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콘텍스트

영화 이야기 2014. 1. 23. 16:16 Posted by cinemAgora

지난 번에 영화 감상에 있어서 텍스트(text)와 서브 텍스트(sub-text)를 어떻게 파악하고 이해할 수 있는지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오늘은 '콘텍스트(context)'라는 개념에 대해 살펴볼까 합니다. 


콘텍스트라는 단어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맥락', 또는 '문맥'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영화 안에서 장면이나 설정 간의 유기적 관계를 말할 때 콘텍스트라는 말을 쓰기도 하지만, 비평의 관점에서 콘텍스트는 주로 영화가 사회와 맺고 있는 상호 연관성을 일컬을 때가 많습니다. 콘텍스트는 또 작품이 탄생했을 때의 사회, 그리고 작품이 소비되거나 향유될 당시의 사회와의 연관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개념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반지의 제왕> 같은 경우, 원작자인 J.R.R. 톨킨이 통과했던 시대의 사회적 맥락, 즉 콘텍스트를 이해한다면, 전혀 다른 서브 텍스트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판타지 소설이 출간된 때는 1950년대로 당시는 2차 세계 대전의 참화에서 막 벗어난 시기였습니다. 톨킨 자신도 1차 대전에 장교로 참전해 소중한 이들이 목숨을 잃는 전쟁의 참화를 직접 목격했고, <반지의 제왕>의 맹아격인 <잃어버린 이야기들>을 쓰게 됩니다. 톨킨은 <반지의 제왕>을 통해 그가 천착했던 북유럽 신화를 끌어 들여, 전쟁으로 점철된 참혹한 20세기 전반의 인류사를 투영했던 것입니다. 


창작 당시의 콘텍스트가 그러하다면, 피터 잭슨 감독에 의해 영화화된 <반지의 제왕>의 콘텍스트는 또 별도로 따져 봐야 합니다. 여기서부터는 21세기 대중 사회가 이 판타지를 열렬하게 소비하는 이유가 급부상하게 됩니다. 첨단 디지털 시각 효과 기술이 '판타지'라는 장르의 시각적 구현을 가능하게 했다는 창작 환경적 요인도 중요하지만, 스토리의 원형이랄 수 있는 신화적 세계가 보편적 흡인력을 가지고 있는데다, 극장 공간에서나마 '환상의 세계'로 숨고 싶어하는 대중의 욕망과 결합했다고 보는 시각이 존재합니다. 어찌됐든, 판타지로의 도피 욕망은 대중이 현실 속에서 그만큼 피곤을 느끼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영화로는 아홉번째로 관객 동원 천만 명을 돌파한 영화 <변호인>의 콘텍스트는 무엇일까요. 앞서 다른 포스트에서도 언급했듯, 21세기 이후의 한국영화는 전통적으로 대중의 결핍을 확인시키고, 열망에 부응하며 흥행 현상을 만들어 왔습니다. 사실 흥행 현상을 만든 주체는 한국영화가 아니라 대중이라고 보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자면, <변호인>이 이 사회와 맺고 있는 상호 연관성, 즉 콘텍스트가 무엇인지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이 영화의 흥행 이면에는, 일부 논자들이 말하듯, 비극적 죽음을 맞이한 한 정치인에 대한 대중의 부채감도 분명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만이라면, 콘텍스트를 파악하는 시야를 스스로 한정짓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변호인>은 70-80년대의 반독재 운동과 6월 항쟁에 대한 공유된 기억을 소환하는 작품입니다. 그 소환이 지금 유의미함을 획득하고 있는 이유를 따져 봐야 합니다. 당연하게도, 그렇게 얻은 절차적 민주주의가 훼손되고 있다는 불만, 또는 불안이 대중의 잠재 의식 속에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인식, 혹은 현재와 불화하는 의식을, 어떤 이들은 노무현이라는 공유된 기억 속의 정치적 아이콘에 대한 열렬한 회고를 통해 발산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그 회고는 분명히 박정희를 신격화하는 것과는 다른 콘텍스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떻게 다른가에 대해서는, 한국 현대사에 대한 인식의 차원이므로 여기서 장황하게 설명하는 건 적절하지 않을 겁니다. 다만 말하고 싶은 건, 콘텍스트란 역사의 합목적성과 시대 정신의 더 큰 맥락 안에서 살필 때, '동굴의 오류'를 피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창작물 뿐만 아니라 거기에 화답하는 대중적 현상에는 반드시 맥락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맥락의 타당성을 따지는 것만큼이나 맥락을 이해하려는 노력 또한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콘텍스트를 읽는 눈은, 사실 인식의 겸손에서 출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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