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스터리 소설의 대명사인 히가시노 게이고의 원작 소설이 세번째로 한국영화로 만들어졌습니다. <백야행> <용의자 X>에 이어 <방황하는 칼날>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특징은 독자가 범죄자의 편에 서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피치 못할 사정이 있고, 이때문에 어쩔 수 없이 범죄를 이어가는 이를 연민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듭니다. 그래서 어쩌면 그의 작품은 휴먼 스릴러라고 불러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방황하는 칼날>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정재영이 연기한 주인공은 딸이 성폭행을 당한데다 살해까지 당하자 이성을 상실합니다. 그리고 가해자들을 한명씩 찾아내 죽입니다. 피해자에서 가해자로, 즉 살인자로 변모하는 그의 행보를 관객들은 숨죽이며 지켜 봅니다. 기묘하게도, 그의 슬픈 사적 복수에 동조와 쾌감마저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아마도 피해 당사자가 되어야만 고통을 체감할 수 있는 세상의 무감함과 법 시스템의 무기력에 관객들이 공감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 원작 소설을 영화로 옮긴 세 편의 한국영화 가운데 가장 잘만든 작품인 것 같습니다. 각색도 좋고 화면 연출도 훌륭합니다. 넋이 나간 표정으로 복수 여행을 이어가는 정재영의 연기도 제대로 빛을 발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