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의 밤은 파티의 연속이다. 올해만해도 지난 일요일에 무려 7개의 크고 작은 파티가 열렸다. 파티의 종류도 다양해서 영화사가 주최하는 파티, 특정 국가 영상기관이 주최하는 파티, 영화제가 주최하는 파티 등등...셀수 없이 많은 파티들을 순례하고 나면, 녹초가 돼 다음날 일정을 소화한다는 게 불가능해지기 일쑤다.

그래서 나는 몇년 전부터 부산국제영화제에 와도 파티에는 왠만하면 가지 않는다. 특히 큰 호텔의 홀에서 서서 하는 파티는 질색이다. 와인 잔을 손에 들고, 어디 아는 놈 없나 목을 길게 빼고는 어슬렁 거리다 낯익은 얼굴이라도 나타나면, 뭐 대단히 반가운양 악수를 하고 명함을 나누는, 그런 생뚱맞고 뻘쭘한 분위기가 싫어서이다.

하지만 올해 나는, 두 개의 파티에 참석했다. 하나는 부산영화제 파티 중 가장 재미 없기로 소문난 일본의 밤 파티, 그리고 가장 재미 있기로 소문난 와이드앵글 파티였다. 일본의 밤 파티가 왜 재미없는지는 따로 길게 설명하지 않겠다. 그냥 바로 앞 문단에 설명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어쨌든, 따로 인사를 드려야 할 분이 오신다기에 와인 두 잔을 원샷 한 뒤 필수 고객들에게 눈도장만 찍고 얼른 빠져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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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는 와이드앵글 파티장. 독립영화인들의 파티인만큼 특급 호텔이 아닌, 수영만 요트 경기장의 대형 창고를 활용했다.


비가 촉촉하게 내리는 가운데 어제밤에 열린 와이드앵글 파티는 일단 호텔이 아니라 좋았다. 수영만 요트 경기장 안에 위치한 대형 창고가 파티장이다. 무슨 관광지의 나이트클럽을 연상시키는 무대와 좌석 배치도 흥미롭거니와, 평균 연령이 서른 안팎에 그칠 정도로 참가 게스트들은 젊고 에너지 넘치는 독립영화인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격식보다는 열정과 솔직담백함이 물씬 풍기는 자유 분방하고 시끌벅쩍한 분위기가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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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겸 감독 방은진의 사회로 <판타스틱 자살 소동>의 조창호, 박수영 감독이 소개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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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커런츠 부문에 출품된 <나의 노래는...>의 안슬기 감독(맨 오른쪽)과 배우들(신현호, 민세연, 윤세민, 주민하).


올해 와이드 앵글 파티도 빈 좌석을 찾아보기가 힘들 정도로 빼곡하게 들어찬 게스트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익히 소문을 알고 있는 해외 게스트들도 젊은 영화인들의 에너지에 동참했다. 영화감독 방은진의 사회로 올해 부산국제영화제 와이드 앵글 부문에 초청된 작품들과, 독립 장편 영화들의 감독과 배우들이 차례로 무대에 나와 인사를 했다. 내가 갔을 때는 <피터팬의 공식>의 조창호 감독이 박수영, 김성호 등 동료 감독들과 함께 찍은 옴니버스 영화 <판타스틱 자살 소동>이 소개되고 있었다. 무대를 내려온 조 감독에게 손을 내밀며 "아직 영화 못봤어요." 했더니 "안보셔도 되요. 나중에 소주나 한 잔 해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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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송희일 감독


무대를 바라보며 맥주 두어잔을 마시고 있는데 누가 뒤에서 눈을 가리길래, 이렇게 어린이스러운 장난을 치는 인간이 누군가 돌아봤더니 이송희일 감독이다. 여전히 머리가 짧다. <후회하지 않아> 나온 지도 까마득한데, 그동안 영화 안만들고 뭐했냐 했더니, "여름 내내 <디워>의 팬덤과 싸우느라 바빴다"며 웃는다. "상처 받았어요?" 직설적으로 물었다. "에~그런 거 가지고 뭘 상처를..."  옆 자리에 <저수지에서 건진 치타>의 양해훈 감독이 와서 인사를 건넸는데, 내게 대뜸 "기사를 보고 여자분이 아닐까 생각했다"고 한다. 이송희일 감독에게 물었다. "내 기사가 여성적이야?" 그의 짧고 잔인한 대답. "여성적이긴! 마초 마초 대마초지!"

그들과 흔쾌하게 맥주를 나눠 마시고, 유쾌한 농담을 주고 받는 사이, 행사는 '소문난 잔치' 와이드앵글파티에 걸맞게 예의 광란의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었다. 그 분위기, 굳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아 아래 올린 짧은 동영상으로 대신한다. 지치지 않는 파릇파릇한 젊음을 쏟아내며 춤추고 있는 저들이 그 에너지를 자양분 삼아 지금의 저변을, 미래의 한국영화를 건설할 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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