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렌스 애니웨이', 이 사랑을 보라!

영화 이야기 2013. 12. 19. 10:18 Posted by cinemAgora




프랑스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는 사랑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도대체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신의 온전함을, 자신의 '힘'을 사용하는 것이다. 쾌락을 위해서나 나르시즘에 따라 그런 것이 아니라 정반대로 조금도 모자람이나 미련 없이 완벽하게 뭔가를 줄 수 있기 위해서 말이다. "

그러나 그의 규정대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특히나 남녀간의 사랑에 있어서 과연 알튀세르의 사랑론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역설적이게도 이 말을 한 알튀세르 그 자신은 정신착란 상태에서 자신의 아내를 목졸라 죽였다. 

어쩌면, 사랑은 필연적으로 비극을 내포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왜냐면 대부분의 사람은 온전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힘을 사용하기에 더없이 무기력한 스스로를 발견하게 되고, 고로 완벽하게 뭔가를 줄 수 있는 준비가 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무수히 많은 사랑 이야기는 비극이다. 고색창연한 고전 <로미오와 줄리엣>부터,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 사랑하는 이를 떠나 보내야 했던 남자의 이야기 <카사블랑카>와, 병실에 누운 연인을 베개로 질식사시키는 <베티 블루>, 이별조차 예행 연습을 하는 <화양연화>까지. 

마치 이별은 사랑의 종착역이라는 걸 확인시켜주려는 듯 했던 그 영화들이 명작의 대열에 남아 있는 것은, 현실 속의 사랑이 완벽한 수준에까지 이르기 위해선 무수히 많은 걸림돌과 장벽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창작자와 관객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완벽한 사랑을 꿈꾸다가 그저 어정쩡한 선에서 상호 타협하며, 사랑하는 척하며 살고 있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올 겨울 캐나다에서 온 감각적인 멜로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12월 19일 개봉)의 사랑 역시, 비극일지도 모른다. ‘비극일지도 모른다‘는 모호한 표현을 쓴 것은, 고전적 비극의 서사를 따르는 듯한 이 영화의 남녀가, 동시에 가장 순수하고, 가장 완벽한 경지의 사랑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비극의 씨앗은 남자의 성정체성이다. 준수하고 재능 넘치는 30대 문학 선생 로렌스(멜리 푸포)는 어느날 연인 프레드(쉬잔느 클레먼트)에게 자신이 여자의 정체성을 가진 채 남자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고백한다. 이 충격적인 커밍 아웃 앞에 프레드는 망연자실하지만, 이내 그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렌스에 대한 사랑을 계속하기로 결심한다. 프레드에게 로렌스가 남자든, 여자든, 트렌스젠더든, 그녀가 사랑하는 대상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어찌됐든(anyway), 로렌스는 로렌스다. 

프레드는 로렌스의 정체성을 인정할뿐더러 응원한다. 애인의 굳건한 지지에 힘입어 로렌스는 마침내 학교 수업에 여장을 하고 나타난다. 물론 자신의 부모에게도 30년 동안 숨겨왔던 비밀을 알린다. 이때부터 두 사람의 가시밭길이 시작된다.

<로렌스 애니웨이>의 러브 스토리가 각별한 것은, 적지 않은 퀴어 영화들이 보여주는 관성과 달리 포커스를 성적 소수자의 입장에만 국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오히려 이성애자인 프레드가 커밍 아웃한 연인과의 사랑을 사수하기 위해 겪게 되는 고뇌와 희열의 순간들을 보여주는 데 관심이 많다. 그럼으로써, 누군가는 이 영화를 퀴어 영화의 연장선에서 볼 수 있겠지만, 자신의 ‘온전함’과 ‘힘’을 사용해 '완벽하고도 미련 없이' 뭔가를 주고 있는 한 여자를 통해 사랑의 보편적 진경을 확인시키고 있는 것이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거대한 편견과 맞서 싸워야 하는 전투에서 프레드는 로렌스의 힘겹지만 든든한 동지 역할을 담당한다. 그리하여 끝내 두 사람이 벼랑 끝으로 몰렸을 때, 그들이 어떤 선택을 하게 되든, 그 벼랑 까지 걸어온 두 사람의 역사에 차라리 숙연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내가 21세기에 만난 가장 강렬한 러브 스토리다.


영화 <로렌스 애니웨이>를 보는 관객은 세 번 놀랄 것이다. 이 통찰적 러브스토리의 감독 자비에 돌란이 불과 23살이라는 것, 여배우 수잔느 클레멘트의 놀라운 연기, 그리고 이 장대한 사랑의 서사시를 담은 러닝타임이 불과 2시간 50분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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