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STAFF’이라고 적힌 아이디 카드를 받았다. 남포동 야외무대 행사의 사회자를 맡게 돼 영화제 측에서 나름 배려를 해준 것이었지만, 왠지 생소했다. 작년까지만 해도 언제나 ‘PRESS’라고 적힌 아이디 카드를 목에 걸고 다닌 나로선 왠지 몸에 안 맞는 옷을 입고 다니는 기분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도 참 묘한 게, 스탭 아이디를 달고 다니니 나 자신이 영화제측의 일원이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거리감을 유지하며 영화제 진행의 이모저모를 따져야 하는 ‘기자의 임무’보다, 영화제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 열성을 다해야겠다는 괜한 책임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사람이 이래서 참 간사하다.

영화제 기간 중 점심을 함께 한 후배 기자가 젊고 에너지 넘치는 저널리스트답게 날카롭고도 반짝이는 눈빛으로 올해 영화제의 문제점과 허점을 파고 들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었다. “기무라 타쿠야가 영화 홍보하려고 온 걸 영화제까지 나서서 멍석을 깔아줄 필요가 있나 싶어요.” “오픈시네마에 그 사람 영화가 초청됐으니까 온 거지. 그걸 그렇게 색안경 끼고 볼 필요가 있을까?” “영화제가 상업 영화 홍보의 장은 아니잖아요.” “홍보의 장은 아니지만, 홍보가 금지된 장도 아니지.” 굳이 내가 그럴 이유는 없었지만, 그의 문제 제기에 변명 비슷하게 대답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내가 왜 이러지? 목에 걸린 스탭 아이디가 무슨 절대반지도 아닌데.

기자로서는 올해까지 부산국제영화제를 8번째로 찾았다. 처음엔 상영 사고나 통역 미흡 등 운영상의 작은 문제점도 무슨 큰 일이나 난 것처럼, 혹은 대단한 국제적 망신이라도 당한 것처럼 침소봉대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상영 사고가 났다고 하면, “뭐 그 정도야…영화제에서 상영 사고 한 두 건 안 나면 오히려 이상한 거지.” 하면서 넘어가게 됐다. 해운대가 수천만 원 짜리 대형 파티로 들썩이고 있는 데 대해 혀를 끌끌 차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 적어도 부산에서만큼은 축제로서의 영화제와 산업 박람회로서의 영화제라는, 별도의 기능이 공존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했다.

기자로서의 시야가 넓고 윤택해진 건지, 펜촉이 무뎌진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렇게 된 것은, 내 인식이 변화해서라기보다 부산국제영화제라는 행사가 기존의 틀과 잣대를 들이대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커져 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적절한 변명이 될 것이다. 올해로 12회째를 맞은 이 거대한 국제 행사는 초창기에는 어느 정도 통했을 영화제 순혈주의적 시각이 견제력을 상실한, 자동 확대재생산의 단계로 넘어가 버린 것처럼 보인다. 어떻게 보면 그렇기 때문에, 영화제의 정체성과 본질을 상기하려는 시도가 철 지난 소리나 순진한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때가 있는 것이다.

고백컨대, 사실 나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대해서만큼은 철 지난 공자님 말씀을 자주 읊조리던 쪽이었다. 우선 나는, 영화제 그 자체의 정체성에 국한해서가 아니라, 다양성이 게토화되고 있는 한국사회의 문화 지형에서 영화제 또한 예외가 아닌 행사로 변질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기회 있을 때마다 표명했다. 시사회가 전회 매진될 정도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던 영화가 나중에 개봉돼 극장에만 걸리면 썰렁해지기 일쑤인 사례들을 방증으로 제시하면서 말이다. 이렇게 말하면 열광의 주체들은 모욕당했다고 속상해 할지 모르겠지만, 그 열광은 현상적으로나 본질적으로 영화제용 열광이었고, 일상화되지 못하는 열광으로 보였다. 한국사회만큼 열정이 무죄라는 이유로 모든 현상과 본질을 동일시해버리는 곳도 드물 것이다. 열정의 이면을 들추는 행위를 억지로 영화제의 잘못을 따지고 시네필의 열정을 폄훼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즉각적인 반격에 나서기 일쑤다. 그러나 축제의 여운이 공명하지 않고 단기적으로 휘발돼 버리는 기형적인 문화 소비 메커니즘에 영화제가 거의 완전하게 포섭돼 버린 상황을 부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이런 맥락에서, 나는 확산과 계몽의 중심 기제로써, 그리고 ‘문화적 뱅가드’로써의 영화제의 기능에 사실상 사망 선고를 내릴 시점에 다다랐다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그러니 더욱 PIFF가 ‘아시아 최대의 영화제’ 혹은 ‘아시아 영화산업의 허브’라는 규모과시용 수사만 붙잡고 늘어지며 ‘우리는 역시 최고’라고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게 된 셈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프레스가 아닌 스탭의 자격으로 찾은 나는, 그러므로 이런 문제 제기를 굳이 상기하려 애쓰지 않았다. 앞서 말했듯,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지점에 다다른 부산국제영화제가 몇 마디 딴죽 걸기에 감읍해 자동확대재생산의 공정을 멈춰 세울 수 있으리라 믿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까놓고 말하면, 아니 굳이 까놓고 말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듯, 그것은 영화제의 방향성에 대한 동의가 아니라 어떤 무기력의 소산이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그렇다. 이건 무기력이다.

하지만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에 와서, 그 무기력이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제를 마련하고 진행하는 이들에겐 무기력증이 없을까? 프레스의 독기 어린 냉소가 이렇듯 스탭 아이디 하나 달았다고 금세 무기력으로 치환되는 걸 보니, 그들의 무기력은 꽤 오래된 것일 수도 있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과연 그 증거를 금세 찾았다. 개막식과 영화제 공식 트레일러였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개막식에 대해서는 이미 여론의 질타를 한껏 받은 뒤이니 따로 길게 말하지는 않겠다. 다만, 비도 오는데 비싼 옷 안 버리려고 안간힘을 쓰며 한도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잘 차려 입은 연예인들의 행렬에서, 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무기력을 읽었다. 그리고 그 끝을 화려하게 장식한 대선 예비 주자들의 나타나심 앞에서, 또 한번 깊은 무기력을 읽었다. PIFF는, 문화 행사를 노출과 홍보, 이해 득실의 장으로 손쉽게 해석하려는 세력들에게 순순히 자리를 헌납했다. 12회, 이제 많이 컸다고 생각했지만, 아직 여리다. 문화의 자율성이라는 허울 좋은 모토는, 여전히 힘 센 이들을 거역할 수 없다. 그 덕분에 야외상영장에 PIFF의 상징처럼 우뚝 솟은 거대 스크린은, 서둘러 이 썰렁함을 봉합해 보려는 듯 빗물 사이로 작렬한 불꽃과 더불어 이날 내게 아주 처연하게만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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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IFF가 생존을 위해 희생한 것은 개막식의 신명만은 아니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공식 트레일러는 한 의류 브랜드의 마스코트가 주인공이다. 스폰서라는 말 앞에 ‘골드’도 모자라 ‘다이아몬드’라는 말까지 붙여줄 정도로 스폰서십은 영화제 운영의 필수 재원이다. 그러므로 스폰서에 대한 영화제 측의 배려는 충분히 이해 영역 안에 놓여 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과감히 이해 영역 바깥으로 외출했다. 영화제 트레일러에 특정 브랜드의 마스코트를 주연 삼을 수 있다면, 아마도 내년엔 아예 상품 광고가 나오고 뒤에 영화제 로고가 따라 붙는 형식도 실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분위기로는 불가능해 보이지 않는다.

살림살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걸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니 이걸 두고 영화제가 자존심을 내팽겨 쳤다고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영화제의 자율성을 고려하지 않는, 돈 대는 이들의 비문화적 소양이 더 큰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 많은 돈을 내고 홍보 효과를 얻을 수 없다면 뭣 하러 스폰서가 되겠느냐는 질문에는, 몇 해전 방문했던 밴쿠버국제영화제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답을 대신할 수 있다. 한 시중 은행이 영화제 메인 스폰서였는데, 공식 트레일러에 앞서 영화제를 주제로 재기 발랄한 1분짜리 짧은 코믹 단편 영화를 틀어 큰 인기를 끌었다. 말하자면, 문화적 소양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냥 대놓고 광고하지 않으면서도 영화제의 창의적 유희에 동참하는 유머 감각 말이다.

욱일승천의 기세로 덩치를 키워가고 있는 부산국제영화제는 얄궂게도 점점 더 문화의 무기력을 그 자양분으로 삼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은 규모의 대가일 것이다. 그러니 딜레마다. 거꾸로, 그래서 더 초심을 상기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철 지난 소리라도 듣고 말하지 않는다면, 관객들이 부산국제영화제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게 점점 작아지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명색이 영화제인데, 부산에 다녀온다는 게 파리 에펠탑 앞에서 사진 한방 찍고 온 것과 다를 바 없어지면 어떡하나 하는 걱정이 든다. 스탭 아이디 카드의 유혹을 뿌리치고, 올해도 이렇게 한 소리 하고 넘어가는 이유다.

필자(cinemAgora)가 10월 10일자 컬처뉴스(www.culturenews.net)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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