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제 기능을 못하니 이 시대의 영화가 할 일이 참 많다는 생각을, 영화 <또 하나의 약속>(2/6 개봉)을 보면서 했다. <도가니>가 그랬고, <변호인>이 그랬듯, 이 영화 역시 부당한 강자에 의해 핍박받는 약자들의 실화를 담고 있다.
알려져 있다시피 이 영화는 삼성 반도체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잇단 희귀병에 걸린 사건을 극화했다. 물론 영화에 등장하는 업체는 "삼성"이 아니라 "진성"이라는 이름으로 대체됐다. 그러나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제목부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홍보 모토를 내걸었던 삼성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영화 속에서도 노골적인 대사가 나온다. "진성이 우리를 또 하나의 가족으로 만들었어."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근무하다 백혈병에 걸려 숨진 고 황유미 씨와 그 아버지의 사연을 중심 축으로, 관련 피해자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산재 판결을 받아내기 위해 벌였던 소송을 재구성하고 있다. 실제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영화가 보여주는 피해자와 대기업의 싸움은 마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 계란으로 바위치기의 무력감을 선사한다. 그럼에도, 영화는 회사 측이 제시하는 거액의 보상금의 유혹을 물리치고 소송을 끝까지 이끄는 이들의 정의로운 오기에 초점을 맞춘다. 말하자면, 대기업이라는 '부당한 강자'의 횡포를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정당한 약자'의 선량한 연대를 강조하고 있는 셈이다.
영화가 끝나면 한국영화 사상 가장 기나긴 엔딩 크레딧이 올라간다. 제작두레 형식으로 순수 개인들의 후원금으로 만들어졌기에 그들의 이름이 빼곡하게 화면을 채운다. 그 엔딩 크레딧 자체가 또 하나의 드라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