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나리오 작가나 감독들은 시나리오를 쓸 때 이른바 플로팅(Plotting)이라는 걸 하지요. 이야기의 설계도를 짜는 작업인 셈인데, 플롯에는 메인 플롯이 있고, 서브 플롯이란 게 있습니다. 메인 플롯은 전체 이야기의 기둥 줄거리이고, 서브 플롯은 그로부터 파생된 곁가지의 이야기를 말합니다.
이를테면, 영화 <관상>의 메인 플롯은 "내경이라는 이름의 천재 관상가가 당대의 실력가에게 발탁되었다가 권력 암투에 휘말리며 폐가망신한다"가 되겠지요. 서브 플롯은? 일단 관상가와 아들 간의 갈등이 있겠구요, 수양대군과 김종서의 갈등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이와는 별도로, 영화를 관람하고 해석하는 단계에서는, 특히 저처럼 직업적으로 영화를 보고 논평해야 하는 이들은 표면적 텍스트와 더불어 서브 텍스트라는 걸 찾으려 애씁니다. 표면적 텍스트는 영화의 이야기가 드러내거나 실어 나르는 즉자적인 메시지 또는 감정을 말합니다.
한편, 서브 텍스트는 말 그대로 그 표면 아래에 흐르고 있어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 영화를 해석하는 데 있어서 놓쳐서는 안될, 글로 치면 행간의 의미 같은 것입니다. 간혹 영화의 서브 플롯에서 서브 텍스트가 읽히는 경우도 있지만, 영화가 시대나 인간성과의 관계 맺기를 통해 드러내는 좀더 광범위한 함의를 저는, 서브 텍스트라고 생각합니다.
관객을 사유하는 주체로서 대우하는 감독들은, 비록 훨씬 더 많은 수의 대중이 그런 방식을 썩 좋아하지는 않지만, 서브 텍스트를 관객 스스로 찾아내 재구성할 것을 요구합니다. 제가 '여백이 많은 영화'를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반면, 어떤 영화는 서브 텍스트를 너무 친절하게 드러내 버려 해석의 재미를 앗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보는 대개의 대중영화들이 그렇습니다. 그런 영화들은 해석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반응'을 유도하지요.
이것이, 많은 이들이 느끼는 바, 왜 영화평론가들이 좋다고 말하는 영화는 지루한가? 라는 의문에 대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실은 지루한 게 아니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라 낯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겁니다.
영화의 플롯과 서브 플롯을 구분하고 그것이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돼 있는지를 따지며 볼 정도의 관람객이라면 평소 영화를 많이 보는 꽤나 오타쿠적인 분일 겁니다. 만약 그가 표면적인 텍스트와 서브 텍스트를 구분해 그 깊이와 타당성까지 따질 수 있다면, 그는 영화를 수동적으로 관람하는 차원을 넘어 능동적으로 '해석'하는 단계에까지 왔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영화에 대한 토론은, 사실 그 지점에서 훨씬 더 풍성해지겠지요. 그 때부터 영화 외의 교양이 절실하게 필요하게 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