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사회 참여' 혹은 '사회적 예술'이라는 말은 요즘 시대에 사실상의 사어(死語)가 됐다. 현상이 드물어졌으니 그 말을 쓰는 일도 없어졌다는 얘기다. 이른바 순수 예술이란 게 상류층의 고급 취향을 만족시키는 박제로 전락한 게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의 '브나르도 운동'처럼 예술가들이 "민중 속으로"를 외치던 시절도 가물가물하지만 있긴 했던 것 같다. 여기 한국에서도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혹 사회적 실천으로써의 예술을 수행하는 선구자들이 있어, 그들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선보이곤 한다. 지난 2010년에 국내 개봉한 <기적의 오케스트라 - 엘 시스테마>가 대표적이다. 이 작품은 무려 25만 명 이상의 빈민가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쥐어준 베네수엘라의 청소년 오케스트라 '엘 시스테마' 운동을 담았다.
오는 4월 3일 개봉하는 <웨이스트 랜드>도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긴 하지만, <엘 시스테마>와는 확연한 차이를 가지고 있다. 음악과 미술이라는 예술 장르의 차이 말고도 <엘 시스테마>가 이미 성공한 사례를 수집하는 차원의 기록이었다면, <웨이스트 랜드>는 불가능해보일 것 같은 한 프로젝트의 과정을 고스란히 기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다.
다큐멘터리 연구가 빌 니콜스의 다큐멘터리 분류 기준을 이 작품에 적용한다면, 아마도 그가 제시했던 모든 분류가 이 작품 안에 포함돼 있을 것이다. 요컨대, <웨이스트랜드>는 시적이며, 설명적이기도 하고, 관찰적이며 참여적이기도 하고, 성찰적임과 동시에 수행적이다.
작품에 대한 구구절절한 설명보다는 한 장의 사진이 더 효과적일 때가 있다. 아래 포스터 속의 그림을 보시라. 그림처럼 보이지만, 사실 이것은 쓰레기들을 모아 만든 것을 찍은 사진이다. 작품의 모델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최대의 쓰레기 매립장 '자르딤 그라마초'에서 재활용품을 주우며 생계를 잇고 있는 이른바 '카타도르'라는 직업의 소유자 티앙이다. 쓰레기 매립장에서 일하는 수천 명의 카타도르 가운데 몇 명을 선별해 그들 스스로 이 작업을 수행하게 만들었다. 쓰레기를 줏는 이들에게 바로 자신들에게 가장 익숙한 재료인 쓰레기를 활용해 자화상을 만드는 예술 작업에 참여시킨 것이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는 브라질 출신의 저명한 예술가 빅 무니즈다.
그는,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예술이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음을 구체적으로 증명해 보인다. 더욱 중요한 것은, 예술은 예술가의 전유물이 아니라 그 작업에 참여하며 변화하는 과정 그 자체라는 것을 카타도르들에게 체험케 했다는 것이다.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소외되는 자본주의 메커니즘과 정 반대로 이 과정은 예술로부터 소외된 이들을 예술 행위에 결합시킴으로써 그 향유의 주체로 온전히 복원시키는 완벽한 순환 구조를 창조한 것이다. 4톤 분량의 쓰레기를 이용해 무려 2년간 지속된 작업 과정을 충실히 담아내는 영화는,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진 이 엄청나지만, 우리의 좁아터진 정보 채널에서 빠질 뻔한 예술사적 사건을 다행스럽게 우리에게도 실어다준다.
당신이 이 작품을 본다면, 신파 극영화도 아닌 다큐멘터리를 보며 눈물을 흘리는 기묘한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눈물은 진짜다. 진짜 예술이 주는 진짜 감동이다.
빅 무니즈: 이 작업을 하기 전에 당신은 예술이 뭐라고 생각했어요?
티앙: 쓰레기요. 하하하.
빅 무니즈: 그럼, 이제 예술을 뭐라고 생각하세요?
티앙: 소통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