이에요.” (이유명호, 한의사)
돈과 친구와 건강을 잃기 전에 챙길 것 “우리 나이 사람들 모이면 30분이고 1시간이고 건강 얘기를 많이 해요. 뭘 쓰니 그렇게 좋다더라, 어디가 아프면 어떻게 하는 게 좋다더라 뭐 그런 얘기들이죠. 헌데 한번은 그랬어요. 앞으로는 의도적으로라도 그런 얘기를 하지 말자고. 아무래도 건강은 나이 들어갈수록 간과할 수 없는 중차대한 화두지만, 인식하면 할수록 더 늙은 기분이 들고, 그렇게 말로 신경 쓰는 동안 흰머리가 하나 더 생겨나니까. 그래도 할 수 있을 때 말이나 생각이 아닌, 행동으로 건강에 신경 써 두면 좋겠죠. 그리고 돈도 행복한 노후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요소에요. 연금이나 재테크 쪽에 좀 신경 써두면 좋을 것 같아요. 그리고 좋은 친구들이 곁에 있는 것만큼 행복한 건 없죠. 나이 들어갈수록 훨씬 더 그래요.” (조선희, 소설가)
내면적 동기로 살고 결정적 경험을 할 것 “진심으로 좋아하는 일을 하고 거기서 희열을 느낄 때 행복한 것 같아요. 물론 노화도 늦출 수 있죠. 육체적인 노화가 아니라 마음의 노화를 줄이는 건,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진짜 자신이 원하는 일들을 하는 걸 거예요.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판도를 바꾸어놓을 결정적인 경험들을 가급적 많이 해보는 것도 행복하게 나이 들어 갈 수 있는 토양을 비옥하게 바꾸어놓는 것 같아요. 마지못해 하는 일, 억지로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스스로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중요해요. 마음 속 동기로 시작된 일들은 늘 인생의 결정적인 경험을 남기곤 하거든요. 그것이 행복이라는 이름으로 나이테에 기록될 거예요.” (심영섭, 영화평론가 겸 심리학자)
걱정거리 없는 메타우먼이 되라 “인생은 단 하나뿐인 프로젝트예요. 타인에 대한 편견과 고정관념을 넘어서 사람을 바라보면 사는 게 참 재미있어져요. 반대로 누군가의 편견에 흔들리고 있다면 그에 구애 받지 말고 제 갈 길을 가는 게 중요해요. 어니 J 젤린스키의 ‘느리게 사는 즐거움’을 보면 이런 말이 있어요. ‘우리가 하는 걱정거리의 40%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에 대한 것이고 30%는 이미 일어난 사건들, 22%는 사소한 사건들, 4%는 우리가 바꿀 수 없는 사건들에 대한 것들이다. 나머지 4%만이 우리가 대처할 수 있는 진짜 사건이다. 즉 96%의 걱정거리가 쓸데없는 것이다.’ 걱정거리는 행복을 방해해요. 고민이 많다고 해서 한숨 쉬지 마세요. 고민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으니까요. 그리고 고민을 할 거면 딱 10분만 하세요. 고민은 하나 안 하나 결과는 똑같거든요. 늘 변화하는 여자, 진화하는 여자가 되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살면, 나이와 행복은 정비례하며 늘어나죠.” (김진애, 도시 건축가)
(* 위 멘트들은 '살이되고 피가 되는 훌륭한 잡지(^^)' 얼루어 재직 당시, 해당 인사분들을 인터뷰하며 주워들었던 인상적인 말씀들입니다. 여성들을 청자로 한 얘기지만, 남자들도 새겨들을 만한 대목이 있을 겁니다. 알아서 주워가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