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을 응원하는 이유

영화 이야기 2013. 12. 22. 09:50 Posted by cinemAgora

영화 기획자들은 기획 단계에서 스스로들을 향해 이런 질문을 자주 한다고 들었습니다.

“이 영화가 왜 하필 지금 필요한 거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영화가 시대와 조우하지 않는다면, 흥행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시대의 공기, 또는 대중의 집단 무의식과 접점을 만들어내면서 대규모 흥행에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의 흥행은 남북 화해에 대한 열망이 잘 짜여진 장르적 밀도와 만나며 시너지를 만들어낸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괴물>은, 한강이라는 일상적 공간에 출몰한 괴물의 상징성이 영화가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것과는 별도로, 소시민을 압박하는 이 사회의 위악성을 상기시켰고, 동시에 그것이 관객들의 무의식 속 공포의 대상을 연상시켰기 때문에 흥행할 수 있었습니다. <도가니>는 정의의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는 문제 의식과 만나면서 ‘분노’를 촉발시켰고, 그것이 흥행으로 연결된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광해, 왕이 된 남자>는 대선 정국을 앞두고, 서민적 리더십에 대한 관객들의 열망에 화답했기에 흥행할 수 있었습니다. <7번방의 선물>은, 그 열망이 상실된 즈음에, 지난해 말 교수들이 2013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내놓은 ‘거세개탁(擧世皆濁, 온세상이 모두 탁하다)’이라는 말이 꿰뚫은 바와 같이, 탁한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대중에게 절망을 배설할 멍석을 깔아주었습니다. 

이번주 개봉한 <변호인>의 흥행 추이에 시선이 갈 수밖에 없는 것도 마찬가지 이유입니다. 대규모 흥행이 점쳐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도 천만 명에 육박하거나 그 이상의 흥행을 하게 될 것 같은 조짐입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지금의 시대성과 어떻게 조우하고 있는것일까요. 지금부터 중요해지는 분석은, 영화 <변호인>이 담고 있는 내용보다는, 이 영화를 보기 위해 몰려가는 관객들이 어떤 결핍과 열망을 영화에 투영하고 있는가입니다. 그것은 아마도, 영화를 보신 많은 분들이 의식하고 있는 ‘그것’일 겁니다. 상실된 민주주의, 국가 기관에 의해 저질러지는 상식을 뛰어 넘는 폭력이 대중의 무의식에 아로 새긴 ‘그것’과 광범위한 접촉면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관객들은 이 영화를 통해 누군가를 그리워한다기보다, 지금 시대의 결핍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와 상식이 숨쉬는 세상에 대한 열망을 투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대중 관객들의 그런 결핍과 열망이 극장 안에서만 휘발되고 마는 데 대한 우려의 시선도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저 그렇게 한번 울고 나오면서, “그래, 이 영화에 감동 받는 나는 정의로운 사람이야” 라는 자족에 그치고 만다면, 영화 <변호인>은 한풀이나 넋두리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우려입니다. 

저는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말도 믿지 않지만, "영화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도 믿지 않습니다. 영화가 할 수 있는 최대치의 위력은, 동시대의 관객들이 잠재적으로 가지고 있던 무의식을 의식의 단계로 끌어 올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변호인>은 그 역할을 꽤나 잘 수행한 작품이고, 시대의 필요성과도 잘 맞아 떨어진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은 그 자체로 어떤 공격성을 가진 저항 행동은 아닐지 몰라도, 인식의 공유를 위한 소통의 몸짓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갖습니다. 변화를 견인하는 어떤 종류의 행동이든 인식의 공유가 전제되지 않으면 가능할 수 없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변호인>은 인식의 공유를 위한 트리거를 제공했고, 그 흥행 현상은 같은 결핍과 열망을 가진 이들이 굉장히 많다는 사실을 확인시켜줄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이 영화를, 이 영화의 흥행을 응원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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