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영화 흥행은 배급과 마케팅, 시의적인 조건들의 상호작용을 통해 다분히 '조장'되는데, '작품성'이라고 일컬어지는 영화의 본질적 요소가 차지하는 영향력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다. 따라서 "흥행은 했으나, 작품성에 동의할 수 없는 영화"라는 표현이 이 리스트에는 더 적합하겠다. 어쨌든 내가 뽑은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
<7번방의 선물>
나는 강연 때마다 이 영화의 흥행 성공은 대선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대선 직후, 울고 싶은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생겼고, 이 영화는 울고 싶은 이들의 뺨을 세게 때려줘 한국영화로는 일곱번째로 1천만 관객 고지를 넘어섰다. 물론, 이건 오비이락이다. 누군가에게는 더 없이 우울한 2013년 초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아니었다면, <아이앰 샘>을 한국 버전으로 살짝 바꾼 이 부성 신파 영화는 잘해봤자 200만 명 정도를 모으는 정도에 그쳤을 것 같다. "울었다"를 빼고, 이 영화가 우리에게 남긴 자국은 무엇인가? 곱씹어보면 아무것도 없다. 아무것도 없다는 건 평론가의 허영적 냉소일 수도 있다. 어떤 관객들에게, 아니 아주 많은 관객들에게 "울었다"만큼 중요한 미덕도 없을테니까. 그들은 영화에 많은 걸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평론가는 언제나 영화에 너무 많은 걸 기대해야 하는 직업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한국영화의 고전적 소재인 '분단'은 더이상 비극이 아니다. 이제 훈남 배우를 위한 배경막으로 활용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오로지 김수현이라는 잘 생긴 청년의 귀여운 재롱과 근육질 액션을 소비하기 위해 분단은 슬픈 현실이 아니라 스펙터클한 장치 이상의 의미를 획득하지 못한다. 이것은 명백히 우리 시대의 불우한 증후다. 어쨌든 이 영화는 우리에게 또 한번 '컨셉'만으로도 흥행은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이제 명민한 기획자들은 인기 웹툰을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거의 그대로 영화로 각색해도 성공한다는 기이한 이치를 깨달았을 것이다. 은밀하게 유치하고 위대하게 어설퍼도 흥행은 된다!
<설국열차>
한국영화는 작가들을 거세하는 기획영화의 행렬 속에서 몇 명의 생존자들을 남겨두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봉준호다. 그는 말하자면, 한국영화의 프라다이고 이브생로랑, 즉 명품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브랜드 파워가 대자본과 결합하고, 언론의 미디어하이프, 문화 애국주의와 뒤엉키면 <설국열차>와 같은 어설픈 허무주의마저 쿨하고 스타일리시한 것으로 둔갑하게 만든다. 이 영화는 양극화 사회를 동화적으로 은유하며 계급투쟁을 말하는 척, 종국엔 "다 헛된 짓이야"라고 외쳐줌으로써 자본 권력의 불편함을 상쇄시키고, 관객에게는 스노비즘적 해석 놀이의 멍석을 깔아주는 두 마리 토끼를 영리하게 포획하는데 성공했다. 여전히 이 영화가 봉준호의 할리우드 진출작으로 알고 있는 관객들이 꽤 많다는 건, 착시 기획 상품의 위력을 반증한다. 이 영화에 대한 어떤 관객의 이 한마디는 <설국열차> 현상의 정체에 대한 역설적 통찰로 들린다. "뭔가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가 있는 영화."